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내일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은 바뀐 시대에 영향을 받는다. 조반니(난니 모레티)는 그럼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폭력에 물든 작품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만 줄 뿐이다, 촬영장에서 뮬(신발 종류 중 하나)을 신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영화를 만들 땐 각본 위주로 만들어야 하며 배우의 개인적인 해석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그의 원칙이 '옳은가'? 영화의 제목은 찬란해 보이지만 조반니를 둘러싼 일들은 그를 몹시 위태롭게 만든다.
조반니의 아내 파올라(마르게리타 부이)는 그와의 결혼 생활에 지쳐 이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언제 말을 꺼내면 좋을지 계속 고민만 하며 상담을 계속 다닌다. 상담에서 파올라는 조반니를 두고 몇 년을 기다려도 그대로인 사람이라 말했다. 영화는 조반니가 만드는 영화, 그리고 그의 제작 환경을 보여주며 조반니의 성격을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 알아볼 수 있게 만든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시네마를 보며 비평하는 습관이 있고, 영화에 대한 열정이 무척 강하며 타인의 작품이 본인 기준으로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땐 무조건 부딪치고 논쟁을 벌여 상대를 설득해야만 하는 사람. 주변인들은 조반니를 매우 피곤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소품의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며 무턱대고 소매를 자르는 그를 보며 스타일리스트는 비명을 지르고, 배우들과 캐릭터 해석을 두고 논쟁할 때도 자신의 작품은 무조건 대본대로 흘러가야 한다, 다른 방식은 다른 감독 작품을 찍을 때 활용하라는 말에 배우는 무조건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제작에 참여하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마지막 씬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9시간 동안 촬영을 지체시키며 자신이 참여하는 영화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훈수를 두기도 했다.
이런 불같은 조반니에게 영화는 계속해서 시련을 준다. 5년 만에 착수한 새 영화 촬영은 제작자의 파산으로 무기한 연장되고, 조반니에게 지친 아내는 이혼을 선언했으며 그의 영화를 투자하는 것을 두고 넷플릭스는 이 작품에는 '헉'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으며 190개국에 수출될 자신들의 서비스에서는 소비자들이 선택하지 않을 작품이라고 혹평한다. 조반니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그에게서 하나 둘 등을 돌리고 떠났다.
혼자가 된 조반니는 한 커플을 마주한다. 도로에서 갑자기 차를 멈추고 내린 두 사람은 관계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관계에 집착하지 마. 아무리 다가가도 밀어내는 건 너야." 여자의 말을 듣던 조반니는 곧 다음 여자가 말할 대사를 읊는다. "불행하기만 한 인생이 어딨어. 네가 침울한 면만 보는 거잖아. 행복은 근사하지 않고 별로일까 봐 겁나?"
허상 속 커플의 대사를 직접 읊고 나서야 조반니는 하나둘씩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지인이었던 한국인 제작자들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재개하고, 아내의 집에 초대받아 아내에게 다시금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며 영화의 방향성도 다시 생각했다. 한국인 제작자들은 조반니의 영화 대본을 읽고 모든 것의 끝을 얘기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조반니가 제작하던 영화는 1956년 배경의 이탈리아 공산당 지부에 관한 시대극으로 마지막에 주인공은 원칙을 지킨 후 자괴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결말을 맞기로 되어 있었다. 동기는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저 자살로 막을 내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파올라는 조반니에게 이 영화가 무섭다고 고백한다. 조반니가 투영된 영화가 자살로 끝을 맺으니까. 그리고 이야기 후반부, 조반니는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직접 목을 매다는 리허설을 하다가 촬영을 중단한다. 많은 일을 겪고, 또 느낀 조반니는 결말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역사는 '만약에'로 이뤄지지 않지만 그 '만약에'로 역사를 만들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찬란한 내일로>의 결말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다. 조반니의 영화는 역사와 달리 이탈리아 공산당이 부활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실현하며 끝이 났고, <찬란한 내일로> 역시 모두가 함께 조반니의 영화 안에 들어가 승리의 행진 속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말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아직 '내일'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고,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기에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며 세상과 타협하면서 원칙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길 바라며 함께 찬란한 내일을 꿈꾸게 된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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