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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유령 신체와 양면성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6. 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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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유령 신체와 양면성

 

 우리는 많은 매체, 특히 영상 매체를 통해 아우슈비츠와 피해자들의 참극에 대해 보고 들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들을 봤다. 내부의 사정을 아예 모르는 독일 시민의 시점에서도 본 적이 있고, 장교의 시점, 죄수의 시점을 넘나들거나, 그들이 암시된 동시대의 유럽상도 이미 익숙하다. 아우슈비츠, 나치와 히틀러, 2차 세계대전 등 그동안 영화에서 나치의 만행을 보여준 사례는 다채롭다. 그들은 언제나 전쟁의 끔찍함이나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다니의 대표 격으로 소개되었다. 즉 오늘날 관객들은 선례를 통해서 영상에 이 소재가 사용될 때, 기대하고 예상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관객의 선례 기억에 의지한다. 영화는 동일 주제의 다른 영화와 달리 암시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잿빛 하늘과 불심 검문, 감시와 같은 공포적 요소는 제거되며, 그 자리를 푸른 하늘과 강,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채운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 외곽에 위치한 가정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들의 일상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아버지가 출근한 뒤에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어머니와 일꾼들은 집안일에 집중한다.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의 놀라운 감각으로 집의 정원은 각종 꽃과 허브, 가꿔진 잔디로 조경되어 있으며, 그들의 집은 누구나 꿈꿀 만한 이상향적인 집이다. 단 하나, 경계선 너머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들이 일상 모든 순간에 배경으로 자리한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반복적인 총성과 알 수 없는 기계음은 매 장면의 기저에 웅크리고서, 관객이 이를 잊을 때쯤 더 큰 소리로 발산된다. 가족들의 생활 소음이 그 정체불명의 배경음을 덮으면, 어린 딸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또다시 평화를 방해한다. 그것들은 분명 낙원의 방해 요소로 그곳에 존재한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반려견의 짖고 낑낑거리는 소리는 관객에게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정작 등장인물들은 그것에 익숙한 듯 외면함으로써 평화는 유지된다. 바로 이런 현상으로 인해 역설이 성립되며, 관객은 그들의 공간이 비명과 울음을 짓밟고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중심인물인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는 가정적인 모습으로 보여지는데, 그가 아우슈비츠의 지휘관인 것을 아는 관객은 스크린 속 평화로운 장면에도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게 된다. 그는 표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는 인물이다. 카메라는 그의 일하는모습을 절대 제대로 비추지 않는다. 그의 일은 대화로 구성되거나, 소리로 암시될 뿐이다. 그의 행동이 정확히 드러날 때는 오직 가족들과 함께 있으며 가정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으로 제시될 때뿐이다. 영화의 중반이 지나갈수록 감독은 서서히 다른 가족들의 양면성도 조명하는데, 이들은 인간이 비-인간화가 될 때 나이와 성별, 경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내포한다. 아이들은 군인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사람의 이를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가스실은 놀이로서 재현된다. 헤트비히에게 남편의 행위와 가스실이라는 공간은 권력 유지를 위한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악행도 장기간의 노출 속에서는 도구로 전락한다, 비인간화는 바로 이런 익숙함과 무감함에서 비롯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결코 관객을 피해자나 제3자의 위치에 배치하지 않는다. 감독은 명확하게 그들이 우리의 일면을 갖고 있으며, 등장인물을 통해서 우리 안의 내재된 양면성을 성찰하도록 영화를 구성했다. 지금도 타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과 박해, 당장 뉴스 속 보도되는 각종 폭력적 행위들을 떠올리자. 그리고 생각해 보자. 이 중 진실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들이 몇이나 되는가?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우리 모두가 비인간화의 희생자라고 말한다. 여기서 희생자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비인간화의 과정에 놓여있음을 뜻한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이것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오늘날 범람하는 매체 속에서 사건은 쉽게 익숙한 것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경계하고 비인간화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투쟁이다.

 

- 관객리뷰단 조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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