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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이야기> 리뷰 : 알다가도 모를 '나'라는 세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5. 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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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이야기>

알다가도 모를 ''라는 세계

 

 몸이 아프면 사는 게 피곤하다. 해야 할 일도 하고픈 것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버겁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하루이틀이야 어떻게든 견뎌내어 볼 테지만 육신을 파고드는 고통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삶은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영화 <모르는 이야기는> 척추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진통제로 겨우 버텨내는 기은(정하담)과 기언(김대건)의 일상을 담고 있다. 매일같이 복용하는 진통제의 진정 작용 탓인지 기은과 기언은 거의 모든 시간을 깊은 잠에 빠져 지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꿈속에서의 두 사람은 자유롭다. 현실세계에는 감히 엄두도 못 냈을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삶을 만끽한다. 어떤 꿈에서는 모든 이에게 선망의 대상인 패셔니스타가 되어 보기도 하고, 또 어떤 꿈에서는 자기 내면을 과감하게 표출하는 예술가가 되어 보기도 하며, 또 다른 꿈에서는 호기심을 참지 않는 용감무쌍한 인플루언서가 살아본다. 음울과 좌절만이 감도는 현실과는 정반대인 꿈의 세계를 만끽하는 두 사람. 그들의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떠오른다.

 꿈에서 깨어난 순간, 마취가 풀린 것처럼 미뤄둔 온갖 통증이 밀려온다. 꿈과 현실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 기은과 기언은 잠들기를 선택한다. 두 사람은 정신이 들 때마다 더 많은, 더 강한 진통제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는 애써 삼켰던 약을 다시 토해내며 다시 고통스러운 현실로 곤두박질친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이 제자리를 잃고 여기저기서 방황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비로소 가장 깊은 꿈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꿈에서 진짜 ''를 마주한다. 그러고 보니 깊은 꿈에 진입하기 전, 기은과 기언은 무수히도 많은 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두 사람이 만난 사람들은 표현은 제각각이나 두 사람에게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라는 둥, 자아를 찾아보라는 둥 조언으로 포장한 은근한 강요를 내비친다. 반복되는 이러한 만남 속에서 마주한 여러 인생 속에서 기은과 기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난제를 짊어진 채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에서 내몰린다. 결국, 기은과 기언의 꿈은 두 사람을 내가 '원하는' 나와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 사이에 세워두고는 두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결정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은과 기언에게 부여된 요구는 어찌 보면 한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로 살기 위한 선결 과제는 ''라는 존재의 본질과 그것이 품고 있는 욕망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철학적인 주제를 감독이 상상하는 발랄한 이미지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파스텔톤으로 꾸민 배경 속에서 풍선으로 장식한 드레스를 입고 선 기은과 진분홍 가발을 쓰고 이젤 앞에 앉아 있는 기언이 등장한 장면에서 뿜어 나오는 통통 튀는 매력은 가히 충격적이다. 참으로 엉뚱하고도 특이하여 한없이 가벼워 보이던 이 장면의 연장선에서 삶을 고찰하는 순간을 경험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그리고 영화가 그려내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그림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극대화된 자연의 모양과 소리들의 조화는 훌륭한 한 편의 예술 작품을 감상한 만족감을 부여한다. 이토록 실험정신이 투철하며 무모하리만큼 도발적인 영화를 경험한 것은 오랜만이라 기분 좋은 낯섦을 느낀다. 더불어 지나간 장면들을 곱씹어볼수록 ''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해답을 알 수 없는 고민에 빠져든다. 영화의 마지막, 기은이 떠나간 동굴을 떠올리며 내가 죽이려 했으나 죽이지 못한, 어쩌면 죽였는지도 모를 내 안의 또 다른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에 빠져 본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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