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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 리뷰 : 더위의 팔할은 늦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5. 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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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

더위의 팔할은 늦다

 

 초여름. 더위가 두려워지는 시기다. 여름을 맞는 마음가짐을 되새겨보기도 전에 <늦더위>를 봤다. 두 시간의 러닝 타임에 앞선 세 글자의 제목은 초여름의 시간을 건너뛰어 늦여름의 시간으로 도약하는 듯 늦여름의 시간을 초여름의 시간으로 끌어당겼다. 여름은 가도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면, 가을이 왔다는데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면 늦더위의 시간은 얼마나 늘어지는 걸까. 가시지 않는 더위. 생각만으로도 이미 더웠고 아직 더웠다. 땀에 젖고 습기를 먹어 늘어진 셔츠처럼, 더위는 많은 것을 늘어지게 만든다.

 

 초여름에 마주하는 늦더위는 이미 여름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기분을 불러냈다. 졸린 듯 잠은 오지 않고, 나른한 듯 무기력한 여름을 견딘 기억을 불러냈다. 불러낸 기분과 기억이 가시지 않은 채로 두 시간의 <늦더위>를 견뎠다. 여름을 나는 누구나 폭염과 무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동주의 여름은 혹서를 넘겼어도 미적지근한더위는 피하지 못한다. 여름이 다 가도록 가시지 않는 더위는 여름보다 긴 시간, 계절을 넘고 해를 넘는 시간이다. 동주의 시간은 늦여름이 아닌 늦더위다. 동주의 지금은 지난 8년을 눌러 담고, 8년 넘는 늦더위를 견디는 중이다. 꿈꾸듯 지난날을 되짚는 여행은 더위를 피하려 떠나는 것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도 아니다. 동주의 여행은 늦더위의 시간을 되감는다. 8년간 같은 시험을 준비하며 같은 공부를 반복한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 지난날을 복습한다. “뒤로 걸으면앞으로 걸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듯 복습은 새로움을 학습한다.

 

 동주가 탁자 위에 엎드리고 잠든 장면은 여행의 문을 열고 닫는다. 편치 않은 자세로 잠든 동주는 편치 않은 자세로 깬다. 얕은 잠이 수반하는 꿈은 선명하지 않다. 꿈은 본디 선명하지 않고, 깊은 잠은 묘연하다. 동주는 책상 위에 엎드린 어중간한 자세만큼이나 허술한 차림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라는 말이 손가락의 굳은살처럼 신경 쓰이는, 여행이 맞나 싶은 동주의 이동은 여행을 명분 삼는다. 동주는 옛 여자친구를 만나고 군대에서 가깝게 지낸 동생을 만나고 중학교 동창을 만나며 여행 중이라고 말한다. 집 근처 작은 공원에 들러 운동기구를 타보듯 여행지에서 찾은 동네 공원에서 빵과 우유를 먹는 한편 공룡알화석지 같은 관광지에도 가보고 모텔 대신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도 한다. 전 연인, 군대 후임, 오랜 친구. “그리워서만난 이들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공원에서 함께 농구하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은 아이들, 공룡알화석지에서 멀찍이 동행한 여행객들, 게스트하우스에서 술잔을 주고받은 스물한 살 청년. 외로워서 만난 이들은 외로움으로 남는다.

 

 화분은 좁다. 영화는 프레임이라는 제약 안에서 가능한 자유를 찾는다면, 식물은 화분이라는 제약 안에서 삶의 가능성을 찾는다. 막연한 낮시간, 노트북 PC가 놓인 작은 탁자.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엎드려 잠든 동주는 무슨 꿈을 꿨을까. 꿈속에서 얼마나 멀리 갔을까. 꿈과 여행이라는 프레임은 삶을 담을 수 있을까. 영화의 자유는 살아 있겠다는 의지를 담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그리도 오르기 힘들었던 산에 오랜만에 오른 동주는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 선생님과 조우한다. 은퇴한 뒤 종종 산을 찾는 선생님이 뒤로 걸어 산을 오르내리듯, 동주는 뒤로 걸어 8년 이상의 시간을 되감는다. 정상의 시야는 탁 트였을 줄 알았는데 잎이 무성한 나무들에 가리고, 시간을 되감아 다다른 곳은 흘러간 시간만큼 빛바랬다. 살아 있음은 주어진 자유를 맴도는 것인지 모른다. 맴도는 만큼 흔적이 남는 삶은 꿈처럼 부옇고 숲처럼 그늘지고 철 지난 기억처럼 흐리다. 늘어진 여름의 늘어진 삶을 보여주는 영화는 늘어진다. 늘어진 영화는 선명하기보다 부옇고 쨍쨍 내리쬐기보다 그늘지고 또렷하기보다 흐리다. 그렇게 늦더위를 고스란히 담는다.

 

 <늦더위>는 더위 먹은 몸처럼 늘어진 시간을 매만져 움츠린 몸을 펴듯 움트는 시간으로 이행한다. 손으로 몸의 먼지를 털어내듯 후줄근한 옷매무새를 대충 쓸어 넘기며 오늘을 넘고 내일을 넘는 청춘을 담는다. 여름이 다 가도록 가시지 않는 더위는 연명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내는 시간의 온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몸부림은 미적지근한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움직임을 불러낸다. 동주는 나 혼자만 끝나지 않는 여름을 몸부림친다. 그리워서 떠나고 그리워서 찾는다. 외로워서 떠나고 외로워서 찾는다. 그리움과 외로움이 재촉한 발길은 꿈인지 여행인지 모를 시공간을 떠돈다. 떠돌던 꿈에서 깨고 떠돌던 여행에서 돌아온 동주는 작은 화분에 흙을 담고 흙 속에 씨앗을 심고 마른 흙에 물을 준다. 마른 흙에 스며드는 물은 그렇게 더위를 식힌다. 가시지 않을 줄 알았던 더위가 어느새 가시면, 가신 줄 알았던 더위가 어느새 돌아온다. 청춘은 항상 늦는다. 늦지 않아도 늦었다고,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고 우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늦더위는 늦지 않은 더위다. 선선한 바람을 부르는 이른 시간, 늘어진 청춘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 관객 리뷰단 한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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