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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 리뷰 : 성급하게 얻은 화합이 당혹스럽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7. 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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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 (페르난도 그로스테인 아드레이드, 2018)

성급하게 얻은 화합이 당혹스럽다

 

이 영화의 매력은 주인공 에이브(노아 슈냅)의 순수함에서 피어난다. 에이브가 지니고 있는 음식에 대한 열정과 가족들을 향한 사랑은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하다. 에이브는 요리를 향한 자신의 열정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매우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영화는 이것을 SNS로 업로드된 에이브의 게시물들로 드러낸다. 내레이션과 함께 요리하는 에이브와 그가 만든 음식 사진들이 짧은 코멘트와 함께 차례차례 나타난다. 화면으로 나오는 SNS 이미지 영상이 매우 감각적이다.

 

에이브는 음식과 요리를 대하는 것처럼 가족들에 대한 사랑 또한 행동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에이브의 가족에게는 종교적 차이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거대한 장벽이 존재한다. 에이브의 엄마 레베카(다그마라 도민칙)는 이스라엘인 유대교 집안 출신이고 아빠 아미르(아리안 모아예드)는 팔레스타인 무슬림 집안 출신이다. 에이브의 부모는 그를 종교에 무관하게 키우려고 하나 양 집안 어른들의 생각은 다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에이브에게 유대교 또는 이슬람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덕분에 에이브네 가족은 조용할 날이 없다. 에이브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온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불안하고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식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기도 전에 사돈 집안의 전통과 종교관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식탁에서 벌어지는 서늘한 언쟁은 보는 이마저 기가 눌리게 만든다.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화목한 가족을 꿈꾸는 에이브의 표정에서 슬픔이 묻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에이브는 가족들의 화합을 위한 실마리를 브라질 출신 셰프 치코(세우 조르지)로부터 얻는다. 사실 에이브는 진짜 요리가 배우고 싶어 무작정 치코를 찾아간다. 치코가 요리하는 브루클린 공용 주방에서 에이브는 요리하는 사람의 태도를 배운다. 치코는 서로 다른 맛을 조화롭게 섞으면 그것을 먹는 사람들이 식탁 앞에서 하나로 모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에이브는 치코의 신념에 영향을 받아 두 집안의 전통음식을 하나의 맛으로 섞어낸다.

 

그러나 에이브의 순수한 마음으로 빗어낸 바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무참히 짓밟힌다. 가족들의 화해를 기대하며 음식을 준비할 때 에이브의 기대에 찬 표정과 식탁에 앉아 가족들의 설전을 지켜보는 에이브의 혼란스러운 시선이 극적으로 대비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내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는 에이브의 발걸음에서 깊은 절망이 느껴진다.

 

영화는 후반부의 막바지까지 가족들의 갈등을 펼쳐 놓는다. 그러다 에이브의 가출을 기점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서로에게 사과를 한다. 그러고는 냉장고에 넣어둔 에이브의 음식을 먹으며 가족의 화목한 한 때를 보여준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화해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나쁜 결말은 아니지만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감동을 주기에 급급해 에이브의 순수한 바람이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영화가 끝이나 버린 느낌이다.

 

만약 집을 나가버린 에이브가 스스로의 결심으로 다시 집에 돌아가 가족들 앞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가족들 앞에서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의 음식을 섞어버린다면? 타버린 칠면조 고기를 훌륭한 요리 솜씨로 멋지게 되살린다면? 죽은 외할머니의 레시피를 친할머니에게 알려준다면? 그랬다면 에이브라함, 아브라함, 이브라힘 등이 아닌 그저 에이브로 불리길 원한 한 소년의 마음이 보다 진하게 전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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