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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동> 리뷰 : 붉은 계절의 비애 아래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5. 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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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동>

붉은 계절의 비애 아래서

 

 영화 <송암동>1980524일 광주항쟁 중 송암동 일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송암동은 광주의 외곽에 위치해 있어, 당시 피로 물든 광주 시내의 혼돈과 다소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송암동 부근에서 목포 방향으로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있던 전투 교육사령부 교도대와 그 일대를 지나던 공수부대가 맞닥뜨렸고, 서로를 시민군으로 착각해 오인 사격을 퍼부으면서 송암동의 평화는 끝난다. 그들이 오인 교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아군 9명이 숨진 상태였으며,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후였다. 그러나 공수부대원들은 철수하지 않는다. 그들은 착각에 대한 분노와 전투 후의 흥분을 지닌 채로 주변의 가택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보통 도청 중심으로 알려져 있죠. 사진이나 영상자료들도 그렇고요. 송암동 민간인 학살 사건은 사진 한 장, 비디오 한 컷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을 극영화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이유입니다.”

 

 이조훈 감독은 극영화적 효과로 여전히 베일에 감춰져 있는 그날의 사건을 추적한다. 영화는 국회의 광주청문회 증언을 토대로 시작하여 민간인이 가지고 있는 총기를 회수하기 위해 송암동에 가야만 했던 시민군 최진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장면들은 실제 사건의 증거 자료와 배우들의 재현이 번갈아 제시되면서 관객을 자연스럽게 역사에서 지워진 그날의 시간으로 데려간다. ‘시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강조하는 장치들은 우리에게 이후 일어날 비극을 미리 암시한다. 일상적인 대화와 웃음소리 속에 깨끗한 셔츠, 손가락이 넉넉하게 들어가는 신발 등의 사물은 알레고리로써 작용하고 고요한 불안감을 잠재하고 있다.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웃음소리와 상징물이 어떻게 끝을 맺게 될지 예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니만큼, 감독의 이전 작품인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처럼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사진 한 장 없고 비디오 한 컷도 없는제약적 여건에서는 사건 조명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중심 도시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던 송암동 사건을 수면 위로 올리는 것으로 이 영화의 의미는 충분하다. 이 사건은 4차례에 걸쳐 공식적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진상과 처벌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증언에 의하면 당시 민간인 사망자는 12명이다. 영화 후반에 삽입된 인터뷰는 이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말한다. 당시 현장에서 군인으로 있었던 인터뷰이는 그들의 학살 행위가 분풀이였음을 자백한다. , 그들은 단지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보다 힘이 없고 약했기 때문에 한순간에 분풀이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관객은 영화의 초입부터 결말을 예상할 수 있지만, 그들은 아무도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하찮은 이유로 쉽게 죽게 되는지 말이다.

 

 “그래도 국군인데, 우리를 쏘겠습니까? 선량한 시민을.” 끝까지 신분이 명확하지 않은 영화 속 시민군의 공허한 눈빛이 가시처럼 기억에 박힌다. “쏘덥디다. 국군이, 우리를.” 초점 없는 눈으로 그가 보고 있던 것은 먼저 간 동지들의 영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많이 잃어 더는 돌아갈 수도 없고, 문을 박차고 3, 40명의 군인 앞에 설 수도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한이었을까? 곧 죽게 될 미래였을 수도 있겠다. 그는 이미 그것을 너무 잘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슴 한켠이 장미처럼 붉게 물드는 오월이다. 누군가에게는 찔레 냄새보다 피 냄새로 기억될 계절일 테고, 또 누군가는 아카시아 밑에서 최루탄의 메케함과 짓밟히는 친구, 가족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상처는 손으로 덮어 가릴 수 있지만, 어떤 상처들은 영원히 그 시간에 머무른다.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표현하는 단어로 단장(斷腸)이 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 증언했던 사람들과, 그날의 기억을 피해야만 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숨을 쉬는 것마저 죄악이 됐을 시간을 기억하며, 이 글을 적는 나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다 죽은 영령보다 무도한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과 함께 비탄하고자 한다. 억울하게 찢긴 시간은 그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들을 심판대에 세우는 것은 그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진상이 밝혀져 여전히 송암동의 악몽을 기억할 이들과 잠든 영혼이 편안하기를 기원한다.

 

- 관객리뷰단 조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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