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목화솜 피는 날> 리뷰 : 다시 피어날 너를 잊지 않을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6. 5. 15:34

본문

 

<목화솜 피는 날>

다시 피어날 너를 잊지 않을게

 

 사람들이 배 안에 갇혀 죽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들은 노란 리본에 뒤덮여 사람들 기억 속에서 하나둘 잊혀 갔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은 아직도 그날, 2014416일에 갇혀있다.

 

 신경수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가상의 인물 '경은' 가족들의 모습을 비추며 세월호 참사의 비극과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은의 아빠 병호(박원상), 엄마 수현(우미화)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회복하려 애쓰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사고로 붕괴된 가족의 안타까운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목화솜 피는 날>은 그동안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세월호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아우른다는 점, 애도에 그치지 않고 가족의 공동체성 회복과 다시금 희망을 이야기하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병호는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억을 잃었다. 그가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병호를 알고 있지만, 병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도 황선생이란 남자를 보면 화가 나고, 미역국은 끝내 먹질 못 하겠다. 영화의 초반부는 기억을 잃은 병호가 다니는 대로 따라가는 수밖에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내 수현을 마주하면서 기억이 서서히 떠오른다.

 

 사고가 일어나고 나면 보통은 사고를 당한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초점이 맞춰지지만, <목화솜 피는 날>은 유가족을 포함한 사고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시민들까지 다루면서 여타 영화들과 차별점을 둔다. 병호와 갈등을 빚었던 황선생은 일반 버스 기사였지만 평소 버스를 자주 이용하던 학생들이 대거 참사로 인해 사망하면서 유가족과 같은 아픔을 느껴 그들에게 힘을 보탰다. 그런가 하면 참사 때문에 관광객들이 줄어 인근 상권이 무너진 탓에 후원을 받기 싫어하는 병호를 울며 설득하는 상인의 모습도 나온다. 모두에게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서, 함부로 비난하거나 헐뜯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참사의 잔혹함과 슬픔을 고조시킨다.

 

 또한 참사가 일어난 후 주변인들을 다룬 영화이므로 참사 자체를 넘어 유가족들의 아픔과 회복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야기가 극에 달할수록 병호는 기억을 찾아가며 괴로워한다. 세월호 선체 안에 들어가 경은이의 환상을 보고, 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 수현은 더 이상 경호를 방관하지 않고 그와 슬픔을 공유하고 비로소 현실을 마주한다. 감정을 애써 무시하지도 않고, 감당할 것이 벅차 남편을 외면하지도 않은 채.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준비가 된 이들에게 비로소 목화솜이 핀다.

 

 목화솜은 열매가 터지면 나오는 것으로 그 모습이 꽃과 같아 두 번째 꽃이라 부른다. 우연히 목화솜에 대한 설명을 들은 병호는 경은이 역시 예쁜 모습으로, 자신의 딸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아이로 다시 태어나 예쁘게 잘 크고 있을 거라며 아내를 위로한다. 그렇기에 우린 모든 아이의 부모라고, 당신만큼 힘든 사람이 여기 또 있으니 울음을 참지 말라고 말한다. 지금껏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했던 병호가 했던 말이기에 더욱 감정적으로 울리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의지를 다진 이들은 이제 다른 이들과 함께 진실을 뚜렷이 마주한다. 병호가 직접 세월호 내부를 견학하는 학생들을 인솔하며 가이드하는 장면은 정말로 인상적이다. 관객 역시 학생들과 함께 병호의 설명을 들으며 세월호의 '당사자'로서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되새기게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러나 너무 슬퍼하기만 해서도 안 되는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웃으며 노란 리본 물결 사이로 사라지며 막을 내린다. 목화솜처럼 삶과 죽음 사이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삶을 염원하듯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였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