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연민이라는 이름의 희망
연민. 이 단어를 생각하면 참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안타깝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거나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다. 단순한 동정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의지를 포함한다. 연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 다음에 행동이 따라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수반된다. 현실에서는 우리가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민으로부터 시작된 어떤 행동이 사소해 보일 수 있을지라도 거기에서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1985년 아일랜드의 어느 소도시. 석탄상으로 일하는 평범한 남편인 빌 펄롱(킬리언 머피)은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이자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다섯 딸아이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는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평소와 다름없이 수녀원에 석탄을 공급하다가 수녀원 앞 석탄 창고에서 감금되어 고통받는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소녀는 임신 중이었다.) 빌 펄롱은 직감적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을 발견했다고 느끼지만, 당장에 행동하지는 못한다. 수녀원의 영향력은 빌 펄롱이 거주하는 마을의 모든 대소사에 관여할 만큼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냥 모른 척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빌 펄롱은 감금 중이었던 소녀와 함께 수녀원으로 들어가지만, 오히려 더 큰 이야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그것은 수녀원 안에서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며 삶을 착취당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그에게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그를 도덕적인 시험대 앞에 세워놓는다. 수녀원은 예수 탄생의 의미를 기억해야 할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에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생명 탄생의 고귀함을 짓밟고 있었던 것이다.
수녀원의 비밀을 알게 된 빌 펄롱의 마음은 어지럽다. 친분이 있는 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심지어 수녀원장에게도 입을 다물 것을 우회적으로 주문받는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이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을 유지하라는 대답뿐이다. 하지만 그는 석탄 창고에서 감금되어 있던 소녀의 이야기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소녀가 그에게 있어 그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으며, 소녀의 뱃속에 자리 잡은 생명이 곧 자기 자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빌 펄롱은 인권을 유린당한 채 창고에 감금된 소녀를 만난 이후, 현재의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삶을 반추하게 된다. 미혼모로 임신한 그의 어머니는 집에서 내쳐지거나 수녀원으로 보내지지 않고 주인집의 배려로 인해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누군가의 연민을 통해 삶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빌 펄롱은 더 이상 행동을 주저할 수 없게 된다. 직감적으로 이번에는 빌 펄롱,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빌 펄롱의 내면에서는 끊임없는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수녀원에서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녀를 외면하지 말고 어서 당장 가서 구원하라는 목소리가 그의 내면에서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 행동의 대가는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과 마을 사람들의 외면과 따돌림을 불러올 것이다.
빌 펄롱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늘 강박적으로 손을 깨끗하게 씻는다. 습관적으로 철제 수납함에서 비누와 솔을 꺼낸 후 물을 틀어놓고 그의 손을 검게 물들인 석탄 가루를 제거하는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빌 펄롱은 손을 씻다가 자신의 어린 시절 아픈 트라우마를 떠올리고 다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 고통은 그가 보았던 수녀원의 소녀가 소유한 고통과 같은 결의 것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보통의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결정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연민의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라는 것은 사소하고도 작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소함에서 출발한 빌 펄롱의 행동은 말 그대로 위대하다. 수녀원에서 고통받는 자매들의 이야기를 빌 펄롱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통받는 이들에게 쉴 곳과 기댈 어깨를 내어준 것은 빌 펄롱이 유일했다. 이처럼 사소한 연민의 마음은 빌 펄롱으로 인해 이처럼 위대한 마음이 된다.
세월은 아주 많이 흐르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회적 돌봄은 건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연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절실한 이유이다. 어느 사회나 사회적 약자는 존재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내 가족과 나의 안위를 첫 번째로 생각한다면 사회적 약자가 설 곳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에서의 인권유린 사건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수녀원은 심대한 인권침해로 악명이 높았다. 사회 질서라는 이름 아래 통제되고 단속이 이루어지고 처벌이 존재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일랜드 말고도 세계 각지 수녀회 중 일부에서는 매춘부나 미혼모 등 소위 '타락한 여성'을 교화하기 위해 작업실과 세탁소를 운영한 적이 있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뒤늦게 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곳에서는 이름만 바뀐 채 부당하게 누군가를 죄인으로 낙인찍고 삶을 빼앗는 참상이 벌어진다. 부디, 아직 어두운 곳에 이처럼 사소한 연민이 불씨처럼 떨어져 위대한 불꽃으로, 환한 빛으로 변화되길 기도한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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