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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낼 시간> 리뷰 : 헤매더라도, 계속해서 헤매더라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12. 2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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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낼 시간>

헤매더라도, 계속해서 헤매더라도

 

 ‘이라는 단어는 참 오묘하다. 달고도 쓰며, 쓰고도 달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마치 금박 포장지로 감싼 위스키 초콜릿과 비슷하다. 영롱한 그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을 한번 맛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기대를 한껏 머금고 포장지를 벗겨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그 맛을 느끼며 황홀경에 빠진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쓰고 화한 맛이 훅 치고 들어온다. 분명 술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달콤함만 즐길 생각에 심취하여 통각에 가까운 자극적인 뒷맛을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 한구석에 못다 키운 꿈 한두 개쯤 있는 게 인생사 아니겠는가. 세상에 태어나 몇 번의 꿈을 꾸면서 필자에게 있어 꿈은 안에 담긴 씁쓸함이 두려워서 포장지도 벗기지 않은 위스키 초콜릿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꿈을 꾼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닐 테지만 인생을 걸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세상의 이치를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예전만큼 꿈에 관한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빛나는 무대 위의 모습을 꿈꾸며 빛나는 그 길을 향해 나아갔지만, 상처만 떠안은 세 명의 청춘을 담은 영화 <힘을 낼 시간>을 보고 있자니 사그라든 줄 알았던 꿈에 대한 필자의 희망이 다시금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야 말았다.

 

 망한 아이돌의 수학여행에서 희망을 보았다니,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영화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희망이 지닌 따스한 기운을 전달받았다. 수민(최성은)과 태희(현우석) 그리고 사랑(하서윤)은 아이돌 산업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다. K문화 열풍의 거대한 지축을 담당하는 아이돌 산업에 매년 수백 명의 신인 아이돌들이 성공을 꿈꾸며 도전한다. 혹독한 훈련과 체중 감량을 견뎌내며 연습생에서 한 그룹의 일원으로 발탁되었건만 이들 중 살아남은 아이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의 꽃으로 피어난 자들은 성공의 보상으로 부와 명예를 얻지만,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나머지 존재들은 실패의 대가를 떠안아야 한다. 수민은 오랜 체중 감량으로 거식증을 앓고 있고, 태희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빚을 감당해야 한다. 사랑은 불안한 정신을 다스리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 그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산 것밖에 한 것이 없는 세 사람에게 세상은 너무도 냉엄하기만 하다. ‘모든 게 다 돈 때문이다.’라는 태희의 내레이션이 이 모든 비극을 관통한다.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아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꿈도 돈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는 자조 섞인 진리를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무턱대고 꿈을 향해 내달린 청춘들에게 세상은 쓰다 못해 아린 후회와 자책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대책 없는 세 사람의 제주 여행을 보며 깨진 꿈에 다친 마음을 딛고 설 수 있는 힘이 이들에게 있다는 것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랑의 캐리어가 분실되고 사랑의 난동으로 수중에 있던 전 재산도 다 잃었지만, 세 사람은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수민의 주도하에 숙소를 저렴한 캠핑카로 옮기고 귤 농장에서 귤을 따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마련하는 세 사람을 보고 있자니, 아등바등 살아내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답답함을 못 이겨 한밤중에 운동장을 뛰며 소리를 지르는 수민, 초조함을 잊으려 밀려오는 바닷물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해변에 대자로 누워 버리는 태희, 불안함을 차단하려 이어폰 성량을 최대로 올려버리는 사랑. 영화 속의 세 사람은 여전히 실패가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회복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실패의 무게에 눌려 생의 의지가 꺾일 때마다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 서로가 혼자가 아닐 수 있도록 살피고 챙기고 보듬어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세 사람에게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되고 있다. 영화의 말미, 사랑이 전한 이제 내가 힘을 낼 시간이야.’라는 대사에는 스스로 일어나 보겠다는 의지와 함께 자신을 위해 힘을 내고 견뎌준 수민과 태희를 지지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담겨 있다.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때로는 형용할 수 없는 위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장면은 데칼코마니처럼 매우 닮았다. 세 사람은 인파로 붐비는 제주공항에서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길을 잘못 들어 같은 공간을 빙빙 돌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이들의 여정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지만, 처음 겪는 일이 아닌 까닭인지 마지막 장면에 비친 세 사람의 얼굴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대감이 물씬 풍긴다.

 

내가 여기에 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수민이 되뇌던 문장이 더 이상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라는 사람 곁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헤매더라도, 계속해서 헤매더라도 함께 길을 찾아간다면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지만) 어디든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찬 예감을 세 사람의 기운찬 뒷모습을 보며 아로새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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