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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리뷰 : 투쟁하는 삶의 아름다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5. 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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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투쟁하는 삶의 아름다움

 

 다큐멘터리가 지향하는 진정성이 때때로 버거울 때가 있다. 모르고 살아도 큰 무리가 없었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냉엄한 사회의 현실을 다큐멘터리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응시하게 만들고야 만다. 이러한 이유를 핑계 삼아 한동안 다큐멘터리 영화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적 공백이 지닌 힘 때문일까. 감독과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의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즐겨온 나날들에 과부하가 걸린 모양인지 필자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표현해 보려는 진의를 좀처럼 파악하기가 버거운 요즘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실재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문득 밀려왔다. 아무튼 평소와는 조금 달랐던 선택 덕분에 정말 오래간만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신선한 재미를 느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감동하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의 카메라는 그동안 정부의 대량 감시를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 악명 높은 국제 테러범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과 같은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잔향을 남긴 인물들의 자취를 조명하고, 그들의 관계망을 통해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는 반향을 탐사해 왔다. 감독은 이번 신작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을 통해 미국의 저명한 사진작가 낸 골딘의 과거와 현재를 탐구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건 쉽지만, 실제 경험으로 축조된 기억을 견뎌내는 건 꽤나 힘겨운 일이라 말하는 낸 골딘의 육성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녀의 성찰을 아로새긴 듯 영화는 낸 골딘이 지나온 과거의 삶과 나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을 교차하며 한 인간이 진짜현실에서 온 힘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흔적들을 부지런히 기록한다.

 

 낸 골딘의 삶은 투쟁(鬪爭) 그 자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1973년 보스턴에서 열린 첫 단독 전시회를 시작으로 낸 골딘은 성소수자들과 함께 지내며 찍은 작품들은 선보였다. 영화의 장면 곳곳에는 그녀의 대표작인 사진집 <성적 의존의 발라드>(1986)와 동명의 슬라이드 쇼, 기획 및 큐레이션을 총괄한 종합 전시 <증인들: 우리의 사라짐에 저항하여>(1989)의 일부가 삽입되어 있다. 스크린을 통해 접한 낸 골딘의 사진들은 그녀의 과감하고 독창적인 예술적 감각과 더불어 소외되고 억압받는 존재들이 외치는 저항의 이미지를 뿜어낸다. 전설이라 불리는 사진작가의 현재는 혈기왕성한 사회 운동가의 면모가 주를 이룬다. 낸 골딘은 2017‘P.A.I.N’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미국 전역에 오피오이드 위기를 확산한 옥시콘틴 제약사 퍼듀 파마와 회사의 실소유주 새클러 가문을 겨냥하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새클러 가문에게 받는 기부금으로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전 세계의 대형 미술관(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등)과 박물관(루브르, 대영 등)을 겨냥하여 전방위적 활동(약통 투척, 시신 퍼포먼스 등)을 펼친다.

 

 영화가 전부를 담아내지는 못했다지만, 낸 골딘의 삶은 뒤돌아보던 예견을 해 보던 수난과 검열 그리고 차별로 가득하다. 함부로 평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녹록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낸 골딘은 그녀에게 주어진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그녀 안에 잠재한 창조성을 꽃피워왔다. 그녀의 유년 시절 목도한 언니 바버라의 절망은 낸 골딘에게 카메라를 들게 한 계기가 되었고, 이후 낸 골딘의 삶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감내하고 이 과정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제목이 말하는 그대로 그녀의 인생은 온갖 유혈사태로 검붉은 피비린내에 상처받아왔지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순간을 도출해 낸다. 애인의 폭력에 시퍼렇게 멍든 눈을 숨기지 않고 사진으로 담아낸 젊은 날의 낸 골딘과 새클러의 거짓말이 사람들을 죽인다라고 외치며 바닥에 널브러진 약병과 사람들로 현대 예술의 유의미한 한 장면을 연출한 지금의 낸 골딘이 삶으로 직조한 아름다움은 함부로 잊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나아가 결말을 알 수 없는 현실이라는 고난 속에서 피어났을 그것이 지닌 숭고함에 조심스레 존경을 표하고 싶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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