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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라이프> 리뷰 :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 삶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7. 9.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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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라이프> (카림 아이노우즈, 2019)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 삶

 

정글같이 울창한 숲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어두워져 가는 숲속에서 서로를 잃어버린 자매는 애타게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낮게 깔리는 음악은 분위기를 음산하게 만들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스크린에 제목이 뜨기 전까지 도입부의 장면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화면효과와 더불어 덧씌워진 동생의 내레이션은 앞으로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호기심과 긴장감을 동시에 일으킨다.

 

1950년대 브라질, 보수적인 집에서 자란 귀다(줄리아 스토클러)와 에우리디스(캐롤 두아르테) 자매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어느 날 귀다는 동생 에우리디스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 몰래 애인인 요르고스(니콜라스 안투네스)를 만나러 집 밖으로 나간다. 에우리디스는 귀다가 애인과 함께 그리스로 떠난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날 이후로 꿈 많던 자매의 인생은 남성들에 의해 송두리째 파괴되고 흔들린다.

 

화면은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거울을 통해 남성의 폭력과 그 앞에 있는 여성의 얼굴을 보여준다. 결혼 첫날 밤, 에우리디스는 남편 안테르노(그레고리오 뒤비비에르)에게 강간을 당한 뒤 거울 앞에 남편과 나란히 선다. 거울 속에는 행복해 보이는 안테노르의 깨끗한 얼굴과 화장이 번지고 약에 취한 에우리디스의 무표정한 얼굴이 대비된다. 귀다는 애인과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신이 홀로 낳은 아이를 병원에 두고 도망친다. 술자리에서 만난 남자는 귀다에게 모유가 나오는 몸과 이미 어그러진 현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거울은 귀다의 아픔은 안중에 없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은 비춘다.

 

자매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여성과의 연대로 극복해 나간다. 싱글 맘인 귀다를 가족처럼 보듬어준 팔로메나(바바라 산토스)와 굴욕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에우리디스에게 버틸 방법을 알려주는 젤리아(마리아 마노엘라). 이들의 도움으로 힘들게 내달리던 자매가 잠깐의 여유를 갖는다. 귀다에게 집이 생기며 안정이 찾아온 순간과 에우리디스가 피아니스트라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내딛는 순간에 자매는 서로를 떠올린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기에도 벅찬데 자매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한 쌍의 귀걸이를 나눠 끼고 끊임없이 호명한다. 그 모습은 현실에서 자주 목소리를 잃는 여성의 이름을 대변하고 얼굴을 기억하게 만든다.

 

사랑, 결혼, 임신과 같은 사회적 계약에 숨겨진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 보여주는 이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얼마나 나아져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1950년대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자매의 이야기이자 여성의 서사는 현대 여성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별, 거래와 같은 결혼. 임시중지의 실체, 부당함의 대물림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이것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게 만든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보이지 않던 여성의 삶을 비춘다. 감독인 카림 아이노우즈는 마르타 바탈랴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읽고 난 뒤, 어머니와 이모들 떠올렸고 그것을 원천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어떻게 60년대 보수적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성장했던 감독이 여성의 삶과 연대를 영화 속에 비출 수 있었을까. 감독이 남성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연출할 수 있었던 건 싱글 맘인 어머니와 이모의 손에서 자라며 그녀들이 겪는 현실의 어려움을 본 성장 배경 덕분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여성 촬영감독인 엘렌 루바르와 함께 하였기에 적나라한 섹스장면을 연출하면서도 여성의 수치가 아니라 남성의 폭력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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