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의심으로 쌓은 진실
엘리자베스(레나테 레인스베)는 아들 아르망과 관련된 호출을 받고 학교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아들이 연루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기존의 가치와 믿음에 반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정보의 파편으로 진실을 추적해야 할 때, 인간은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이는 영화의 중심으로서,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배우죠. (...) 그녀는 주변을 드라마로 만들어요.” 피해 아동의 어머니이자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사라(엘렌 도리트 페테르센)는 아들의 사건에 대처하는 엘리자베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실제로 영화는 엘리자베스 아들의 이름을 딴 제목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갈등의 원인은 아르망이지만, 정작 아르망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엘리자베스와 주변 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러한 배경에서 영상 속 화면 노이즈는 사라의 말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마치 스크린의 모든 요소가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하나의 드라마처럼 보이게 한다. 또는 영화가 단순히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아닌, 진실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심리극에 가깝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라는 엘리자베스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하지만, 관객은 인물들 간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모든 등장인물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연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아이들의 사건에 대처하는 어른들의 합당한 태도와 객관성, 진실을 강조하지만 쉽게 여론에 선동되며, 그들의 행동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치중되어 있다. 따라서 영화가 진행될수록 진실의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관객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신뢰의 희생을 통해 인간의 이기와 진실의 얄팍함을 직시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추락의 해부>(2023)를 떠올리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두 작품은 장르의 유사성을 넘어, 사운드의 적극적인 활용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추락의 해부>가 음악으로 상황과 갈등을 풍성하게 표현했다면,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는 음향으로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다룬다. 위태롭게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 그리고 맹렬한 화재경보기 음은 평화를 방해하고 영화 전반에 불안감을 조성한다. 특히, 고장난 화재경보기 소리는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에 반복되며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 초반, 학교에 도착한 엘리자베스는 화재경보기 소리를 듣고 담임 선생님 순나(테아 람브레크츠 베울렌)에게 묻는다. “나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그러나 순나와 교장 야를레(외스테인 뢰게르)는 그저 고장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 장면 이후 엘리자베스는 고립되기 시작하는데(곧바로 엘리자베스는 아들의 사건에 대해 듣게 되고, 호출 전 미리 알리지 않은 학교 측의 대처에 대해 끊임없이 항의하며 사건을 둘러싼 불합리성을 강조한다), 엘리자베스의 고립은 경고음과 맞물려 영화 속 불합리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는 영화 마지막에 엘리자베스가 빗속으로 뛰어나가는 장면과 연결된다. 그가 경보기 음을 듣고 나가자, 장면은 여론이 엘리자베스와 아르망에게 우호적으로 돌아서는 듯한 암시를 비추며 마무리된다.
아르망의 처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르망이 정말 범죄를 저질렀을까? 관객은 결말을 맞이하지만, 영화 속 근본적인 질문들은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 규명에 치중한다면, 인간의 다면성을 바탕으로 누가 ‘진실’에 가까운지 유추해 볼 여지는 있다. 어쩌면 감독은 생각보다 단순한 방식으로 힌트를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는 연기자”이며, 아르망은 ‘또’ 문제를 일으켰다는 평가가 그 실마리일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는 결말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이 영화는 인간 본성과 믿음을 반추하게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건의 진실을 품은 토마스의 눈빛, 그리고 관객에게 던져진 미해결의 질문이다.
- 관객리뷰단 조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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