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
지난 2024의 연말은 유독 사건 사고가 잦았다. 많은 이들이 기적을 바라야 했고, 약간의 행운과 우연이라도 간절히 기도하는 연말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평범한,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치부되는 이들이 겪는 기막힌 우연과 기적들에 관해 이야기 한다.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거칠면서도 제법 유쾌한 헌사 같기도 한 영화는 보는 이마다 다른 감정을 선사한다.
시작은 곤(에모리 토오루)와 하나(우메가키 요시아키)가 감상하는 크리스마스의 교회 연극이다. 예수님은 갈 곳이 없는 인간을 위해 안식처를 주기 위해 강림한 존재라는 대사와 함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배식하는 장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퉁명스럽고 매사에 부정적인 곤, 게이이면서 여장하고 다니는 하나, 반항심을 가득 안고 매번 사람과 부딪치는 미유키(오카모토 아야)는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늘 함께 다니는 홈리스(homeless)들이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하나가 미유키를 위해 세계 아동 전집 20권을 봐두었다며 쓰레기장을 뒤지다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면서 나름대로 평화롭던 일상이 단번에 무너진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퍼펙트 블루>, <파프리카> 등 센세이션한 연출과 독특한 세계관으로 유명한 곤 사토시 감독의 가장 밝은 영화라 불린다. 그럼에도 여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과는 분위기와 그림체가 사뭇 다르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캐릭터들의 외양, 메시아의 구원이 비껴 나간 것 같은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호감보다는 다른 감정이 든다. 하지만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더 내려갈 밑바닥도 없기에 솔직한 이들이라서, ‘기적’을 얘기하는 이 작품에는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주인공감이다.
하나는 줄곧 아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하필 구원과 기적을 얘기하는 크리스마스에 본인 앞에 나타난 이 아기는 자신이 키워야 하는 운명의 아이라고 생각했다. '키요코'라는 이름을 짓고 곤과 미유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없는 돈을 털어 기저귀와 분유를 사 우는 아이를 보살핀다. 그러나 집도, 돈도 없는 노숙자인 자신이 키요코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직접 아이를 버린 부모님을 찾으러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하나의 고집을 답답해하면서도 곤과 미유키는 그와 함께하는 모습이 어느 가족보다도 끈끈해 보인다. 피는 전혀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준 자신들의 가족들보다 훨씬 편하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다.
키요코를 위해 모인 셋은 전부 결여된 부분이 있다. 곤은 경륜 선수였다느니, 딸이 난치병에 걸려 돈을 구하려다 이렇게 되었다느니 거드름을 피웠지만 실상은 도박에 미쳐 돈을 싹 날리고 가정을 파탄 낸 주범이었다. 하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곳을 줄곧 참지 못했는데,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게이바에 돌아가지 못한 이유도 손님의 무시 발언에 바로 주먹을 쓴 탓이었다. 미유키는 본인 아버지의 배를 칼로 찌른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계속 자신을 찾는 아버지를 피하며 비뚤어져 있었다. 어쩌면 이들이 '굳이' 키요코의 일에 발 벗고 나선 이유는 그동안 계속 회피해 오던 자신들의 인생을 그만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삼인방은 모든 일에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게 처음으로 모든 일에 최선의 결과를 낳는 '기적'을 맛본다. 영화는 단순히 노숙자들의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이에게 자신들의 받은 도움을 전하고, 또 그 사이에서 기적을 보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나는 이야기라서 더 소중하다. 부정적인 감정과 그것이 솔직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콘텐츠가 쏟아지는 이 시대에 서툴지만, 그 어느 것보다 따뜻한 인간성을 강조하는 이야기이기에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키요코의 부모를 찾아주었을까? 그 부모는 왜 키요코를 버렸으며 키요코와 삼인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개개인의 서사를 풀어주는 동시에 중심 스토리를 흔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걸작이라고 불리기 충분하다. 춥고 시린 겨울인 지금, 봄이 오기 전에 곤 사토시가 전하는 사랑을 품에 안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 관객리뷰단 서수민
<호리아> 리뷰 : 끊임없이 꺾여도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0) | 2025.01.04 |
---|---|
<힘을 낼 시간> 리뷰 : 헤매더라도, 계속해서 헤매더라도 (0) | 2024.12.25 |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 연민이라는 이름의 희망 (1) | 2024.12.22 |
<아침바다 갈매기는> 리뷰 :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남을 수밖에 없는. (1) | 2024.11.26 |
<전장의 크리스마스> 리뷰 : 아, 허무하고 허망하고 허탈한 인간의 삶이여. (0) | 2024.11.2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