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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소녀> 리뷰 : 미래를 예감하지 않는 용기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6. 2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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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소녀>

미래를 예감하지 않는 용기

 

영화는 천재 야구소녀 주수인(이주영)이 프로 야구 선수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여느 영웅 서사가 그러하듯 주인공이 자신 앞에 놓인 역경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르는 이야기이다. 참 많이도 접해온 내용인지라 자칫 영화가 식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약점이 있음에도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 도리어 수인이 자신에게 지닌 확고한 믿음과 꿈을 위한 무모한 노력을 조명함으로써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우직하게 드러낸다.

 

수인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야구를 그만 포기하라는 권유와 종용에 시달린다. 세상은 더 이상 수인을 천재 야구소녀로 보지 않는다. 수인을 에워싼 주변의 분위기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야구를 했으니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포기하는 게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는 수인의 엄마(염혜란)의 대사에서는 수인에게 이제는 고집을 내려놓을 때라 다그치는 느낌이 감돈다.

 

수인의 주변에는 세 명의 남성이 존재한다. 수인의 아빠(송영규)는 가장의 책임을 뒤로하고 수년째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야구부의 새로운 코치 진태(이준혁)는 프로 야구 선수에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이혼까지 한 상태이다. 어릴 적 수인에게 야구 실력이 한참 뒤처졌던 정호(곽동연)는 현재는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그의 실력을 인정받는다. 영화는 수인이 야구를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임은 은근하게 느껴지도록 이 세 남성을 활용한다.

 

영화는 특히 수인과 정호의 위치가 역전된 상황을 통해 프로 야구 선수를 꿈꾸는 수인의 현실적 한계를 비춘다. 학교 현관에 걸려있던 천재 야구소녀 주수인 고교 야구부 진학사진 기사는 이정호 프로야구 입단사진 기사에 밀려 그 자리에서 밀려난다. 더 이상 수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세간의 시선을 이 장면 하나로 알 수 있다. 수인과 정호가 손을 맞대고 크기를 재는 장면에서는 신체적인 한계를 마주한 수인의 좌절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내 미래를 모르는데수인은 현실의 장벽과 주변의 우려를 이 한 마디로 묵살한다. 영화 속 수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 묵묵하게 나아간다. 무모하리만큼 앞만 보고 나아가는 수인의 태도는 이 영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매우 닮아있다. 포기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미래를 위한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수인을 설득하려던 주변 사람들은 수인의 뚝심에 도리어 흔들린다. 그중 진태가 수인에게 가장 크게 흔들린다. 진태는 자신의 실패로부터 수인의 실패를 예감한다. 하지만 끝을 생각하지 않고 도전하는 수인에 감화되어 그녀가 프로 세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수인과 진태의 트라이 아웃 대비 훈련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뭉클함이 밀려온다. 미래를 예감하지 않는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정진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수인은 야구경기장 마운드 한가운데에 서 있다. 앞으로 그녀는 프로 선수로서 경기장에 오를 것이다. 영화는 수인 앞에 지금보다 더 높고 가혹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수인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카메라 너머에서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수인의 눈빛에서 그녀의 단단한 각오가 보인다. 수인의 눈빛에 흔들린 순간, 알 수 없는 미래를 예감하지 않고 그저 나아가는 그녀를 응원하기로 한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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