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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김태훈 감독, 김영성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2. 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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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씨네토크

2023.12.09.

 

초청 : 김태훈 감독, 김영성 배우

진행 : 김진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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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 : 반갑습니다. 저는 강릉에서 활동하고 있고, <나는 보리>를 연출한 김진유라고 합니다. 감독님과 배우님께 강릉과 신영극장을 방문한 소감 청하면서 GV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태훈 : 오늘 강릉에 오는데 3시간 정도 걸렸어요. 기대감을 갖고 강릉에 왔습니다. 진짜로. 강릉이라는 곳이 저한테는 낭만적인 곳 같아요. 오늘 진심을 다해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빅슬립>을 연출한 김태훈입니다.


김영성 : 강릉에서 극장을 온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이렇게 오니까 좋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빅슬립>에서 기영 역할을 맡은 김영성입니다.

 

김진유 :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영화라서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셨을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출발점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훈 : 제가 <빅슬립>을 쓰기 전에 10년 정도 학교 밖 청소년들과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수업 초창기에 제가 수업에 좀 서툴 때였는데요, 수업 중에 매번 맨 뒷자리에서 잠만 자던 학생이 있었거든요. 한 날은 제가 그 친구를 불러가지고 물어봤어요. 제가 수업을 너무 못했나 싶어 가지고. 내 수업이 재미가 없냐고 물어봤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어젯밤에 술에 취한 아버지가 무서워서 밤길을 헤매다가 잠을 못 잤다고 되려 저한테 사과를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부터는 그 친구를 오히려 깨울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 어설픈 수업을 듣는 것보다 이 친구가 수업 시간에 잠이라도 자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거예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친구의 잠자던 이미지가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래서 한 날, 영화를 빌려서 제 마음속에 있던 그 친구에게 따뜻한 잠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빅슬립>을 쓰게 됐습니다.

 

김진유 : 그런 마음이 많이 느껴지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번 영화로 긴 호흡의 연기를 보면서 김영성 배우가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님께 질문드릴게요. 시나리오를 처음 받으셨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김영성 :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장편의 주요 인물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기영이라는 인물을 만들어갈지 고민을 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연극처럼 같이 연습해서 채워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을 빨리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 달 정도 연습실을 빌려서 배우들이랑 연습하고 의견 모으고 감독님은 거기에 따라 대본도 고치면서 캐릭터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기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때 감독님이 아버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저희 아버지도 너무 투영되는 것 같고. 표현이 좀 서툰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고, 너무 안아주고 싶은데 어릴 때 내 옆에 있는 건 왜 항상 엄마일까? 아빠는 어디에 있었던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랐는데요. 아버지는 저를 키우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었고,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피곤했는지 서로 투박한 대화들만 하고. 저도 아버지한테 표현을 서툴게 했던 것 같아요. 기영이도 그런 환경에서 살았고. 저희 이런 경험들이 많이 투영되면 서툴지만 조금은 따뜻한 기영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버지를 많이 떠올렸던 것 같아요. 의상 같은 경우, 골방에 앉아 담배 피우면서 기타 치던 삼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찾고 준비했던 것 같아요.

 

김진유 :  혹시 질문 있으실까요?


관객 1 : 배우님이 연기하시기에 제일 어려웠던 장면이 궁금하고, 감독님은 연출했을 때 어려웠던 장면이 뭔지 궁금합니다.

 

김영성 : 저희 영화가 회차가 길지 않고, 예산도 많지 않아서 보통은 테이크를 많이 가는 씬들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대사가 없거나, 기영이 생각에 사로잡혀서 가만히 있는 장면들은 테이크를 많이 갔던 것 같아요. 그런 장면을 표현해 낼 때 제 스스로가 어떻게 담기고 있을까? 계속 그런 지점에서 생각이 많아지고, 어려웠던 것 같아요. 또 마지막에 애들한테 쇠파이프 던지는 장면은 연습실에서 리허설도 많이 했는데 촬영 전까지 정해진 게 없었어요. 그래서 매 테이크마다 연기를 다르게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데, 뭔가 딱 맞도록 장면을 구현해 내서 웃으면서 현장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애들이랑 이렇게도 해봤다가 제가 자빠지기도 했다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엄청 집중해서 연기를 했던 장면이어서 다음 날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장면에서 기영이 애들한테 욕하는 장면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하는 기영이 아버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한테 화가 나고, 그런 감정을 말로 조리 있게 표현을 못하니까 욕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감정이 드러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시도해 봤던 장면인 것 같아요.

 

김태훈 : 저도 방금 말씀하신 욕하는 장면과 길호가 경찰서에서 소리치는 장면, 두 장면이 굉장히 힘들었고, 만드는 과정에서 불안했어요. 그 장면에서 제가 배우들에게 대사를 완벽하게 주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배우가 느끼는 감정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길 바랐거든요. 현장에서 그런 감정들을 목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현장에 들어갔고, 그래서 불안감도 있었죠. 그런 감정이 나올지 말지 저한테는 거의 도박에 가까운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오랫동안 해왔고, 그동안의 촬영 과정을 통해서 여러 가지 감정들과 대사들을 함께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믿음과 불안 사이를 계속 외줄 타기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장면들이 기억에 굉장히 많이 남습니다.

 

김진유 : 아까 예산 말씀하셨지만,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촬영을 하셨어요?

 

김태훈 : 총 회차는 19회 차였어요. 장소 이동이 많았기 때문에 굉장히 촉박한 시간이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배우들과의 대화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어서, 촬영 한 달 전부터 연습실을 빌려서 배우들과 함께 대화들을 많이 나눴던 게 촬영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김진유 : 사실 19회 차로 장편 영화를 찍는다는 건 놀라운 수치거든요. 상업 영화는 50회 차 이상 촬영을 하고, 독립영화의 경우 못해도 25회 차를 유지하려고 하거든요. 근데 19회 차로 장편을 만드셨으니까,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그 안에서 실험을 하려고 한 감독님의 연출력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혹시 또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 2 : 저희 아버님도 뇌경색으로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영화를 보면서 감정 이입이 많이 됐거든요. 제가 아버지를 봤을 때 느낌과 태어난 제 아들이 저를 보는 느낌은 다를 것 같아요. 두 분이 생각하시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김영성 :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호랑이 같은 분이셨어요. 근데 3년 전쯤에 아버지가 쌈을 싸서 어머니한테 드리는 걸 보고 제가 너무 깜짝 놀랐어요.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웃음) 아버지는 그런 표현을 잘 안 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표현도 조금씩 하려고 하고, 설거지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잘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게 됐고, 좋더라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저희 아버지를 떠올렸던 적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인가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부엌 구석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울고 계시더라고요. 소리도 안 내고 숨죽여서. 그때는 그냥 뭐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죠. 근데 제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진짜 아버지가 대단하고,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이렇게 길러주고 키워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리고 아버지가 어릴 때 저랑 같이 못 놀아준 시간들에 대해서 안아주려고,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아버지는 서툴지만 따뜻한 아버지인 것 같아요.


김진유 : 아버님이 영화를 보셨을텐데,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김영성 : 영화에 실제 저의 어릴 적 사진도 나오거든요. 부산에서 두 분이 영화를 보셨는데, 어머니는 보시고 울 것 같았고, 아버지는 이상한 감정을 느낄 것 같았어요. 영화 보시고 아버지가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영성아, 담배 좀 그만 펴라.” (웃음)

 

김태훈 : 저는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김영성 배우와 좀 비슷한 지점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근데 영화를 찍을 때 아버지께서 췌장암으로 투병을 하셨어요. 그때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러면서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대화들을 그때 굉장히 많이 나눌 수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시나리오를 쓰면서 차츰차츰 이해하게 됐어요. 촬영을 끝내고 이틀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나를 기다려주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촬영 중에 돌아가셨으면 아마 제가 촬영을 계속 못했을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 돈도 빌리고, 은행 대출도 받았는데도 촬영 중간에 제작비가 모자라는 거예요.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장례식의 부의금이 제 영화의 제작비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사실은 이 영화가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했다면, 시나리오를 쓰고 찍는 동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계속 영화에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이 영화의 끝이 저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면서, 우리 시대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진유 : 차분히 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오늘 극장에서 다시 보니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길호의 심장 소리라든지. 사운드 디자인에 대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김태훈 : 폭력을 다루기도 하니까, 사실은 되게 센 이야기잖아요. 저는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불행과 비행을 직접적으로 다루기가 싫었어요. 그렇게 다루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사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불행이나 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때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다루는 걸 피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저한테 질문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의 불행을 전시하지 않는 대신 사운드 디자인으로 그들의 어떤 경험이나 감정들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집을 깨뜨리고 들어가서 잠을 자는 장면에서는 긴장된 음악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음악을 썼어요. 저희 스태프들과 함께 아이들의 불행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에서 바라보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김진유 : 촬영도 따뜻한 룩을 계속 유지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김태훈 : 촬영, 사운드, 미술 스태프들에게 전체적으로 요구했던 게 딱 한 가지였어요. 쓸쓸한 가운데 한 줄기의 빛. 굉장히 어려운 주문을 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스태프들이 그 한 줄기 빛을 위해서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해줬어요. 그런 스태프들의 태도가 촬영적으로나 사운드적으로나 영화에 모두 녹아들지 않았나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3 : 저는 동해에서 병원 때문에 강릉에 들렀다고 우연히 보게 됐는데 영화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처음에 기영이 꽃들이 있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보고, 저 사람은 아무리 직장에서 힘들고 고달파도 행복하겠구나 싶었어요. 소소한 행복을 주는 자신의 공간을 가출 청소년에게 공유해 주잖아요. 그리고 기영이 중소기업을 다니는 것도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인공들을 보면서 희망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또 나쁜 길로도 빠지지 않을 것 같고, 주변에서 많이 봤을 법한 인물들이 등장하니까 너무 현실적이라고 느껴진 것 같아요.

 

김태훈 : 저도 늘 그러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도 늘 노동을 했고, 제 주변의 친구 중에도 공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요. 사람 사는 게 저는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에 행복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불행이 있고, 불행해 보이지만 사실 다가가 보면 소소한 행복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겉으로 보기에 폭력적이고 그래서 다가가기 싫은 사람들이지만 영화로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가까이서 그들을 보게 되면, 평소에는 가까이하기도 싫었던 사람들이 조금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도 오해가 많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조금 시간을 들여서 깊이 바라보면, 그들도 충분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관객 4 : 영화 너무 잘 봤고요. 기영이 베란다에 화분을 거두는 장면에 대해서 궁금한데요. 기영이 길호한테 공간을 내주려고 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더 이상 불쌍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는지 궁금합니다.

 

김태훈 : 상징적인 부분이라 말씀드리기가 조금 낯간지러운데요. 영화의 세계관을 구축할 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여기에 그대로 가지고 올 수는 없어서, ‘빅슬립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고민을 했어요. 처음에는 그 세계를 폭력적인 아버지들이 만든 세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세상의 끝에 지구를 망치고 있는 폐기물이 있는 거죠. 외로운 두 사람이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뭘까? 곱씹어 생각해 보니 그곳에 어머니가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어머니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지만, 기영의 집과 베란다의 화분으로 어머니를 대체한 거죠. 근데 시나리오를 계속 쓰다 보니까 기영이라는 인물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버지로 인한 상처와 어머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될 것 같았어요. 화분을 치우면서 기영에게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기영이라는 인물이 과거에서 벗어나는 발걸음이면서 한편으로는 길호가 들어올 수 있는 빈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진유 : 영화 이후에 길호와 기영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저는 길호 역을 맡은 최준우 배우를 <빅슬립>으로 처음 봤거든요. 길호 역을 캐스팅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하신 것들이 있을까요?

 

김태훈 : 길호도 그렇고 기영도 그렇고 캐스팅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건 저와 함께 인물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였어요. 김영성 배우는 오디션 맨 마지막에 등장했는데, 그의 이미지와 몸짓이 분명히 제가 그리던 기영이었어요. 거기에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아이디어를 더해서 연기를 해내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이면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길호도 마찬가지였어요. 길호라는 이미지를 찾으려고 했던 것보다는 저와 함께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싶었어요. 실제가 제가 길호역에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길호역을 맡은 최준우 배우만큼 자기의 매력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김진유 : 혹시 배우님 오디션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실까요?

 

김영성 : 정말 강렬한 기억이 있죠. 코로나가 굉장히 심했을 때였는데 오디션 장소에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보통 오디션을 보면 카메라 두고 한 명 아니면 대사 받아주는 분까지 두 분정도 계신데, 여덟 분 정도가 마스크를 쓰고 앉아 계시더라고요. 제가 들어가니까 일어나서 마스크를 한 명씩 벗으면서 누구누구입니다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처음 보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오디션 때문에 힘든 시기였거든요. 근데 이 오디션에서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폼 안 내고, 제가 실수하더라도 저를 굉장히 응원해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해진 대본대로만 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 앞에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제 얘기를 했죠. 끝나고 나서 감독님이 죄송한데 욕 좀 해주실 수 있냐고 그러더라고요. 아직 시나리오를 모를 때라서, 어떤 장면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제가 욕이요?라고 물었죠. 불만이 쌓인 거든, 스트레스든 그런 감정을 욕으로 해달라는 거예요. 욕을 막 했는데 감독님이 저를 지지해 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이 작품에 합류하든 안 하든 저한테 굉장히 소중한 추억이고,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던 오디션이었어요. 그때의 태도를 갖고 앞으로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김진유 : 영화 후반부에 기영이 가출 청소년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거든요. 연기할 때 굉장히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김영성 : 그 장면 진짜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때 저한테 아무도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감독님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얘기해 줬는데, 아이들만 나오는 장면에서도 제가 뒤에서 똑같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좀 빠졌던 것 같아요. 저를 혼내야 된다,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은 거에 좀 꽂혔던 것 같아요.


김태훈 : 기영이 하는 대사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가출하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우리 스스로도 어른으로서 온전하게 살지 못하면서 아이들을 다그칠 수는 없잖아요. 아이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그런 무력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실제로 무력감을 많이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 여러 감정들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라서 보시는 관객분들도 많은 감정들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진유 : 저는 이 영화에서 두 대사가 굉장히 와닿았는데요. “불쌍한 척하면 불쌍해진다”, 그리고 이야기하면 도와줘요?” 영화를 잘 설명해 주는 대사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에 원래 있던 대사였나요? 아니면 현장에서 이런 대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대사였는지 궁금합니다.

 

김태훈 : 시나리오 상에 있기도 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것이 감독이 모든 걸 다 알고 찍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독 혼자서만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열려 있어야 되고, 배우와 스태프와 소통을 해야 되고,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모르는 부분들도 알아가게 되고 편집을 하면서도 깨닫게 되고, 관객과 만나면서도 이런 부분도 있었구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분명 그 대사들도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만든 것일 테고, 관객분들이 보시면서 그런 대사들을 통해 느끼시는 바도 분명히 영화가 완성되는 데 있어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김진유 :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완성하셨고, 개봉을 하면서 많은 극장들을 돌아다니고 계실 텐데요.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김태훈 :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마냥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고, 코로나도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래서 영화를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이 영화를 끝으로 다시는 영화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관객분들을 만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저의 진심이 부족하더라도 관객분들에게 표현이 되었고, 관객분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극장이 존재하고, 관객분들 덕분에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거를 끝까지 잊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김진유 : 주말 소중한 시간을 <빅슬립>에게 내어주신 관객분들께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인사 말씀 들으면서 오늘 씨네토크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김영성 : 너무 좋은 시간 갖게 해 줘서 감사하고, 관객분들도 너무 감사하고 정말 좋았던 씨네토크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 재밌게 보셨으면 좋은 영화라고 주변에 입소문도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훈 : 저는 오늘 안 울려고 했는데, 옆에서 자꾸 같이 글썽거리셔 가지고. 저도 너무 감사드리고요. 강릉에 와서 이렇게 따뜻한 표정들로 저희들을 바라보고 계신 것 자체가 많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노력하는 창작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돌아가시는 길도 따뜻한 마음 안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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