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바다 갈매기는>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남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다. 그 흐름이라는 것이 좋은 성격의 것이라면 좋은 휩쓸림이 되겠지만, 나쁜 성격의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비극이 따라온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방 어촌계는 언뜻 겉으로 보기에 그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보통의 삶의 터전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와 폐쇄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마을을 좀먹고 있고, 결국엔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아침바다에는 나쁜 휩쓸림, 비극의 씨앗이 움튼다.
용수(박종환)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늙은 선장인 영국(윤주상)과 함께 배를 타는 비교적 젊은 어부이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 판례(양희경)와 사랑하는 베트남 아내 영란(카작)과 함께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용수의 얼굴에는 항상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용수의 얼굴을 지배한 그늘은 쇠락해 가는 어촌계의 그늘과 닮아있다. 그 그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닌, 오래전부터 어촌계와 그 지역 사람들의 삶에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었고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깊어지고 어두워질 예정이었다. 삶의 희망을 잃어가던 용수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보험금이었다. 영국과 짜고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여 큰 보험금을 받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베트남으로 뜰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오로지 용수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어머니 판례와 아내 영란은 그 계획을 모른다는 것.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용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평소와는 다른 빛나는 눈빛을 가지고.
극 중 모든 캐릭터는 선하다. 즉, 악역은 없다. 굳이 찾자면 용수를 떠나게 한 비극적인 어촌계의 현실이 유일한 악역이다. 젊은 어부 용수는 가족과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늙은 선장 영국은 용수와 판례, 영란의 행복을 위해 마지막까지 충실한 공범자 역을 자처한다. 판례와 영란은 용수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막막한 시간을 견딘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보험사기로 거액의 돈을 얻으려는 범죄 현장의 뒷모습을 찬찬히 지켜보게 되지만, 영화의 기승전결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용수가 아닌 부조리한 어촌 공동체에 그 책임을 묻게 된다.
과거, 어민회장까지 했다가 상경하여 3년을 보냈고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어서’ 다시 돌아온 형락(박원상)은 (거짓)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 용수의 모습으로 오버랩된다. 시간이 흘러 다시 어촌계로 복귀한 형락에게 마을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과 거친 말들을 쏟아내지만, 오히려 형락은 어촌계가 공동체가 아닌 공동묘지라며 자신만의 이익과 돈을 최우선으로 좇는 마을주민들에게 일갈한다.
유일하게 비밀을 알고 있는 선장 영국은 영화의 분위기를 침착하게 고조시킨다. 영국은 용수의 모든 계획이 불법이며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철저하게 그의 계획에 가담한다. 그 이유는 영국이 그 누구보다도 용수의 상황과 자신들이 속한 이 어촌공동체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궁지에 몰린 영국은 용수와 그의 가족들을 위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지난한 싸움을 싸우게 된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침착하고 때로는 태연하기까지 하다.
영국을 연기한 윤주상과 판례를 연기한 양희경은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격렬한 감정을 침착하게 연기한다. 그들의 눈에는 한이 서려 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해 이 상황을 위해 싸우고 있다. 영화의 막바지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판례의 웃음소리가 등장한다. 영국은 그녀를 찾아가 용수의 행방을 확인한다. 시종일관 화를 내듯 소리를 치르며 의사소통했던 영국과 판례는 마지막까지 화를 낸다. 하지만 그 화에는 우리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력감과 처연함이 깃들어 있다. ‘갔냐?’ ‘갔지!’ ‘그럼 됐지!’ ‘됐어!’
아침바다 갈매기는 떠나야 한다. 살기 위해. 하지만 남은 갈매기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떠난 자의 마음이 아플까, 남은 자의 마음이 아플까. 생각하다 보면... 보는 이들의 마음도 함께 아프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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