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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자연인>│노영석 감독, 변재신‧신운섭‧이란희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3. 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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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자연인> 씨네토크

2023.12.28.

 

초청 : 노영석 감독, 변재신신운섭이란희 배우

진행 : 김영우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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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 반갑습니다. 영화 재밌게 보셨을까요? 감독님 그리고 배우님들 모시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노영석 : 안녕하세요. 저는 <THE 자연인>을 연출한 노영석입니다. 반갑습니다.

변재신 : 안녕하세요. 저는 <THE 자연인>에서 인공 역을 맡은 변재신 배우입니다.

신운섭 : <THE 자연인>의 자연인 신운섭입니다.

이란희 : 란희 역을 맡은 이란희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영우 : 감독님은 오래간만에 신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노영석 : 계속 영화 시나리오는 쓰고 있었어요. 근데 아무도 찍어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어떻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THE 자연인>을 찍었거든요. 근데 누군가 그걸 알아봐 주고 게다가 상까지 주시니까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굉장히 외로웠거든요. 혼자서 작업을 하려다 보니까. 상금 덕분에 제작비도 회수할 수 있어서 그래서 울었습니다.


김영우 : 저도 수상 결과를 보면서 진짜 놀랐어요. 감독님에게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감독님 전작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시더라도 이 영화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끼실 것 같지만, 감독님이 15년 전에는 <낮술>10년 전에는 <조난자들>이라는 작품으로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으셨어요. 아무래도 <THE 자연인>이 갖고 있는 큰 틀에서 보면 이야기 구조들이 <낮술>이나 <조난자>들하고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분들이 <낮술>에 출연하셨던 분들이기도 하시잖아요. 그래서 작업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하고, 배우님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노영석 : 우선 시나리오 쓰면서부터 란희 역에는 란희 누나를 생각하고 있었고요. 쓰면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란희 누나를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하면서 저 혼자 낄낄거리다가 란희 누나한테 전화를 한 적도 있어요. 누나를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면서. 그때가 라면을 코로 먹는 장면 쓸 때였거든요. 사람들이 라면 장면을 보면 그것만 기억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느냐, 마치 미달이 처럼. 그렇게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작업을 했었기 때문에 더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사실 몇 군데 제작사에 시나리오를 보내긴 했어요. 그때는 여럿이 있어야 되는 규모의 시나리오였어요. 그런데 제작사들에서 관심을 안 보여서 저 혼자 찍을 수 있을 정도로 고쳐보자 해서 수정되고 없어진 씬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위에 누가 하실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운섭 형님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휴가>를 보고 그게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연락드렸죠. 딱인 분들이 계셨구나. 그리고 주인공 역과 친구역에는 새로운 얼굴을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야 관객분들이 더 공감하기 쉬울 것 같아서. 그러다가 유튜브에 신인 배우, 배우 지망생이라고 검색했는데 그때 변재신 배우님을 본 거죠. 연극영화과 입시, 진학에 도움 주는 그런 채널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되게 잘하시더라고요. 얼굴도 잘생겨서 주인공에 딱이라고 생각해서 같이 하게 됐어요. 오늘 참석을 못했지만 병진역할의 정용훈 배우는 필름 메이커스에서 발견했어요. 필름 메이커스에서 연기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셨는데 그걸 보니까 딱이겠더라고요.  그렇게 연락을 드렸고 만나서 같이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김영우 : 그럼 배우님들의 고증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란희 : 저는 노영석 감독을 2005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낮술> 캐스팅 때도 그래, 하자고 했고, 이번에도 그래, 하자고 했어요. <낮술>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다 저를 생각하고 썼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 배우들은 어떤 괜찮은  장면들을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제가 <낮술> 때 한 번 당해봤잖아요. (웃음) 이번에도 라면 얘기하고 그러니까 또 얼마나 나를 망가뜨릴 생각을 하면서 혼자 변태스럽게 웃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좀 걱정됐던 건 뭐였냐면 저희가 <낮술>을 찍고 나서 1년에 한 두 번 정도 만나기는 했지만 얼굴을 빤히 보면서 작업한 건 아니라서 제가 늙었다는 걸 까먹지 않았을까 이런 걱정이 되더라고요. 혹시 <낮술> 때 얼굴을 생각하고 혹시 시나리오를 썼으면 어떡하지? 이런 노파심에 제가 전화를 걸어서 재차 확인을 했어요. 근데 괜찮다고 막 그러더라고요. 그러더니 리딩한다고 배우들이 다 모였어요. 다 모여봤자 4명이지만. 리딩을 하고 나서는 약간 표정이 난처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나 늙었지? 물었더니 아 괜찮다고 또 막 그러더라고요. <낮술> 때도 그렇고 이번 현장은 더 굉장히 단출한 현장이었기 때문에 번잡스러움 같은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낮술> 때보다도 감독이 더 많은 짐을 혼자 지고서 작업을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까 그건 마음이 좀 안 좋았습니다.


신운섭 : 우리 동네에서 대본을 받았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그냥 읽어보라고 그랬어요. 캐스팅 얘기는 하지 않았고요. 그냥 읽어보세요 그러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 거지? 처음에 그랬어요. 자연인 하는 건가? 자연인 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은데?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워?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이 사람은 뭐 이런 생각을 다 하나라고 생각했다가 <낮술>하고는 또 다른 어떤 결의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뭐 하는지 분명 다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한참 연습 촬영하다가 이란희 배우가 왔어요. 중간에 왔는데 의상이라고 하얀 소복을 입혀놨단 말이에요. 그리고 가발까지 쓰고 내 앞에 딱 나타났는데 순간 이런 모습이야? 그때 정말 마음이 안 좋았어요.

 

노영석 :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두 분이 부부세요.

 

신운섭 : 같이 살아요. 그래서 마음이 좀 안 좋았어요. 이 사람이 나이가 들었구나. 나이가 든 게 확 티가 나니까. 그리고 연기하는 거 보면서 빵빵 터지기 시작했죠.

 

변재신 : 참여한 계기를 말씀드리기 이전에 보통 <THE 자연인> 보실 때 란희 선배님 등장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데 오늘은 저기 뒤에 남성 두 분께서 신운섭 선배님 나올 때마다 빵빵 터지시더라고요. 저는 영화를 같이 봤거든요. 그래서 선배님이 오늘 영화를 같이 보셨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겠다 싶은 마음이었고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는 작게 유튜브 채널을 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감독님이 댓글을 달아 주셨어요. 제가 그때는 군인이었거든요. 군대 전역하고 나서 바로 찍게 됐고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스텝이 아예 없는지도 몰랐어요. 근데 저는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왜냐하면 나름 로맨스 씬도 있고, 그리고 제가 엽기적인 걸 좋아하는데 극 중에 다양한 음식들과 자꾸 반복해서 나오는 대변이나 소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좋아했던 소재들이라서 감독님이 독특하신 분이구나 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재밌게 잘 찍었어요.

 

김영우 : 사실 이 영화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중년 남성들이 넋을 놓고 본다는 프로그램 콘셉트도 들어 있고, 중간에 엽기적이면서도 굉장히 원초적인 코드들도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시나리오에 이런 요소들이 다 들어 있었던 건지 아니면 현장에서 조금씩 추가되면서 변화된 지점들이 있는지, 원래 시나리오도 정말 이렇게 썼을까? 이런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노영석 : 애초에 처음에 썼던 건 약간 공포의 느낌이었고요. 어떤 사람이 운전하고 가다가 잠깐 어떤 가게에 들렀는데 그 가게에 할머니가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거죠. 그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예요. 순환되는 얘기였어요. 끝난 줄 알았는데 이게 처음부터 다시 반복되는 그런 공포. 약간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자연인이 나올 때는 또 웃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래서 톤을 어떻게 잡아야 될까 하다가 공포를 빼고 유튜브도 넣으면서 좀 더 가볍게 가보자 해서 이렇게 설정을 했죠. 그리고 촬영하면서 사실 로맨스 씬이 조금 더 있었는데 그걸 좀 줄였습니다. 아까 늙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더 힘드신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지금은 괜찮으신데 그때 더 마르셨었나 그래서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느낌이 나서 그리고 그런 성적인 걸 잘못 쓰면 위험할 수 있잖아요. 요즘 세상에 더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조금 더 순화시켜서 고친 부분도 있습니다.


김영우 : 소규모로 촬영 현장을 운영하셔서 힘든 지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어떠셨나요?


이란희 : 저는 사실 마지막 3회 차만 같이 했었기 때문에 초반 분위기는 잘 모르고요. 마지막에 갔을 때는 좀 뭐랄까요? 혹시 학교 다니실 때 농활반하셨던 분들 계신다면 아실 것 같아요. 후발대는 되게 에너지가 좋은 상태로 시골에 내려오는데 이미 있던 사람들은 굉장히 격무에 시달리고 힘든 상태로 그리고 그 매일매일이 힘든 상황이라는 걸 본인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상태잖아요. 그 정도의 에너지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은 굉장히 힘들어 보였는데 힘들지 않은 척하고 미소도 열심히 지으려고 애쓰면서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는 그랬고요. 다른 분들이 쭉 길게 계셨으니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운섭 : 조금 다른 얘기긴 한데 제가 요즘 다른 프로덕션을 꾸리고 있거든요. 뭐가 많잖아요. 촬영팀, 조명팀도 있어야 하고. 요즘 그런 걸 접하다가 여기 올라오면서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이렇게 하면 얼마나 속 편할까. 물론 힘든 부분이 많았겠지만 또 많은 스텝이 필요한 프로덕션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되는 어려움들이 있잖아요.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THE 자연인> 생각을 하니까 작은 규모로 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전부 다 혼자 한다고 했거든요. 차도 가져오지 말래요. 근데 차는 왠지 가져가야 될 것 같았어요. 내가 불편할 것 같아서. 숙소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는데 준비를 다 해놓은 거예요. 부식이 쫙 쌓여 있고 온갖 소품, 마네킹부터 다 쌓여 있는데 이렇게 하는구나, 어떤 기대감이 들었고 이 사람이 도대체 혼자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궁금해지는 거죠. 몸에다 카메라 장착하고 혼자 슬레이트까지 쳤는데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사운드는 슬레이트 없이 갔고, 밤마다 짜 맞추기 하듯이 영상과 사운드의 씽크를 맞추는 작업을 한 거죠. 어떻게 혼자서 현장을 꾸리지? 그걸 발견하는 지점들, 그게 참 웃기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좀 짠하기도 하고 근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즐거웠어요. 그렇게 하니까 배우들한테 좋았던 건 대기하는 시간 동안 배우들끼리 리허설하고, 이렇게도 움직여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게 그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이 현장만의 장점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았습니다.

 

변재신 :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영화 경험이 많이 없던 터라 1인 시스템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거든요. 부담이 안 돼서. 그리고 감독님께 다이렉트로 코멘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게 되게 저는 연기에 많이 발전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준비를 너무 많이 잘해주셨어요. 아침에 제일 일찍 나가고, 촬영이 끝나면 힘들게 편집이랑 영상 백업이랑 해놓고 주무시면서도 다음 날에 또 아침 일찍 나가서 식사 준비도 해놓으셨거든요. 그날 촬영 다 끝나면 맛있는 거 먹으라고 저희한테 한도 없는 카드를 주셔가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느라고 부족하지만 부족한 느낌이 안 들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배님도 배우뿐만 아니라 촬영도 해주시고, 제가 마이크 집착맨처럼 영화에서 나오잖아요. 저희 사운드 스텝이 따로 없으니까 그걸 대신해서 녹음하느라 계속 달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 거 보면 감독님이 머리가 좋으시고 뛰어난 분이어서 배울 점도 있었습니다.


김영우 : 사실 이 작품이 지난 몇 년 사이에 가장 단출한 엔딩 크레디트를 보여준 것 같고요. 거의 홍상수 감독님과 거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진정한 독립적인 규모의 제작 방식으로 작업을 하셨어요. 1인 프로덕션의 고단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은 여러 가지 외부 요인들에 의해서 부득이하게 1인 프로덕션으로 현장을 진행했지만, 또 막상 촬영 현장에서는 아쉬운 점들도 생기잖아요. 내용적이든 기술적이든 외부적이든 그런 것들도 같이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노영석 : 우선 녹음은 따로 두는 게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뭔가 없이 해보고 싶었어요. 퀄리티가 좀 떨어져도 어쨌든 혼자서 끝을 내보자라는 생각으로 했는데 녹음이 굉장히 안 좋아서 후반 작업하는데만 3개월 정도 걸렸어요. 노이즈 제거하고 효과도 넣고 하다 보니까. 그래도 좀 미흡하거든요. 그런 부분은 참 아쉬웠고.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지만 혼자 하니까 속 편한 게 사실 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고집부리게 되거든요. 사람들이 다 자기가 하는 방식이 있고, 그러다 보니까 그걸 조율하는 데 시간이 계속 흐르잖아요. 근데 그런 과정 없이 혼자 결정하면서 진행하다 보니까 그런 점에서 굉장히 편안했고요. 같이 밥이라도 먹고 얘기도 하고 시간도 보내고, 촬영하면서 대화 타이밍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런 걸 하지 못했던 건 좀 아쉽습니다. 시간이 너무 빠듯해서 몇 컷 더 찍어보고 싶은데 한정된 시간 때문에 못 찍은 컷들도 좀 아쉬워요. 근데 제가 결정한 거였기 때문에 힘들수록 더 즐거웠습니다. 뭔가 일하는 것 같아서요.

 

김영우 : 이전 작품 <낮술>이나 <조난자>들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생각해 보면 평범한 사람들 혹은 어떤 동기가 있어서 잠시 떠났던 사람들을 낯선 공간에 넣어 놓고, 거기서 일어나는 긴장감과 이상한 해프닝들을 따라가는 식으로 영화 작업을 해오신 것 같아요. 톤에 따라서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이게 감독님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화적인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노영석 : 제가 원래 찍고자 하는 영화들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걸 공모전에 내봤는데 다 안되더라고요. 어떡하지? 뭐라도 찍어야 되는 건가 싶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마무리하려고 강원도 정선에 가 있었거든요. 서울에 있으면 여기까지만 쓰고 술 먹으러 나가야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시나리오 마무리할 때는 다른 곳에 잠깐 가 있습니다. 펜션에 혼자 있는데, 그때는 저도 좀 젊었었기 때문에 옆방에 어떤 예쁜 여자가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 상상을 시나리오로 쓴 게 <낮술>이었어요. 그래서 사실 <낮술>은 원래 찍으려고 썼던 시나리오가 아니었던 거죠. <조난자들> 같은 경우도 제가 군 복무를 원주에서 했고, 그때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숲 속에서 약초 키우시던 어르신들이 총에 맞으셔서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우셨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후에 저한테 상업 영화 시스템처럼 경험해 볼 수 있는 돈이 생겼어요. 그런 시스템을 경험해 보자는 생각에 부랴부랴 <조난자>들을 쓴 거죠. 그러고 나서 이제는 내가 원하는 걸 써보려고 했더니 잘 안되더라고요. 아무도 안 찍으려고 하니까. 혼자라도 뭘 해보자. 또 이렇게 쓰다 보니까 <THE 자연인>이 나오게 된 거죠. 사실 같은 얘기를 계속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같은 뉘앙스나 유머 같은 거. 더 늦어지면 영화 자체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몸에 있는 걸로, 빨리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같은 얘기라도 해보자 했더니 전에 만들었던 작품과 섞인 듯한 느낌의 영화가 나오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적인 세계관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고요. 근데 평소에 그런 생각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불편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게 궁금하고. 거기서 나오는 긴장감이 즐겁지는 않은데, 일상에서 그런 걸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영우 : 관객분들 질문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든 감상평도 좋으니 편하게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 1 : 영화 너무 재밌게 잘 봤고요. 댄서 유튜버가 나오잖아요. 근데 대사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친구 말도 다 끊고, 자가기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하던데. 애드리브였는지 감독님이 하나하나 다 쓰신 건지 궁금합니다.

 

노영석 : 기본적으로 대사는 다 쓰여 있는 거고요. 말투 같은 건 배우분들이 입에 붙는 대로 최대한 편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짜장면 관련된 대사 같은 경우는 배우분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도 꽤 있을 거예요.

 

관객 2 : 영화 보는 내내 웃으면서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감독님 1인 시스템으로 영화를 만드셨는데 몇 회 차 정도로 촬영을 하셨는지 궁금하고요. 배우님들께 여쭤보고 싶었던 것은 영화 속에 나오는 소금쨈이나 아니면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는데 실제로 먹으면서 어떤 맛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노영석 : 우선 제작비는 사비로 하느라고 많지는 않았어요. 제작 지원을 냈는데 떨어졌거든요. 배우님들한테 돈을 많이 드리고 싶었거든요. 총제작비가 2,500 정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한정된 예산 안에서 촬영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예산 짜는 게 되게 중요했습니다. 계산을 했어요. 하루에 얼마를 써야 되는지. 생각보다 인원이 없으니까 식비가 많이 안 들더라고요. 제가 아침, 점심은 직접 준비하고 밤에 나가서 먹는 건 세 분이 합쳐서 십만 원 내외에서 식사 드시고 오시라고 했어요. 늘 십만 원을 못 채우고 오셔서 저로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총 촬영 회차는 22회 차 정도였어요. 20회 차 촬영을 하고 나중에 편집하다가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2회 차를 더 찍었습니다.

 

신운섭 : 가져온 음식은 모두 맛있었어요. 이상한 걸 가져온단 말이죠. 그 소금쨈은 진짜 먹는 쨈 같은 거였고, 정말 맛있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어디서 음식을 준비해 오는지가 더 궁금했고, 그때 짠하고 음식 들고 나타날 때가 더 신기했던 거죠. 조금 괴로웠던 건 풀떼기 먹는 장면 있잖아요. 그건 쉽지 않더라고요. 잘라서 먹어봤는데 그건 괴롭더라고요.

 

변재신 : 그때 선배님 생각보다 맛있게 드시지 않으셨어요? 맛있게 드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소금쨈은 말마따나 땀을 졸여서 만든 건 아니었고, 토끼고기 같은 경우는 닭고기로 대체하셨던 것 같아요.

 

노영석 : 토끼 고기가 상했어요. 계곡물이 차가우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토끼 고기를 물에다 넣어놨는데 다음 날 찾아갔더니 상해 있더라고요.


이란희 : 라면이 끓인 지 얼마 안 됐을 때 먹어야 제맛인데 이게 코로 먹어야 되기 때문에 식힌 다음에 촬영을 했거든요. 좀 느끼하고 맛이 없었어요. 그리고 코로 먹을 때 라면 수프 분말 같은 게 코에 껴서 기침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열다섯 테이크 정도 갔던 것 같아요.


김영우 : 저희가 사실은 속 편하게 1인 프로덕션 이런 얘기를 계속했었는데요. 사실은 창작자 입장에서 여러 프로젝트들이 무산이 되고, 그러다 보니까 혼자 제작 준비부터 후반 작업까지 다 한다는 게 굉장한 스트레스와 고난의 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이번 작업이 감독님에게 창작자로서 커리어에서 차치하는 위치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좀 궁금한데요.


노영석 : 사실 10년 동안 계속 영화를 못 찍고, 무산되기도 하면서 뭐라고 그래야 되나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주변에 다른 친구들은 몇 백억짜리 영화 찍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못 하고 있으니까 남들에 비해 꿀리는 느낌을 스스로 갖게 되더라고요.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냥 독립 영화를 똑같이 찍어서는 10년 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날 것 같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1인 프로덕션으로 영화 찍는 걸 도전해 보자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물론 그게 영화가 성공했을 때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시작할 때는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무도 안 해본 걸 내가 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자존감도 높아지고. 에너지도 충족되고. 그리고 사실 제가 미대를 나왔어요. 미대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디자인 작업이나 웹 디자인도 하다 보니까 GC 작업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유튜브에 CG 설명도 잘 나와 있기 때문에 보고 따라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귀찮고,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죠. 아무튼 저한테는 굉장히 뿌듯한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10년의 시간들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는 작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된 것 같고요. 앞으로 또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김영우 : 이란희 배우님부터 마지막 인사 말씀 차례대로 듣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란희 : <낮술> 시사회 때였어요. 스태프들끼리 모여서 처음 영화를 다 같이 봤거든요. 그때 시사회 끝나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할 때 감독 눈치 보면서 우리끼리 그런 얘기했거든요. “어떻게 우리 영화제에 못 갈 것 같아.” “어떻게 별로 안 웃겨.” 촬영할 때는 우리끼리 되게 웃기게 촬영을 했는데 막상 시사를 하니까 긴장해서 그랬는지 걱정돼서 그랬는지 아무튼 그때 되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이후에 서울독립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에 가면서 관객분들이 호응도 많이 해주시고 개봉까지 이어지고, 관객도 많이 드는 걸 보면서 진짜 놀랍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번 영화 같은 경우에는 혼자 찍는다고 하니까 사실 걱정도 됐죠. 근데 워낙 집념이 있는 스타일이고 끝을 보긴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제에 갈 수 있게 됐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좋은 결과도 얻어서 좋고요. 어떻게 개봉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기도해요. 절대 스타 될 욕심은 없습니다.

 

신운섭 : 이런 1인 프로덕션 시스템이 나오는 건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걸 다 갖춰서 할 수 없잖아요. 가지고 있는 조건 속에서 일단 해보는 거죠. 이것저것 다 채워서 하려다 보니까 주저하고 못하게 되잖아요. 전에 <낮술>이 천 만원 가지고 영화를 찍었으니까 나도 천만 원 가지고 영화 찍어보려고 한다고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근데 사람들은 천만 원 갖고 찍었다는 것밖에 캐치를 못해요. 감독이 천만 원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했을까? 이런 건 잘 못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여튼 이번에도 혼자 영화를 찍는 걸 보면서 노영석 이 사람 희한한 사람이고, 일종의 경외심도 느꼈어요. 그런 즐거움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다음 작업도 재밌게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재신 : 소중한 연말에 귀한 시간 내서 극장에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울독립영화제 때 대상 수상하셨을 때 감독님 부끄러우시겠지만, 감독님 눈물 보고 제가 너무 기뻤어요. 상도 그렇고, 상금도 그렇고 아까 말씀하신 자존감 회복 같은 것들 때문에 감독님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도 앞으로 더 다양한 곳에서 활동할 테니까 많이 지켜봐 주시고요. 늦은 시간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노영석 : 오랜만에 강릉에 와서 너무 좋습니다. 내일 일찍 가야 돼서 그게 아쉽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영화로 신영 극장에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좀 더 여유롭게 강릉도 즐기고 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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