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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리뷰 : 작품은 여전히 그 시간을 담는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5. 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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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작품은 여전히 그 시간을 담는다

 

 한 노인이 무언가를 이고 길을 걷는다. 그의 등에는 네모난 무언가가 들려있다. 집에 도착한 남성은 그제야 자신이 이고 있던 것을 풀어낸다. 형형색색의 아트워크들. 이것이 그 남성, 오브리 파월이 그의 동료와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힙노시스 스튜디오의 작업물이었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 피터 가브리엘 등 세계 최고 뮤지션들의 앨범 커버를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 지금 세대에겐 잊힌 앨범 커버가 가졌던 의미와 힙노시스가 앨범 커버에 무엇을 담아내려 했는지, 영화는 오브리 파월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오브리 파월(이하 포)과 그의 동료 스톰 소거슨(이하 스톰)의 만남과 그들의 힙노시스 창립 계기, 스튜디오의 성장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1960년대, 당시만 해도 노래는 직접 음반을 사야지만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래의 의미와 가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앨범 커버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수의 얼굴만이 들어갈 뿐 특별한 창의성이 들어간 커버는 없다시피 한 것이다. 이때 스톰은 좀 더 다르게 생각했다. 음악의 콘셉트와 감정 표현을 앨범 커버에 드러낼 수 있다면? 포의 천재적인 재능과 스톰의 매력적이고도 창의력이 넘치는 아이디어로 그들은 곧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커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었다. 포의 인맥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커버 제작을 맡을 수 있었고, 독특하고 야성적인 느낌이 필요한 음반이라고 생각한 스톰은 스페이스 록에 기반해 커버를 만들고자 했다. 소용돌이치는 우주를 표현하고, 포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펜탁스 카메라로 작업했다. 인화지를 부분적으로 가리고 사진의 몽타주를 만드는 등의 힙노시스 작업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규범과 관례를 깨고 단순한 앨범 커버가 아닌 예술 작품을 만들고자 한 그들은 가수의 얼굴이 들어가야 출고시킨다는 음반사의 말에 멤버들의 사진을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 아주 작게 실었고, 곧 세상에 나온 'A Saucerful of Secrets'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작업을 시작으로 힙노시스는 'Atom Heart Mother'의 젖소 커버, 아직까지 여러 상징물에 인용되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프리즘 커버 등 수없이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CG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이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사하라 사막, 에베레스트산 등 배경지를 직접 찾아가 예술을 펼치며 작업했고, 인지도가 점점 더 높아지자 스튜디오를 차려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포를 중심으로 힙노시스와 함께 작업했던 주변 아티스트와 동료들의 진솔한 인터뷰로 영화는 이야기에 진실성을 더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빗 길모어와 닉 메이슨,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그리고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까지 당시 그들과의 작업기,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앨범커버, 힙노시스를 둘러싼 반응까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관객들도 충분히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힙노시스의 성장과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이 잘 알지 못할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풀어낸다.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MTV의 등장으로 뮤직비디오가 앨범 커버보다 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젠 음악의 콘셉트를 표현할 수단이 커버가 아닌 비디오가 된 것이다. 앨범 커버 작업을 주력으로 했던 힙노시스의 수요도 점차 떨어졌고, 결국 1984년 스튜디오는 문을 닫았다. 이후 포는 스톰과 함께 영화를 제작하려 하지만 그의 지나치게 이상적인 아이디어와 금전적인 상황이 맞지 않으면서 영화는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파산하게 되고, 이후 그들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의 결말은 행복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힙노시스를 잊을 수 없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예술적 함의를 담아내어 단순히 대중문화가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불린 그들의 앨범 커버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으며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

 

 좋은 작품은 아티스트보다 오래간다. 이제 늙고 노쇠한 포는 힙노시스를 이고 길 저편으로 멀어져 간다. 그러나 그가 등에 진 힙노시스는 여전히 아름다운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수미상관을 이루는 영화의 시작과 끝이 이상하게 절절하고 자꾸만 생각나게 만든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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