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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이정홍 감독, 박기홍‧안주민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3. 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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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 씨네토크

2023.12.26.

 

초청 : 이정홍 감독, 박기홍안주민 배우

진행 : 김병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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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평론가 김병규라고 합니다. 이정홍 감독님과 박기홍,안주민 두 배우분들 자리에 모셨습니다. 관객 여러분께 먼저 인사 말씀 한 마디씩 부탁드리겠습니다.

 

박기홍 : <괴인>에서 기홍 역을 맡은 박기홍입니다.

 

안주민 : 안녕하세요. <괴인>에서 정환 역을 맡은 안주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정홍 : 안녕하세요. 방금 보신 영화를 연출한 이정홍이라고 하고요. 오늘 <괴인> 개봉의 공식적인 마지막 GV입니다. 그래서 뜻깊은 자리이고, 오늘 가능한 한 정확하고 솔직합 답변할 수 있도록 집중해 보겠습니다.

 

김병규 : <괴인>의 마지막 공식 행사라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마음이 무거워졌는데요. (웃음) 제가 감독님과 배우분들에게 몇 가지 질문 먼저 드리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뉴커런츠상을 포함한 4개의 상을 수상한 이후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그리고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과 수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1월에 개봉을 했고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씨네21에서 선정한 2023년 최고의 한국 영화 1위에 선정되기도 한 작품입니다. 세 분 다 장편 영화 개봉은 처음인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요. 직접 영화를 만들고 출연하신 분들이 개봉의 시간을 통과하고, 관객분들과 외부의 평가를 통과하면서 느끼는 어떤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영화에 대해서 좀 달라진 인상이 있다면 말씀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정홍 : 일단 제가 첫 장편 영화로 개봉을 하다 보니까 개봉 전에는 긴장을 엄청 많이 했는데 그랬던 것에 비해 생각보다 뭐 별 거 아니네 하고 지나간 것 같고요. 제가 이 영화의 창작자이지만 여러 요소들을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게 아니고, 또 관찰자 입장에서 만든 영화이기도 해서 완성된 영화 자체로 발산하는 어떤 기운을 제가 만든 영화임에도 온전히 느끼지 못했어요. 거리감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그게 되게 아쉬웠는데. 개봉 끝날 때쯤 영화를 다시 봤는데 영화가 객관적으로 보이면서 그제야 조금 영화가 느껴지더라고요.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어떤 점은 제가 의도했던 대로 만들어진 부분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점은 미숙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안주민 : 영화 촬영을 마치고 개봉한 시기 사이에 많은 변화는 아니지만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일적인 부분도 좀 바뀐 것 같고. 개봉하고 나서 GV를 같이 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었고, 관객분들께서 이 영화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박기홍 : 저 같은 경우에는 개봉하고 난 뒤에 약간의 반성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까지는 영화랑 책을 꽤 많이 봤었는데 32살 때부터인가? 그때 삶에 치이고 너무 바쁘니까 영화랑 책을 보는 게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나 하면서 조금 등한시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에 GV를 다니거나 정홍이 때문에 요즘에 새로운 영화를 소개받기도 하고, 저희 영화랑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독립예술영화들을 요즘에는 조금씩 찾아보고 있습니다. 답은 아직 못 내렸어요. 거추장하게 영화가 내 인생에 어떻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안 봤을 때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삶이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에는 전보다 행복해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병규 :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던 첫인상이라고 한다면 침입과 세입의 영화라는 표현을 떠올렸는데요. 제가 만든 표현은 아니고 요시다 기주라는 일본의 영화감독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설명하면서 쓴 표현인데요. 침입의 영화는 화면을 차지해서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보이는 유형의 영화고, 반대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세입자의 영화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물이 화면에 존재하고, 무언가 행동을 하면서 그 공간이나 시간을 점유하고는 있지만 주인이 아닌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오즈의 영화는 세입자의 영화 혹은 세입자의 쇼트를 활용하는 감독이라는 표현을 썼던 적이 있는데요. <괴인>은 침입의 영화인 것처럼 시작을 해서 마치 세입자의 영화인 것처럼 끝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기홍이라는 인물이 놓여있는 처지를 생각해 본다면 침입자이기도 하다가 결국은 그가 세입자였다는 것이 드러나는 식으로 두 가지의 흐름 내지는 갈래가 영화 속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굉장히 강력하게 제기하는 장면이 저는 첫 장면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문이 잠긴 곳 어딘가에 가서 침입을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그 순간에 기홍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액팅 자체도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공간과 카메라의 움직임도 대단히 절묘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어떻게 이런 이야기에 접근을 하셨고, 그리고 첫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시고 기획하셨는지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정홍 :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가 나름의 개성이 있다고 하면, 주인공이 다른 여타 영화들에 비해서 그다지 치명적인 문제나 사건을 겪고 있지 않잖아요. 흔히 일상적이라고 얘기할 만한 일들을 겪고 있는데, 그럼에도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어떤 식으로든 영화가 극적으로 보이길 원했어요. 기홍에서 시작한 영화이지만 기홍 주변의 인물들에 더 접근하는 식으로, 개인의 어떤 내면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끝나는 영화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에서 중심인물인 기홍의 주도권이 점점 내려가는 게 맞는 것 같고, 동시에 다른 인물들의 주도권이 커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첫 장면은 사실 첫 장면이 아니었어요. 첫 장면 이후에 경준이가 기홍이를 부르면서 깨우는 장면이 원래 첫 장면이었어요. 지금 첫 장면은 플래시백 장면이었어요. 기홍이가 집주인 내외랑 셋이서 같이 처음 술 마실 때 갑자기 멍해지잖아요. 그 이후에 붙는 장면이었어요. 기홍 입장에서는 굉장히 공포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에 그 상황과 분위기에 맞게 공포감을 담을 수 있는 이미지로 찍은 거죠. 편집을 하니까 오늘 자리에 계시지만 저희 촬영 감독님이 영화 시작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뭔가 나이스하지 않다고. 그러면서 갑자기 밤에 저한테 전화를 해서 플래시백 그게 맨 앞으로 가도 되는지 아이디어를 내시더라고요. 저는 전혀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말이 되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영화의 첫 장면이 바뀌었고, 플래시백 자리에 빈칸이 생겼어요. 저희가 부산국제영화제 출품하기 일주일 전에 고시원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을 재촬영했어요. 그 순간 제가 촬영 감독님과 서로 주고받은 어떤 신뢰랄까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여러 좋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특히 그 재촬영이 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병규 :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 영화에 대단히 주요한 과업 중에 하나는 각각의 인물들이 간직하고 있는 개성적인 면모와 그 인물들이 산출해 내는 어떤 방향성들이 영화 안에서 언제,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라고 보는데요. 대단히 핵심적인 만남 중에 하나는 기홍과 정환이라는 두 인물의 첫 만남이겠죠. 정환이 기홍에게 뭔가를 빌리는데, 빌린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의 관계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아요. 무언가를 빌리고 공유한다는 상태 자체가 인물들의 관계를 대단히 불순한 방식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인데요. 기홍이라는 인물은 정환을 매개로 현정과의 관계를 마치 빌리고 있다는 느낌, 정환이라는 인물은 기홍을 통해 하나와 연결되는 지점들을 빌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두 사람이 처음 맞닥뜨렸을 때 영화가 대단히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근데 이게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을 만큼 대단히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를 움직이게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인물을 어떻게 처음 등장시키고 만나게 할지가 시나리오에 중요한 지점 중에 하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배치에 대한 결정의 이유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정홍 : 그 무렵쯤에 저는 관객들이 기홍을 보고 , 정말 친구 없겠다그런 생각을 하길 바랐어요. 친구들과 술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눅눅한 어떤 풍경 속에 기홍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보이고, 그렇다고 그때부터 관객들이 이미 기홍에게 연민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저 친구가 친구가 없겠다 정도의 인상을 풍기길 바랐어요. 그런 기홍에게 처음으로 인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그전까지 등장했던 사람들과는 결이 다르게. 그때 저는 어떻게 생각을 했냐면, 젖어 있는 저택과 젖어 있는 책, 그 집의 모든 풍경이 정환을 대변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갑자기 열대 과일을 들고 나타나서 좀 드시라고 하면서 나타난 기홍이는 정환이에게  햇살 같은 느낌인 거죠. 그런 만남 이후에 정환이라는 인물이 기홍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길 원하게 되죠. 사실 기홍이도 젖어 있음의 정도로 따지면 정환만큼 아주 크게 젖어 있던 사람이었던 거죠. 차 트렁크가 고여 있는 물 때문에 내려앉잖아요. 그래서 이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고. 그리고 우리가 영화에서 사건을 쫓아가지만 <괴인>에서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계기가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둘을 빠르게 친구로 만들었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병규 : 말씀해 주신 것처럼 둘의 관계가 그냥 순식간에 물들어버린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요. 그래서 배우분들께도 여쭤보고 싶어요. 박기홍 배우께서는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전부터 아이템이나 제작 과정을 알고 계셨다고 얘기를 들었는데요. 전반적인 이야기나 기홍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그리고 그 인물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기홍 : 감독님 하고는 오랫동안 친구여 가지고, 시나리오가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에는 아이템을 이야기하고, 그다음에는 집주인에 관한 스토리가 구축이 되고, 목수 기홍이 주인공으로 나타나게 됐어요. 주인공 이름이 제 이름이랑 똑같으니까 사실상 나를 모티프로 했나 싶었는데, 사실은 정홍이의 이야기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감독님들 시나리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나리오에 어떤 인물이 웃는다, 어떤 감정의 상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세세하게 적혀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건이 없고, 조금 밋밋하지 않나라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정작 영화가 나오니까 시나리오에서 받은 인상보다 더 강력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친구가 영화적인 언어가 좋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김병규 : 촬영하는 단계에서는 그럼 어떠셨나요? 현장에서 배우의 연기나 다른 요소들로 표현되어야 하는 빈칸이 많았던 텍스트라고 한다면 촬영하는 단계에서는 그걸 채워나가기 위해 어떤 말씀들을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

 

박기홍 : 제가 정홍이의 단편들을 몇 번 도와준 적이 있는데, 정홍이의 스타일이 현장에서 배우한테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않거든요. 그냥 계속 기다려주고, 이건 다시 해야 된다 정도로만 이야기해 주고. 이번 현장에서도 제가 뭐가 잘못됐는데라고 물어보면 넌 잘했는데 다시 가야 된다 그러더라고요.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테이크를 몇 번을 가든 크게 개의치 않았고, 어차피 테이크는 여러 번 갈 거니까. 많게는 스무 번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김병규 : 안주민 배우님은 영화에 합류하게 된 단계가 박기홍 배우와는 좀 다르실 거라고 생각이 돼요. 그리고 정환이라는 인물은 사실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고, 앞뒤 상황이 많이 생략되어 있고,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계속 상상하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완성된 시나리오 자체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처음에 받으셨는지 궁금하고, 어떤 관점 내지는 생각으로 정환이라는 인물에 접근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주민 : 제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페이지가 되게 두꺼웠어요. 시나리오를 몇 번을 봤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이게 뭐지 그런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그때 저는 독립영화보다는 아무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업 영화에 좀 더 길들여져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슬프고, 기쁘고, 무섭고 이런 게 전혀 없다 보니까 너무 잔잔한 스토리인 것 같아서 처음에는 그냥 그랬고, 편집을 굉장히 오래 하셨던 걸로 아는데 그 뒤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제가 너무 놀랐었죠. 그리고 극 중에서는 정환이 어떤 일을 하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전혀 나오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한량 같은 그런 옷도 펑퍼짐하게 입고 촬영을 하긴 했어요.

 

김병규 : 그렇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한테 혹시 설명을 요구했다거나 그런 건 없으셨나요?


안주민 : 정환 역에 대해서 감독님이랑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했어요. 어떤 감정으로 접근해야 될지 여쭤보고 작업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 없이 막 연기하고 그랬던 건 아니고요.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웃음)

 

김병규 : 감독님께 한 가지 정도만 더 질문을 드리고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보는 걸로 할게요. 저는 이 영화가 기홍의 시선을 전제로 두지만 계속해서 타인들을 충돌시키고 맞닥뜨리는 과정 자체가 아까 언급한 침입 내지는 세입의 과정과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몇 개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겹쳐졌거나 덧대어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인데요. 도식적으로 구분을 한다면 3개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 들어요. 기홍이라는 목수를 관찰하는 이야기, 정환과 현정이라는 사랑 없이 사는 약간 돈 많은 부부를 관찰하는 이야기, 그리고 홈리스 여성인 하나를 관찰하는 이야기. 굉장히 사회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 가지 재료들을 영화 안에 가지고 와서 한 집에 몰아넣어두니까 굉장히 독특한 픽션으로 거듭났고, 그런 결과물이 나타나버리게 된 거죠. 그래서 관찰한 재료들이 굉장히 여러 개의 선으로 걷잡을 수 없는, 이 표현을 꼭 쓰고 싶었는데 원심력으로 뻗어나가는 유형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영화 속에 있는 재료들을 어떤 과정으로 구상하시고 또 이것들을 한 편의 영화 안에 묶어야겠다고 어떻게 결정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정홍 : 짚어주신 대로 서로 다른 세 인물이 오랜 장편 준비 기간 동안 띄엄띄엄 저에게 다가왔어요. 처음 장편 영화를 찍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해에 나름의 예민한 어떤 감각을 가지고 책도 읽어보고, 뭔가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그렇게 조바심이 나던 무렵에 우연히 어떤 TV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어린 가출 청소년 여자 아이가 아주 강한 인상으로 남았어요. 본인이 처한 환경에 비해 너무나 천진하고 또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이 저와 정반대로 꽤 당당하고 솔직하고 자유로운 느낌의 인물이어서 그 친구에게 마음이 뺏긴 것 같아요. 그래서 맨 처음에 이 친구의 이야기로 장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20대 후반의 몇 년 동안은 영화를 찍긴 찍어야 되는 마음과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때문에 되게 불안하게 산 것 같아요. 좀 뭐랄까. 마음에 약간의 그늘도 생긴 것 같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절망과 허무 속에 있다는 것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히게 됐어요. 제가 그때 당시에 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인간이 과연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복잡하고 어둡고 한편으로는 추악한 내면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까?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인간은 그렇게 고립되고 고독한 존재라는 걸 살면서 난생처음으로 느끼게 됐어요. 그런 감각이 20대 후반의 저에게 굉장히 공포스럽게 다가왔어요. 한편으로는 그게 제가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감각이었기 때문에 이걸 영화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떠오르는 인물이 정환이었어요. 소통이 단절된 메타포로써 아내를 짝사랑하고 있고, 아주 고독한 사랑을 하는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써보다가 그것도 제가 솔직하게 쓸 수가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겉으로 우울감이 더 드러나고 지금의 정환보다 훨씬 나이가 있는 중년의 남성 캐릭터였는데, 그 당시에 마음을 빼앗겼던 멜랑콜리한 영화들에서 캐릭터를 따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제일 가장 가까웠던 친구 기홍이가 극 중 상황처럼 갑자기 다니던 회사를 관두더니 목수가 되겠다는 거예요. 저도 그 당시에 돈벌이가 변변찮아서 기홍이를 같이 따라다녔는데, 이 친구 이야기는 제가 꽤 솔직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타인 중에서는 잘 아는 사람이고, 저와 닮은 점이 있지만 저보다는 더 매력적인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기홍이를 주인공으로 만들면서 저에게 차례차례 강한 인상을 줬던 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꽤 단시간에 융합된 것 같아요. 정리를 해보자면 어떤 절망과 허무 속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는 어떤 인물이 아주 기적적이라고 할 만큼 이상한 관계를 통해서 소통의 가능성을 체험해 보는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관객 1 : 아까 기홍 배우님이 20번 정도 테이크를 간 장면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배우님 두 분께 질문드립니다. 촬영하시면서 가장 많은 테이크를 간 장면과 횟수가 궁금하고요. 그리고 그러한 촬영을 진행할 때 감독님께서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박기홍 : 정환이를 처음 만날 때 천혜향을 갖다 주는 장면이 테이크를 가장 많이 간 것 같아요. 감독님 입장에서는 기홍이한테 되게 중요한 장면인데, 제가 뭘 잘 못했나 봐요. 그래서 테이크를 50번 정도 간 것 같은데요. 막상 완성된 영화로 보니까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인 것 같아요. 처음으로 기홍이가 누군가를 만나는 거니까. 그래서 그 장면을 한 50번 정도 촬영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정홍 : 하루에 50 테이크를 전부 촬영한 건 아니었어요. 그 장면에서 해가 드는데, 저희가 예산상 자연광을 활용하다 보니까 촬영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었어요. 그 장소가 해가 드는 시간이 되게 짧아요. 하루에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대략 15분에서 20분 내외였어요. 그래서 산 사이에 해가 드는 시간대에만 촬영을 했고, 촬영 기간 내내 50 테이크 정도 촬영한 것 같아요.

 

김병규 : 설명은 해 주셨나요? OK컷인지, NG컷인지

 

박기홍 : 아니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이정홍 : 테이크 관련해서 저희 촬영 환경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기홍이는 저의 오랜 친구고,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믿을 구석이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영화 촬영 초반부터 그냥 제가 마음을 먹어버렸어요. 기홍이는 기본적으로 30 테이크씩 찍어야겠다. 실제로 그렇게 했어요. 아까 20 테이크는 사실 되게 적게 찍은 장면이에요. 그렇게 왜 찍었냐면, 아마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앞에 계신 두 분은 전문 연기자가 아니라 연기를 처음 해보시는 분들이에요. 어떤 느낌이냐면 제가 이분들에게 구체적으로 연기를 주문할 수가 없어요. 기술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상황 자체에 집중을 해야 했어요. 이 분들이 한 15 테이크 쯤 가면 연기가 약간 말이 되거든요. 80점짜리가 되는데, 그렇게 가장 빛나는 순간에 제가 조바심이 나서 20점을 더 높이기 위해서 이분들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얘기하면 갑자기 30점이 돼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이 100점까지 스스로 집중하시게끔 기다려야 되는데, 사람의 집중력이라는 게 매 순간 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 현장에서의 특수성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고, 일반적인 어떤 영화 현장과는 분명히 다른 접근이 있었다는 전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안주민 : 저도 한 60 테이크 정도 찍었던 것 같아요. 제 와이프랑 기홍이가 밤에 밖에 나갔을 때, 제 방에서 둘을 찾으러 2층까지 올라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되게 많이 촬영했어요. 사실 어떤 장면을 영화에 썼는지 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그때 기억은 한 테이크마다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어요. 계속 테이크를 가도 싫거나 짜증 난 건 없었어요. 제 일이기도 했으니까. 열심히 연기를 해보려고 했어요. 제가 제일 짧게 간 테이크가 어떤 장면이었죠? 감독님?

 

이정홍 : 마트 계산하는 장면은 한 테이크로 끝났습니다.

김병규 : 그 테이크는 왜 한 번에 오케이가 났나요?


이정홍 : 그 장면은 찍으면서도 좋았어요. 처음으로 주민 배우님께서 한 테이크를 찍고 되게 확신에 찬 얼굴로 저에게 다가오시더라고요. 제대로 된 거 아니냐고. 근데 사운드 감독님이 다시 가야 될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웃음) 다시 사운드를 확인하시고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테이크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안주민 : 사실 저는 연기를 처음 했잖습니까? 근데 이게 회차가 지나면 지날수록 연기가 잘 된 것 같아, 이 장면은 감독님이 만약에 오케이 하더라도 다시 해야 될 것 같아 그런 감이 생기더라고요.


이정홍 :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영화를 좀 길게 찍었거든요. 계절 변화도 담아야 해서.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처음처럼 많이 찍지는 않았어요. 기홍이 같은 경우에는 두 번째 테이크에서 말도 안 되는 걸 해내기도 하고, 두 분 다 10번 내외에서 좋은 연기를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김병규 : 연출자 중에서 수십 번의 테이크를 계속해서 가는 분들이 꽤 적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홍상수 감독님이라든지 이창동 감독님 역시 그런 식의 방법론을 활용하시고, 사실 그 테이크 하나하나에 대해서 고유한 판단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 과정 자체를 영화 만들 때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아요. 그런 자기만의 방법론으로 배우들을 뭔가 다른 모습, 다른 각도, 다른 형태로 깎아보고 싶은 연출자의 감각 내지는 시선 혹은 직관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논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관객 2 : 이 영화 GV랑 꼭 같이 보고 싶었는데 신영극장에서 이렇게 볼 수 있게 돼서 너무 기뻤고요. 영화가 끝났는데도 아직도 영화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너무 즐거운 것 같아요. 중간에 깜깜한 산 같은 데서 누군가 자전거 타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두 사람이 현정이와 정환인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제목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이정홍 :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은 제가 감독으로서 의도를 주고 싶었던 장면인데요. 결과적으로 그게 아주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는 저도 아직 판단이 어려운 것 같아요. 자전거 타는 장면 앞에서부터 기홍이와 집주인 부부가 함께 식사하는 장면부터 기홍이라는 사람에게 이 부부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질문하게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환보다 기홍이 오히려 현정의 남편 같기도 하고. 그리고 테니스장에 갔더니 정환이 자기의 깊은 고민이자 중요한 비밀을 기홍에게 아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 순간에도 기홍이는 자기 자리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 정환이가 기홍이한테 테니스 배우자고 했을 때도 기홍이는 반사적인 질문으로 사모님이랑 하시지가 떠올랐고, 근데 결국엔 본인이 현정이 대신에 그 자리에 가 있잖아요. 그게 이상하다는 걸 기홍이가 인지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다음에 나오는 자전거 장면은 기홍이의 어떤 리액션이랄까, 어쩌면 기홍이의 꿈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장면에서 뭔가를 좀 이상한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촬영은 현정과 정환으로 했는데 어두웠기 때문에 모든 관객들이 두 사람을 기홍과 정환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로 인지하는 게 비교적 용이하실 것 같아요. 그 남자가 누구냐를 알아차리는 것보다는. 제가 오케이 컷을 고를 때도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 기준으로 정했어요. 남자가 정환일 수도 있고 기홍일 수도 있고. 그러면서 기홍이의 어떤 혼란을 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목은 제가 정말 여러 번 질문을 받았어요. 근데 마음에 드는 답변을 잘 못하겠고, 사실 최근에서야 제목을 좀 잘못 지었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영화가 사실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제목에 기대어 영화를 바라보실 것 같은데, 아주 많이 하시는 얘기가 누가 괴인일까?인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게 이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1번일까? 제 스스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제목에 관해서는 지금 뭐라고 분명한 답을 드리기가 어렵지만, 영화를 곱씹으실 때 제목에서 오히려 멀리 뛰어나가봐도 좋지 않을까 그런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병규 : 자전거 쇼트는 저도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괄호가 쳐져 있는 장면이라고 할까요? 아까 꿈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지만, 이 영화는 잠들고 깨어나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원래 편집본대로라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모두 깨어나는 것과 잠드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과연 이것이 누구의 꿈인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굉장히 화목해 보이는 커플의 이미지잖아요. 그것을 누구의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홍이 그 자리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일지, 아니면 정환이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꿈속에서 만들어 낸 건지, 내지는 기홍이 정환과 현정의 불가능한 관계를 불순하게 상상하면서 떠올린 이미지일지. 괄호를 쳐둔 뒤에 그 안에 여러 가지 가능성으로 열어두고 있는 장면인 것 같아요. 이 쇼트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지만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감상을 자유롭게 뻗쳐나갈 수 있게 만드는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의 쇼트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관객 3 : 2023년 최고의 독립영화를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크레디트를 보면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가 보조 출연하신 분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시더라고요. 그리고 보조 출연자가 많은데도 컨티뉴이티가 끊기지 않고 장면 전환이 자연스러워서 영화가 굉장히 디테일하다고 느꼈고,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이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보조 출연자를 많이 섭외해서 영화를 촬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두 배우님께는 부산국제영화에서 상영본을 처음 보셨을 때의 인상이나 느낌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정홍 : 일단 제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어요. 저희가 촬영이 들어가는 시기에 갑자기 코로나가 발병하면서 모두들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시기가 됐어요. 원래 저희 정도 규모의 비교적 작은 독립영화라면, 물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지만 보조 출연을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담아내기에 좀 유리한 면이 있거든요. 다른 어떤 상업 영화에서는 할 수 없는 거죠. 뭐랄까요? 도둑 촬영처럼 자연스럽게 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모든 보조 출연자를 섭외해야 되는 상황이 저한테 갑자기 주어진 거예요. 애초에 시나리오를 썼을 때와 만들어진 영화가 굉장히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보조 출연자를 섭외하는 게 아마 꽤 큰 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지금보다 이미지를 덜 통제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출연자들을 통제해야 하고 카메라를 많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주어진 거죠. 그런 일종의 핸디캡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기홍 : 저 같은 경우에는 영화의 주인공 이름도 기홍이고, 다큐멘터리 같은 면도 있고 그래서 영화 속에 제가 싫어하는 저의 모습이 조금은 반영이 돼 있거든요. 스크린으로 그런 장면을 제가 직접 보고 있으니까, 뭐랄까 이게 영화가 아니었으면 사실상 안 보고 피했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저는 그런 부분을 알고 있거든요. 그걸 도망가지 않고 제가 직접 보고 있으니까 약간은 미세하게 인간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GV에서도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인 정홍이가 저한테 주는 선물처럼 느꼈던 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주민 :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영화를 보긴 봤지만 정말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질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화면 속의 제 연기를 보면서 저만 아는 게 있잖아요. 이때 이렇게 연기를 할 걸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괴인>이 상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래서 그때 참 행복한 날이었는데도 저는 굉장히 우울하더라고요. 감독님과 다른 스태프들이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냐고 저한테 그랬어요. 잘하셨다고, 괜찮다고 했는데 저는 되게 마음이 불편했어요. 근데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까 비로소 영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제 연기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게 됐어요.

 

관객 4 : 기홍 배우님께 질문드립니다. 기홍이라는 이름이나 하고 있는 직업이 저한테는 의젓하다고 느껴지는데, 기홍이라는 사람을 연기하신 기분이 어땠는지 혹시 부끄럽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하고요. 배우를 한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기홍 : 사실 부끄러움은 조금 있었죠. 근데 저는 현장에서 중요한 게 기세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다행히 현장에 촬영 감독님도 그렇고 예전부터 알고 있던 분들이 있어서 그렇게 많이 긴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망하면 내가 망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망하는 거고 (웃음) 나는 뭐 괜찮다 이런 마음으로 촬영을 해서 쫄거나 그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출연을 결심했던 이유는 그때 시기적으로 맞았던 것 같아요. 3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가 목수로 일한 지 6~7년 정도 됐던 시점이고, 목수 일이 재미가 없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수락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홍이가 그때보다 더 빨리 제안을 했거나 지금 제안을 했다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안 한다고 했을 것 같아요.

 

김병규 : 감독님께 비슷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괴인>이라는 영화는 비전문 배우와 훈련이 되어 있는 연기자들이 섞여 있고, 그 중심에는 연출자와 실제 친분이 있는 박기홍이라는 사람이 배우가 되어 기홍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굉장히 복합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는데요. 이런 식으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촬영을 진행했을 때 어떤 것들을 느끼셨는지가 궁금했고, 이러한 방법론을 다음 영화에도 지속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런 부분들을 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이정홍 : 제가 단편영화부터 비전문 배우분들과 촬영을 주로 했어요. 지금 첫 장편 영화에 출연한 거의 모든 분들이 연기를 처음 하시는 분들이에요. 두 분을 제외하고는. 제가 최근에 스스로 깨달은 게 있는데, 단편영화를 찍을 때 비전문 배우와 작업을 했던 이유는 어떤 사실주의적인 표현을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괴인> 때는 단편 때랑은 제 스스로 느끼기에 달랐던 것 같아요. 사실주의적인 표현만을 위해서 비전문 배우와 작업하고 싶었던 게 아닌 느낌이 분명히 있었는데 명확히 정리를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영화가 현실을 모사하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현실과는 다른 영화만의 다른 세계(안전하게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는)가 창조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기홍이를 섭외할 때부터. 그 관점에서 보자면 저한테 앞으로 비전문 배우와 지속적으로 작업할 것인지라는 질문은 다음에 만들 영화의 이미지가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과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는 낯섦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드는 생각은 배우와의 작업을 통해서 그런 낯선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도전해보고 싶어요. 짐작컨대 다음 영화는 아마 배우와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지만 그때동안 저 나름의 경험치를 쌓고 배우와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김병규 : 그러면 감독님과 배우분들 관객분들께 마지막 인사 말씀 한 마디씩 부탁드리면서 GV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박기홍 : 이렇게 추운 날 극장에 많이 와주셔 가지고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리고요.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주민 : 2024년이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2024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하시는 일 모두 다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홍 : 오늘 오면서 마지막 순간에 대한 나름의 긴장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별 것 아니게 잘 마무리된 것 같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것만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 주신 것이라고 감히 혼자 믿고, 좋은 에너지 얻고 다음 작업에 집중해서 머지않아 또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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