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목소리>
내가 카메라야. 내가 영화야.
카메라는 사람의 눈을 닮았다. 비록 그 구조는 인간의 눈과 다르게 설계되었으나, 그 기능은 인간의 눈과 닮도록 발전해 왔다. 펜과 녹음기의 한계를 뛰어넘고, (인간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조용한 떨림과 침묵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카메라뿐이다. <되살아나는 목소리> 박수남 감독은 펜으로 기록을 시작했다가 카메라로 그 기록 방법을 옮겨갔다. 그녀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유일하게 카메라만이 기록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선택은 필연적이었고, 결국 그 선택이 그녀 자체를 곧 카메라, 영화로 만들었다. 기록해야만 하는 그녀는 끈질기게 카메라를 들었다. 자신의 눈앞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단순히 지나간 이야기, 흘러간 과거의 역사로 남겨둘 수 없었던 그녀는 카메라라는 무기를 통해 세상에 다시 질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야만의 세월을 아느냐고.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재일조선인 2세인 박수남 감독과 그녀의 딸인 박마의 감독은 오래전에 촬영했으나 작품화되지 못한 16mm 필름 50시간 분량을 디지털화하기로 결심했다. 영상과 별도로 녹음된 6mm 테이프 또한 30년 이상 아무도 듣지 못하고 보관되어 있었다.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부식되고 훼손되어 앞으로 볼 수 없게 될 상황이었다. 그 많은 촬영 테이프와 녹음 테이프에는 대체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었을까.
박수남 감독은 반평생을 기록을 위해 싸웠다. 일제강점기에 고통받았던 조선인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그녀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역사가 그녀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위안부, 강제노역, 원폭 피해자...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남기려면 기록해야만 했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삶을 바칠 사람이 박수남 감독이었다.
그녀가 싸운 싸움은 굉장히 마음 아픈 싸움이었다. 촬영하고 녹음한 내용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만행에 대한 피해자들의 살아있는 증언이었다. 기록에 대한 의무감과 본능은 너무너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그녀를 기록자로 만들었다.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난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치열하게 역사를 수집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녀는 이 일이 10만 명의 재일조선인 2세의 공통된 이슈라고 문제 제기한다. 그 이유는 결국 이 문제가 우리의 조국과 우리의 이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장될 뻔했던 귀한 기록물들이 이번 작품을 통해 세상에 널리 공개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수남 감독은 안타깝게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시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바친, 빛나는 고군분투는 세상에 뚜렷하게 기억될 것이다. 모든 일제강점기 조선인 피해자분들에게 큰 평안과 위로가 있길 간절히 기도한다.
- 관객리뷰단 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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