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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김현지 감독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2. 2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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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 씨네토크

23.11.30

 

초청 : 김현지 감독
진행 : 오승희 대표 (영화전문서점 이스트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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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희 :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영화 GV 진행을 맡은 이스트씨네 서점 지기 오승희입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감독님께 오늘 신영에 오신 소감과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현지 : 안녕하세요. 따뜻한 남쪽 나라 진주에서 오늘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강릉에 이렇게 멋진 극장이 있다는 게 참 부럽고요. 관객 여러분들과 재밌는 얘기 나누고 싶습니다.

 

오승희 : 우선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데요. 이 영화가 어떻게 보면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김주완 기자님의 취재기이기도 하잖아요. 방송 PD와 신문 기자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어떻게 같이 하게 되셨나요?

 

김현지 : 김장하 선생님이라는 분을 제가 처음 들은 건 2019년쯤 어느 술자리였어요. 어떤 점잖은 분이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를 하시길래 저분도 술에 취하면 어쩔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음 날 김장하 선생님을 찾아보니까 그분 말씀이 진짜였더라고요. 그래서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기획서를 썼어요. 절대 인터뷰를 안 하시는 분이라고 하니까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 없는 인물 다큐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기획서였어요. 자료 조사 중에 유일하게 김장하 선생님에 대해서 텍스트를 남기신 분이 김주완 기자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김주완 기자는 지역에서 32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셨고, 누구도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분이고 자기 자신한테도 깐깐한 기자였고, 또 지역 근현대사에 대한 조예도 깊으셔서 저도 되게 존경하고 강연 같은 거 찾아다니기도 했거든요. 김주완 기자는 저를 모르셨어요. 전화로 다큐 제안을 드렸는데 다음 날 만나서 흔쾌히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대신 자기를 연출만 하지 말라고 하시길래 제가 알겠다고 했죠. 근데 알고 보니까 전날 저에 대해서 엄청 구글링을 하셨더라고요. 사실 PD와 기자가 협업해서 잘 된 적이 없거든요. 항상 마지막은 파국이거든요. 근데 이번 협업은 저한테 되게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저희가 언론사가 다르다 보니까 서로 경쟁하는 곳이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모든 자료를 오픈해서 공유하고 저는 영화를 만들고 기자님은 책을 쓰면서 콜라보를 했는데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영상 제작하는 입장에서 영상은 텍스트와 다르게 항상 누락되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근데 너무 완벽한 텍스트 자료가 있으니까 서로서로 잘 보완됐던 것 같아요.

 

오승희 :  김장하 선생님이 살아오신 삶을  TV 다큐와 영화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접하니까 훨씬 더 명확하게 전달됐던 것 같아요. 근데 매체가 다 다르잖아요. MBC 경남에서 TV 프로그램으로 먼저 방영이 되고, 넷플릭스에서 2부작 시리즈로 나오고, 이렇게 극장 개봉까지 했는데요. 매체별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 맨 처음 TV 다큐를 제작할 때도 최종적으로는 영화로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제 나름대로는 되게 영화처럼 편집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나 방송 다큐 특유의 설명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넷플릭스로 갈 때는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사적인 부분들이 덜 노출될 수 있도록 했고, 요구하는 러닝타임도 짧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덜어냈어요. 영화는 결국 스토리가 중요하니까, 김형남 편집 감독님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어요. 조금 더 캐릭터가 잘 보이면 좋겠다고. 그래서 김주완 기자와 김장하 선생님이 숨바꼭질하듯이, 어떻게든 캐내려는 사람과 어떻게든 숨기려는 사람의 창과 방패의 대결. 따뜻한 이야기인데 이상한 서스펜스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오승희 : 긴장감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특히 두 분이 마주하면서 인터뷰하실 때. 근데 의도적으로 연출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저는 좀 유머가 느껴졌거든요. 감독님이 유머가 있는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떠세요? 그런 코드를 영화 속에 넣고 싶으셨던 걸까요?

 

김현지 : 제가 진지하고 엄숙하고 이런 걸 잘 못 견뎌해요. 그게 지역 방송에서 시골 어르신들하고 어울리는 프로그램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분들은 곧 죽어도 유머가 있는 분들이거든요. 영감님 어디 가셨어요?라고 물으면 30년 전에 콩 팔러 가서 아직 안 돌아왔다 말씀하시고. 죽음까지도 그렇게 유머로 승화하시는 분들과 지내다 보니까 그런 건지, 그런 사소한 유머가 되게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이 영화가 어쨌든 김장하 선생님의 좋은 이야기들만 계속하잖아요. 자칫 잘못하면 이분의 무게에 저희도 짓눌릴 것 같았어요. 그리고 김장하 선생님도 유머를 사랑하시는 분이어서 그걸 잘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오승희 : 영화 전체적으로 음악 톤도 밝은 느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로 인해서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감정적으로 많이 전달됐던 것 같아요.

 

김현지 : 음악 감독님 하고 첫 회의할 때 절대 오케스트라 넣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특히 바이올린, 비올라 쓰지 말라고 부탁드렸어요. 엄숙하고 비장한 거 절대로 하지 말고, 차라리 로우 파이 음악 같은 거, 젊은 분들도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걸로 요청드렸죠.

 

오승희 :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서 영화 포스터 디자인도 굉장히 세심하게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김현지 : 김장하 선생님이 자기 삶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분인데, 저희가 얼굴 정면을 아주 크게 쓴다든지, 화려한 폰트를 쓴다든지 하는 게 선생님 삶의 결하고 좀 안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희 촬영 감독님이 선생님의 뒷모습을 찍어오셨을 때, 어깨에 실린 무게감이 너무 크고, 저분은 정말 힘들었겠다고 다들 생각했거든요. 그런 부분을 관객분들하고 같이 느끼고 싶어서 포스터로 선생님의 뒷모습을 선택했어요.


오승희 : 김장하 선생님이 인터뷰하기 굉장히 어려운 대상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을 대신해서 영화 속에 다른 분들의 인터뷰가 많이 나오는데요. 그분들을 선정한 과정이 궁금해요. 먼저 자청하신 분도 계실까요?

 

김현지 : 자청하신 분들도 있었고요. 사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좀 미묘한 게 있었어요. 진주 시내에 선생님을 오래 모시던 분들 중에는 내가 김장하의 적자라고 자기 지분을 주장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 거 아니에요. 근데 저희는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보다 김장하 선생님으로 인해서 삶의 방향이 아주 많이 바뀌었거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되는 분들 혹은 아주 작더라도 자기 인생에 있어서는 큰 영향을 받을 분들 위주로 찾으려고 했고요.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만 찾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문형배 판사님 같은 경우에는 사실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인터뷰 대상이었어요.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판사님도 김장하 선생님이랑 비슷하시더라고요. 자신이 공직에 있는데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로 인터뷰에 나서는 건 적절하지 않다. 다만 개인적으로 김장하 선생님과 관련된 자료들이 있으니 그것은 얼마든지 활용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오승희 : 인터뷰이를 한 분씩 한 분씩 보면서 김장하 선생님이 굉장히 다양하고 넓은 분야에 걸쳐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계신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요. 김장하 선생님이 그런 신념과 가치를 폭넓은 분야에 걸쳐 실천할 수 있었던 계기나 출발점이 궁금해요.

 

김현지 : 저도 그게 너무 궁금한 거예요. 이분은 왜 이렇게 살기 시작했을까? 뭔가 드라마틱한 얘기가 있길 기대했는데,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그렇게 살라고 하셨다는 게 전부인 거예요. 남성당 한약방의 남성이 김장하 선생님의 호인데,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호이고, 남성은 노인(목숨) 수를 맡은 별이래요. 이 별빛 아래에 있는 사람은 오래 산다는 설이 있어서 오래 살라는 뜻도 있지만, 이 별은 아주 큰 별인데도 위도상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대요. 항상 자기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별이라고, 너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는 거예요. 저희 부모님도 저한테 좋은 말씀을 아무리 많이 해주셔도, 저는 이 모양이라서(웃음) 충분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속 이유를 찾으려고 했어요. 김주완 기자가 쓴 책에 김장하 선생님이 본받은 스승을 세 분으로 정리했어요. 한 분은 할아버지, 또 한 분은 실천하는 유학자인 남명 조식, 경상도 남자의 워너비입니다. 세 번째는 공자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김장하 선생님이 한학 공부를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도 저는 잘 설득이 안되더라고요. 공자 공부를 해도 좋지 않은 분들 많잖아요. 그래서 김장하 선생님 행보에 있어서 이유를 탐구하는 걸 포기했고요. 또 어떻게 보면 제가 를 자꾸 궁금해하는 게 김장하 선생님처럼 살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의 행동을 통해 주변 공동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드리는 데 집중하려고 했어요.

 

오승희 : 영화를 보면서 선한 영향력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 들으시면서 궁금하신 부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관객분들 질문받겠습니다.

 

관객 1 : 인터뷰이를 선정하시면서 삶의 태도가 작게나마 변하거나 영향을 받으셨다는 분들을 선정하셨다고 하셨는데 감독님께서는 제작을 하시면서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다거나 영향을 받으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 저는 사실 크게 바뀐 거를 모르겠지만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저는 분석하고 해석되지 않으면 납득을 잘 못하는 그런 인간형이거든요. 그래서 늘 주변이 답답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이해를 못 하는 건 나의 문제지, 상대가 나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게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잠자코 지켜볼 필요도 있다는 걸 생각하고요. 저도 이제 중년의 시작점에 서게 됐는데요. 아직 저만 시작점이라고 우기고 있어요. (웃음) 그래서 이제는 저도 제 안의 어린이와 이별하고 자기 연민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연민할 여유를 가져야겠다, 그래야 어른이 되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크게 바뀐 건 없는 것 같아요.

 

관객 2 : 주인공이 없는 기획안이 통과되기가 어려웠을 것 같고, 퇴짜도 많이 당했을 것 같은데요. 김장하 선생님한테 마이크를 채우기까지 어떻게 설득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 주인공이 없는 인물 다큐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던 저의 첫 기획서는 2년 동안 선택받지 못했어요. 그때는 좀 화가 부글부글 났죠. 아니, 이 좋은 이야기를 못 알아본단 말이야! 근데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게 오히려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그때는 선생님은 남성당을 운영하고 계셨고, 김주완 기자도 현업에 계셨기 때문에 취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2년이 지난 뒤에 새로운 사장님이 부임하시고, 기획안들을 훑어보다가 저희 기획안 괜찮다고 한 순간이 김주완 기자가 은퇴를 결심했던 순간이기도 하고, 선생님이 주변 정리를 시작했던 시기와 딱 맞아떨어지게 돼서 촬영을 할 수 있었어요. 역시 세상에는 완벽한 불행도 완벽한 행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조명이나 오디오를 세팅하고 촬영한 적이 없어요. 그냥 김주완 기자 뒤에 붙어서 얼레벌레 찍은 것들이거든요. 보시면 오디오 통제가 전혀 안되고 있어요. 신용카드 전표 찍는 소리가 계속 나고. 그래서 카메라 오디오로는 안되니까, 포터블한 보이스 레코더를 준비해서 김장하 선생님께 안녕하세요인사드리면서 자연스럽게 레코더를 선생님 옷에 꽂아놓는 거죠. 선생님이 사람을 무안하게 하거나, 화를 갑자기 내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도 십분 활용한 거죠. 저희가 방송 나간 뒤에 선생님을 찾아가서 저희는 왜 매몰차게 내쫓지 않으셨는지 여쭤보니까, 한참 침묵하시더니 김주완이라면 허튼짓은 안 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김주완 기자를 섭외한 게 제가 제일 잘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관객 3 :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묵직한 그런 감동을 굉장히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궁금했던 것이 줬으면 그만이고, 그것에 대해 왜 보상을 받으려고 하냐는 말씀 같은 게 성경에도 나오거든요. 이 영화에 종교적인 색채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지만 혹시 김장하 선생님이 크리스천이신지 궁금했어요.


김현지 : 그럴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세요. 근데 종교가 없으세요. 그냥 유학자신데 철학이 결국은 그렇게 서로 잘 통하나 봐요.

 

오승희 : 형평사 주지문에 그런 문장이 있지 않습니까?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영화 속에서도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신념 같기도 해요.

 

김현지 : 1923년에 쓴 문장인데도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다큐에서 그 문장이 계속 반복되더라도 그냥 놔뒀어요. 형평사 주지문의 전문을 한번 읽어보세요. 진짜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관객 4 : 이렇게 좋은 영화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고요. 궁금한 점은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만드실 때 어떤 걸 중점적으로 고민하면서 만드셨는지 궁금하고요. 또 취재 결과로 책이랑 영화 이렇게 두 가지의 결과물이 나왔는데 김장하 선생님께서는 보시고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 방송 다큐는 그 지역에 계신 후배들이 김장하 선생님 모시고 방송 당일에 같이 보셨어요. 계속 표정이 무표정이셨는데, 딱 한번 강남선 할머니 나오실 때만 잠깐 웃으시더라고요. 그리고는 제작진한테 수고했어요라고 한마디만 하셨어요. 그리고 책도 보내드렸는데 선생님은 그게 걱정이었던 거예요. 김주완 기자가 은퇴하고 벌이가 없는데 나에 대한 책을 출판해 가지고 폭망 해서 집에서 쫓겨나면 어쩌나. 그래서 그 책을 집에 200권 사놓으신 거예요. 영화는 원하지 않으셨어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많이, 오래 할 필요가 있느냐고, 부담스럽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젊은 분들한테 희망을 주고 싶어서 영화로 만들고 싶고, 허락을 못해주셔도 한 번만 더 눈감아 주세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이렇게 영화로 나온 거거든요. 시사회에 초대를 했더니 너무 싫어하시더라고요.

 

관객 5 : 남성당 한약방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하고요. 김장하 선생님이 노후를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김현지 : 여러분들이 사랑하시는 김장하 선생님께서는 평범한 할아버지로 지내고 계세요. 60년 동안 매일 출퇴근을 하시다가 출근을 안 하시니까 되게 허전하신 거예요. 그래서 등산을 엄청 자주 가셨고요. 등산을 혼자 가셨다가 한 번 넘어지셨어요. 사모님한테 불호령이 떨어져 가지고, 산은 못 가시고 대신 사모님과 파크골프를 매일매일 치십니다. 파크골프를 모르시는 분들은 아니 김장하 선생님이 골프를 친다고? (웃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파크골프는 게이트볼 같은 거예요. 남강 둔치에서 하고 계시고요. 사모님이 더 잘하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의욕만 앞서시는 것 같고요. (웃음) 남성당 한약방 건물은 지역 시민사회에서 여러 가지 활용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어요. 진주시에서 매입해서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지역에 있는 문화단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려고 계속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 것 같아요.


오승희 : 영화를 보면서 지역 영화의 느낌이 굉장히 크다고 느껴졌어요. 지역 안에서 좋은 활동이 있고,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양하게 영향을 받고. 김장하 선생님 같은 분이 대도시에 계셨다면 이렇게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뻗어나갈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굉장히 지역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TV 교양 작품상을 수상하셨잖아요. 그때 감독님이 수상 소감으로 지역 지상파가 처음 수상하신 거라고 하시면서 굉장히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덩달아 기쁜 마음도 들었거든요. 그때의 소외라든지 MBC 경남에서 일을 하시면서 어떤 경험들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김현지 : 미디어 관련된 상을 보면 지역 부문 상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가끔은 우리를 보호하려고 그러는가 보다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그 안으로만 가둬놓는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여기에 안주하는 순간 그 안에만 갇혀서 사그라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근데 서울 분들은 그게 되게 불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지역의 이야기를 지역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지역성 구현이지만, 지역의 이야기를 바깥에 크게 알리고, 그래서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해 드리는 것도 지역성 구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제가 GV를 지역으로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대구에 갔을 때 대구에는 김장하 선생님처럼 좋은 어른이 없나? 그러면 다른 관객분들이 아니라고, 대구에도 그런 분 있다고 얘기해 주시거든요. 각 지역에 다 계세요. 근데 꼭 나쁜 어른들은 시끄러운데 좋은 어른들은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모르는 것 같아요. 지역 방송이 더 열심히 해서 지역의 좋은 이야기 잘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각 지역의 방송사들 열심히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승희 : 제가 서울에서 계속 지내다가 강릉에 내려온 지 4년 차가 됐는데, 강릉 지역 외 다른 지역은 규모 같은 게 실감이 잘 나지 않고,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경남 지역에서의 김장하 선생님의 존재, 또 진주 안에서의 선생님의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 진주가 원래는 경남도청이 있던 경남의 중심 도시였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산으로 도청이 옮겨갔다가 다시 창원으로 옮긴 이후에 진주가 회복을 하지 못했죠. 하지만 교육열이 굉장히 높아서 오랫동안 교육의 도시였고, 인근 지역에서 진주로 유학을 오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지금 현재는 인구 30만의 아주 고즈넉한 도시고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도시의 스케일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김장하 선생님이 서울이라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안에서 이렇게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서로의 공동체를 확인하는 작업이 과연 가능했을까? 진주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사람을 만나서 돕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요. 그래서 도시가 점점 커지는 게 맞나 그런 고민도 하게 됐습니다.

 

오승희 : 이 영화가 보는 내내 울림이 있었던 이유가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하고, 보고 싶었던 어른때문인 것 같아요. 진짜 어른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사전에 찾아보니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김장하 선생님은 거의 19살부터 어른으로 살고 계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이라는 수식어도 선생님에게는 부족하다고 개인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영화의 영문 제목 'A Man Who Heals the City'의 뜻이 도시를 치유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이런 타이틀을 정하실 때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하고요. 만약에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김장하 선생님께 수식어를 붙인다면 어떤 수식어를 붙이시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제목은 <어른 김장하>였어요. 선생님을 보니까 어른이란 단어가 저절로 생각났어요. 내부에서 회의를 할 때, ‘어른이라는 말이 너무 가부장적이지 않느냐, 또 요즘 꼰대나 기성세대에 대해서 안 좋은 말들을 많이 하는데 굳이 이런 단어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있었어요. 근데 어른이 원래는 나쁜 뜻이 아니잖아요. 근데 점점 너무 오염되어 버린 단어처럼 되니까 원래의 좋은 뜻을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영문 제목을 그렇게 한 건 어른이라는 어감을 영어로 번역할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어렵더라고요. 선생님이 한약사셨고, 공동체를 치유한다는 의미로 영어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요. 근데 어떤 관객분이 영어 제목에서 ‘The Man’이 아니고 왜 ‘A Man’이냐고 질문하시더라고요. 저는 영어를 잘 못한다고 답변드렸더니 나중에 끝나고 나오셔서 본인이 생각할 때는 이게 특별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느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역시 영화는 관객이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고, 다음부터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말씀해 주신 의미로 영문 제목을 지었다고 답변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수식어 말씀드리면, 우선 제가 지은 죄가 많아요. 인터뷰하면서 모든 인터뷰이에게 선생님이 생각하는 김장하는 한마디로 뭔지 질문했어요. 그때는 그걸 나중에 이어 붙여서 뭐라도 해봐야지 이런 생각이었던 거죠. 그때 다양한 말씀들이 나왔어요. 근데 제가 편집할 때 최종적으로 제가 그 부분을 싹 덜어냈던 이유가 김장하 선생님이 너무 많은 일을 하셨고, 훌륭한 분인데 저희가 한마디 말로 이분을 정의 내리는 게 옳은가 싶었어요. 내레이션도 없앤 게, 결국 내레이션도 연출자가 재단한 거잖아요. 그렇게 하는 게 옳을까?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해서 다 덜어냈던 거거든요. 제가 인터뷰이들에게 지은 죄가 지금 이렇게 저한테 돌아오네요. (웃음)

 

오승희 :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어른 김장하’. 제가 영화 보면서 좋았던 장면은 감독님이 선생님께 원래 뭐 하고 싶으셨냐고 물어보니까 대학 교수라고 하시면서 미소를 지으시는 장면이에요. 보면서 울컥하더라고요. 본인의 꿈을 얘기하신다는 느낌이 들었고, 수줍은 미소 같기도 하고.

 

김현지 : 김장하 선생님이 14남매 거든요. 근데 위로 형님 세 분이 일찍 돌아가셔서 본인이 가장 역할을 해야 됐어요. 아버님도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19살 때부터 10명의 동생들을 먹고 살 형편 마련해 주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그러면서도 남들을 돕고, 자기 가족도 챙기고. 한 번도 이 사람은 아이였던 적이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너무 짠하고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또 당신은 별로 그런 게 없으시더라고요.

 

오승희 : 영화 중간중간 선생님한테 아이 같은 모습이 보였던 게 야구 좋아하신다고 하셨을 때인데요. 최근에 김장하 선생님이 시구를 요청받으셨는데 거절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시면서 틈틈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은 꾸준히 갖고 포토샵도 배우시고.

 

김현지 : 새로운 거 배우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세요. 김주완 기자도 그렇거든요. 김주완 기자가 유튜브 채널 3개를 운영하세요. 두 분의 공통점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한테 배우고, 새로운 거 배우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에요.

 

오승희 : 두 분이 묘하게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두 분을 헷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현지 : 포스터가 뒷모습이다 보니까, 영화 시작하고 15분 동안 김주완 기자를 김장하 선생님인 줄 알고 계시는 분도 계셨어요.

 

오승희 : 앞부분에 계속해서 김주완 기자님만 나오시니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속에 김주완 기자님이 살아온 이야기는 김장하 선생님의 돈을 받아서 차는 소유하지 않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분 정도만 나왔는데, 감독님이 바라보는 김주완 기자님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거든요.

 

김현지 : 영화 보실 때, 김주완이라는 굉장히 독특하고 놀라운 캐릭터에 이입해서 김장하 선생님을 따라가시면 훨씬 더 즐겁게 관람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편집했고요.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김주완 기자는 제가 엄청 존경하는 선배이자 어른이지만, 본인도 나이가 더 들면서 본받을 어른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 취재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계속 뭔가 배우려고 노력하시고 후배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 보면서 저도 또 배웠고요. 저는 어른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 관객분들이 많이 우시더라고요. 내 옆에도 어른이 한 명만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요즘 착하게 살면 호구 잡힌다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사람이 다 착하게 살고 싶은데 억지로 위악 부리면서 노력하시던 분들이 영화를 보시고는 아니야, 그래도 조금 더 내 본성대로 착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위로를 받으시는 것 같았어요.

 

오승희 : 김장하 선생님이 이제 한약방을 은퇴하셔서 어떤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아요. 김장하 선생님을 기억하고 싶어서 진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디로 가면 선생님을 뵐 수 있을까요? 한약방은 이제 갈 수 없잖아요.

 

김현지 : 관객 여러분들께 선생님은 스크린에서만 만나 뵙고, 평범한 할아버지로 편안히 지내실 수 있게 선생님을 함께 지켜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저도 언론인으로서 취재 윤리 때문에 되게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이분이 원하지 않는데 제가 이렇게 억지로 세상에 끄집어내도 되는가? 김주완 기자와 저의 결론은 공적인 부분만 영화로 만들고 선생님의 개인적인 부분은 담지 않는 거였어요. 저희끼리 최소한의 취재 윤리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 저희를 나쁜 사람 만들지 마시고 (웃음) 진주에 놀러 오십시오.


오승희 : 혹시 또 질문 있으실까요?

 

관객 6 : 지금 우리 사회가 어려운 시기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어른이 필요하고, 어른한테 가서 투정을 부리고 싶은 시기이지 않나 생각해요. 연출자 입장에서 이 영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본인의 연출관에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부탁드립니다.

 

김현지 : 예전에는 정치 뭐 이런 거 보면 화가 나고, 막 포기하고 싶어지고, 너무 지치고, 같이 얘기하면 내가 자꾸 멍청해지는 것 같고 이런 느낌이 들어서 힘든 거예요. 근데 세상이 자꾸 나빠지는 것만 같다는 자괴감이 들 때 아니야. 그래도 크게 보면 자꾸 좋아지고 있어. 사람의 선의를 믿는 게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말자이렇게 다짐을 하거든요. 관객분들도 말씀하세요.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하지만 거기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이렇게 살면 내가 가장 쉽고,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구나. 같이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MBC 경남도 김장하 선생님께 어찌 보면 장학금을 받은 거랑 똑같아요. 이 영화로 상도 많이 받았는데, 갑자기 MBC 경남 보도 엉망진창으로 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지역에서 매거진 방송 열심히 하면서 지역의 다른 이야기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오승희 : 방송 PD를 하고 계시지만 시청자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기는 어렵잖아요. 근데 영화를 만들고 전국으로 GV를 다니고 계시는데, 관객분들을 직접 만나면서 어떤 소외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현지 : 사실 방송은 송출하고 나면 끝이거든요. 그리고 시청자를 직접 대면할 일이 별로 없어요. 그냥 상상하는 거죠. 브라운관 뒤에 계시겠구나. 근데 영화는 너무 무섭더라고요. 이렇게 바로 보고 계시잖아요. 저는 사회성이 좀 부족한 인간이라서 그게 무서웠어요. 처음엔. 아까처럼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의미를 발견해 주시면 그게 영화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보고 울었다, 위로받았다, 치유받았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제가 또 감동받고 치유받는 그런 상호작용들 때문에 다들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신영극장 같은 공간이 지역에서 진짜 소중하다고 느꼈어요. 진주에는 없거든요. 진주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늦게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하고요. 추운 날 여기까지 와주신 분들 정말 사랑합니다. 제가 사실은 GV 하면서 1년 치 사회성을 전부 대출해서 당겨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관객분들 만나러 극장에 오기 전까지는 힘들어요. 근데 뵙고 말씀 듣고 대화하면 되게 신나는 것 같아요. 오늘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주변에 마음 힘드신 분들 계시면 <어른 김장하> 슬쩍 추천 부탁드립니다.

 

오승희 : 감사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어른 김장하>는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제가 진짜 좋아하는 친구가 이 작품이 인생 다큐라고 말을 해줘서 이 작품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많이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분들하고 연말에 이 영화를 나누시면서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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