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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이미랑 감독, 오민애‧임세미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3. 1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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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씨네토크

2023.12.27.

 

초청 : 이미랑 감독, 오민애임세미 배우

진행 : 오승희 이스트씨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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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희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GV를 맡은 오승희입니다. 먼저 <딸에 대하여> 연출하신 이미랑 감독님, 엄마 주희를 연기하신 오민애 배우님, 그리고 딸 그린역을 맡은 임세미 배우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미랑 : <딸에 대하여> 연출한 이미랑입니다. 저는 오늘 강릉에 일찍 왔어요.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도 보고 극장도 계속 돌아봤는데 너무 좋습니다. 씨네필 회원가입하고 싶을 정도로 신영극장에 반했습니다.

 

오민애 : 맞아요. 멋지고 정이 가는 극장인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보통 GV를 할 때 영화를 같이 봐요. 관객들하고 호흡을 같이 하고 싶어서요. 오늘도 영화를 봤는데 왜 이렇게 엄마 얼굴이 보이죠? 우리 엄마하고 똑같이 생겼네요. 그걸 많이 느끼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임세미 : 스크린을 보다가 극장 안에 옆에 기둥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오래된 극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영에서 <딸에 대하여>를 상영한다는 게 좀 기뻤고요. 오늘 영화를 보러 가까이서 오신 분들도 계시고, 멀리서 강릉까지 오신 분들도 계실 텐데 즐겁게 대화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오승희 : 이 작품은 2017년도에 출간된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감독님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게 된 시작점이 궁금하고요, 소설을 영화화할 때 어려운 부분은 없으셨는지 이야기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미랑 : 제작사 아토 측으로부터 제안을 받았고요. 저는 김혜진 작가를 데뷔작부터 읽었던 애독자였고, 딸에 대하여도 출간된 다음에 바로 찾아 읽었어요. 개인적인 얘기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대학에서 영화와 문예창작, 2개 학과를 전공했어요.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도 있었고 더불어 시나리오를 잘 쓰고 싶은 욕망도 있었어요. 그래서 두 예술, 매체가 너무 다른 근육으로 쓰인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딸에 대하여> 작업하기 이전에 개인적으로 장편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도 몇 번 했었고, 그러니까 요는 제가 각색을 하는데 어느 정도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고, 어떻게 근육을 써야 어떻게 표현될지 감각으로 알고 있어서 이런 제안이 들어왔을 때 소설을 영상으로 옮길 때 포기가 되는 부분들이 빨리 보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문학, 문자로만 존재해서 빛나는 언어들이 있고 그것을 영상으로 가져왔을 때 아무래도 퇴색되는 것도 있잖아요. 왜냐하면 영화는 시각과 청각의 매체니까요. 어느 것을 포기해야 되고 어느 것을 취할 수 있는지 빨리 캐치가 됐어요. 그래서 시나리오 과정도 빨리 퇴고를 한 편이고요. 원작이 가진 주제 의식이 너무나 공명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관객분들이 영화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드릴까 그 고민을 많이 하며 각색을 했습니다.

 

오승희 : 이 영화는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시느냐에 따라 가족영화가 될 수도 있고 여성 영화가 될 수도 있고, 퀴어 영화가 될 수도 있잖아요. 배우님들은 처음 시나리오를 보셨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시고, 또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게 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민애 : 지금 기억나는 건 저한테 감독님이 이 영화가 늙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 게 기억이 나네요. 선생님 이 영화는 퀴어 영화 아니에요, 여성 영화 아니에요, 저는 사람의 늙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늙음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때 했던 말이 기억나거든요. 늙어가는 것과 더군다나 외로움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오늘 영화를 봤더니 혼자라는 말을 되게 많이 쓰더라고요. 그전에는 그냥 전체적인 느낌으로 뭉뚱그리면서 이해를 했었는데 주희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싸안고 있더라고요. 혼자라는 걸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그런 느낌이 많이 받았어요. 저는 늘 언제나 그래요. 질문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게 있어요. (웃음)


임세미 : 감독님도 민애 선배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퀴어 영화는 아니지만 제가 그린이라는 인물에 다가가려고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여러 번 읽고 나니까 모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관심 있는 동물이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다시 보니까 엄마의 일터가 저한테 너무나 힘겹게 무겁게 끌려오더라고요. 엄마가 일을 하다가 남들한테 부탁을 하고 나오는데 그린이가 저런 딸이었구나, 엄마 어깨에 끈질기게 붙어있어서 그걸 엄마가 떨쳐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계속 붙잡고 있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이 영화 보는 내내 저한테 계속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보는 데 엄청 힘겨웠어요. 매일매일 볼 때마다 다르구나, N차 관람이 필요한 영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오승희 : 저도 영화를 보면서 그린이가 한 번쯤 엄마 일터에 가봤으면 저런 말을 못 했을 텐데 생각되더라고요. 저도 사실 저희 엄마가 요양보호 일도 하고 계시거든요.

 

이미랑 :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아까 말씀하셨듯이 여성 영화이기도 하고 퀴어 영화이기도 하고 돌봄 노동을 다루고 있는데 그런 여러 가지 소재를 뭉뚱그려서 하나의 주제 의식인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소설과 다르게 거리 두기가 되는 매체고 다양한 인물들의 쇼트가 화면 안에 들어옴으로써 우리가 다양한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되잖아요. 민애 선배님한테는 주희가 혼자 늙어가는 게 두려운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오로지 자신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드렸어요. 그린이가 물론 레인과의 관계가 있지만, 단지 퀴어적인 요소만 도드라지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요는 이 영화 안에 여러 가지 맥락들이 있는데 그걸 하나로 잘 묶어서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였던 거죠. 그런 지점에서 아까 세미 배우가 얘기한 것처럼 보면 볼수록 대입할 수 있는 인물들과 내가 놓인 현 상황에서 보이는 소재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오늘 저는 레인이가 되게 외롭게 보이더라고요. 이상하게. 레인이가 좀 딱하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승희 : 영화를 보면서 색감으로 전달하는 정서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비되는 색감이 있고, 요양보호소 같은 경우는 굉장히 환하지만 되게 차갑고 푸른 색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집 같은 경우는 굉장히 어두운데도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 미장센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미랑 : 그러니까 제가 미장센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던 건 되게 좋은 원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있고요. 좋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저는 영화적으로 표현을 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죠. 독립영화라는 게 예산도 한정되어 있고, 스케줄도 되게 빠듯하긴 하지만 화면이 좀 가난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더라고요.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어요. 독립영화라고 했을 때 우리가 기대하게 되거나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약간 궁핍한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제가 본 독립영화들이 조금 그랬던 것 같아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여러분들한테 했을 때는 문턱을 낮춰드리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영화를 볼 때 만이라도 다가가기 쉽게 만들어보자는 게 저희 촬영님과 동의한 부분이었어요. 조금 부드럽고 잘 삼켜서 넘길 수 있게.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소리도 굉장히 애를 많이 썼어요. 가정집을 자세히 보시면 물도 새고 낡은 흔적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낡은 흔적도 가려서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조금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오승희 : 오늘 영화를 보시면서 관객분들이 굉장히 많은 질문들을 떠올리셨을 것 같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으실 것 같아요.

 

관객 1 : 원작을 본 지 되게 오래전이어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영화 속 에필로그 장면이 소설에서도 같은 구성이었는지 궁금해요. 그렇게 만드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이미랑 : 타이틀이 뜨고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하게 된 엄마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저희가 시나리오에서 덧댄 부분이에요. 원래 소설에서는 장례식장에서 끝나요. 에필로그 같은 경우도 원작에는 없어요. 엄마의 돌봄 노동 일상이 지속되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이 영화를 보시는 많은 분들이 대안 가족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저희 영화에는 적합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안은 차후에, 부수적인 것들을 말하는 거고, 또 하나는 가족이라는 어떤 정상의 범주, 혈연의 범주를 영화 안으로 끌어드리는 것 같아서요. 저는 영화에 나오는 인물의 관계가 대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요, 가족이라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공동체라고 불리는 게 가장 적합한 것 같아요. 에필로그를 덧붙이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마가 보통 엄마가 아니잖아요. 되게 민폐라고 할 정도로. 직장인이 저렇게 일을 하면 어떡해요. 거리를 두고 적당히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엄마의 성정을 보여주고 싶었고 공동체의 어르신을 지속적으로 보살핀다는 걸 에필로그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관객 2 : 다른 작품에서 오민애 배우님 너무 인상 깊게 봤었는데, <딸에 대해서>는 그때와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신하셔서 같은 배우님인 걸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해서 봤어요. 영화에서 엄마가 딱 두 번 정도 웃더라고요. 처음에 할머니가 사탕 넣어주실 때, 꿈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때랑 할머니 돌아가시고 모여서 빵 먹을 때 딱 두 번만 웃더라고요. 계속 어두운 표정으로 너무 고된 연기를 하셔서 촬영하실 때 어떠셨는지 궁금하고요. 또 한 가지는 엄마가 딸한테 네 일도 아닌데 왜 네가 나서냐고 말하지만 막상 엄마는 딸보다 더 나서잖아요. 그래서 모녀가 서로 되게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자기 삶에서 옳다고 믿는 것이 있고 남들은 이해 못 하더라도 그런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영화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당신이 뭔데, 가족도 아니면서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대하기도 하고. 일상에서 그런 일들을 겪으실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 지도 궁금해요.

 

오민애 : 세상이 정말 이상해졌어요. 나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설의 베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이 작업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아주 이렇게 힘든 작업은 처음일 거예요. 저는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거든요. 에너지도 넘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스타일. 여기 나오는 엄마하고는 완전히 180도 달라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누르고 가야 되는 거예요. 에너지를 제어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통 속에 들어가서 꼼짝도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감독님은 제가 에너지를 좀 발산하려고 하면 넘치는 것 같다고 눌러버리죠. 이 영화에서 오민애는 전혀 나오지 못했어요. 오주희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드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매력 있었고, 시나리오를 봤을 때 제가 이 역할을 선택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때까지 내가 표현하지 않았던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겠구나, 배우로서 너무 멋진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작업을 하게 됐죠.


오승희 : 저도 독립영화 안에서 다양한 엄마의 모습들을 봤는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됐던 것 같아요.

 

오민애 : 제가 많은 독립영화에 출연했잖아요. 근데 이번 작품에서 엄마는 굉장히 달랐던 것 같아요. 배우는 아마 누구나 마찬가지일걸요. 눈 밑에 다크서클이 화면으로 나오고 턱이 이렇게 두 턱, 세 턱으로 나오면 정말 끔찍하게 싫을걸요. 근데 저는 이 영화에서 그런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지금보다 더 초라하게 보이고 외로워 보여야 됐었나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저는 화면에 제 두 턱이 그렇게 자랑스럽더라고요. (웃음) 늙어가는 모습을 자랑스럽다고 표현하는 건 좀 그렇지만, 저 다크서클과 흰머리와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불편하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도 칭찬해 줬어요.


임세미 : 저도 궁금해요. 다른 분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걸 어떻게 지켜나고 계시는지. 저 약간 앵그리 비건이라서. (웃음) 그냥 대처를 잘못할 때도 있고, 그때그때 마음이 닿는 대로 방긋 웃어버리긴 하는데 우선은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최재천 박사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알면 사랑한다고. 알면 사랑하게 될 거야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이미랑 : 뭘 알면 사랑하게 되나요?

 

임세미 : 뭐든지요. 자연도 그렇고, 엄마도, 동물도, 늙음도 그렇고. 대상을 알게 되면 왜 그러는데! 이게 아니라 내 앞에 있는 당신을 사랑하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제 친구들이 영화 보고 감독님한테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완전 사운드 덕후라고. 동물 다큐 찍는 친구들이 영화 보고 사운드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 그러더라고요.

 

오승희 : 영화 전반적으로 일상 소음들이 계속해서 깔려있잖아요. 되게 작은 소리까지도 깔려있고. 음악은 <딸에 대하여> 타이틀 나올 때만 나오더라고요. 음향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랑 : 음악 감독님이 곡을 많이 만들어주셨어요. 정말 20곡 가까이 만들어주셨는데. 영화 음악은 한 곡이 아니라 두 곡이 들어갑니다. 장례식장에서 하나가 들어가고, 그리고 엔딩크레딧에도 사운드 스케이프와 앰비언스가 들어가요. 그리고 시위 장면에서 약간의 음향 같은 사운드를 제가 입히긴 했어요. 음악들을 덜어내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영화에서 음향이 엄청 중요해지는 거죠. 개소리나 오토바이 소리부터 해서 굉장히 신경 쓸게 많았고요. 아무래도 저희 영화가 엄마의 정서와 심상 같은 이미지로 계속해서 이어지니까 느슨해질 수가 있어서, 제가 공략했던 방식은 사운드로 휘어잡고, 쇼트와 쇼트의 맥락 사이를 어떻게 쫀쫀하게 만들 것인가를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사운드에 당연히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오승희 : 감정이 고조됐을 때 사운드도 같이 증폭되니까 그만큼 사운드도 되게 집중해서 듣게 되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이미랑 : 그게 소설 문학과 다른 거죠. 소설은 사운드가 없는 매체잖아요. 제 생각에 영화는 사운드가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음향 시스템이 조금만 좋지 않으면 영화에 몰입을 방해해요. 그만큼 소리의 체험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소설이 다루지 않는 매체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죠. 원작 소설이라는 좋은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관객 3 : 안녕하세요. 저는 전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우연히 강릉에 왔다가 상영을 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아까 배우님 말씀하신 것처럼 N차 관람을 하니까 보이는 게 또 다르긴 하더라고요. 남보다 못한 가족, 오히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남. 마음에 들지 않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직장에서 자기가 가장 싫어한 강과장 같은 자세와 태도로 레인에게 차갑게 대하는 것도 의도를 하셨는지 좀 궁금해요.

 

이미랑 : 로케이션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영화 찍을 때 로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기고, 로케이션에 맞춰서 인물의 동선을 짜고, 그런 동선이 인물의 정서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엄마집이 모든 로케이션 중에 가장 중요했고 구하기도 그만큼 힘들었어요. 제가 원래 시나리오 썼을 때는 부엌이 거실과 통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 동선 짜기도 수월할 것 같았거든요. 마당이 있는 2층집을 구하다 보니까 여러 제약이 많았어요. 그러다 인천에서 엄마집을 구했는데, 주방이 되게 특이한 공간이었어요. 주방이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거예요. 처음에 레인이 들어왔을 때는 거실에서 얘기하지만, 되게 진중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는 두 인물을 주방으로 집어넣어 버린 거죠. 저는 레인과 엄마의 팬케이크 대화씬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섬세한 호흡의 연기를 배우분들이 정말 잘해주셨어요. 그런 호흡을 다루면서 편집하는데 약간 좀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호흡이 가능했던 이유는 부엌이 폐쇄적 공간에 위치한 로케이션 때문인 것도 있어요. 확장형의 부엌이라면 이 정도의 쫀쫀함이 가능했을까? 편집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민애 : 그 장면을 찍는데 연기할 때도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수치로 얘기해 본다면, 감정이 1부터 10까지 있는데 감정의 변화가 3에서 7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여기는 4.3 다음은 4.4, 4.7 이런 식으로 소수점 단위의 세밀한 감정 변화들이 그 장면에 있거든요.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식으로 서로 간에 티키타카를 할 수 있는 연기 호흡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미랑 : 그린 같은 경우는 욕실로 밀어 넣어버리면서 그런 세밀한 대화가 되지 않는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정서가 어떤 공간에 담기느냐에 따라서 긴장감의 고조가 좌지우지되는 걸 이번 영화를 연출하고 편집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오승희 : 욕실에서 그린이와 엄마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눈빛이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그때 어떤 감정으로 연기하셨는지 궁금해요.

 

임세미 : 사실 딸이라면 한 번쯤 저런 대화 나눠보셨을 것 같아요. 똑같은 대사는 아니었을지언정. 저희 어머니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는데 집에서 하던 모습 그대로 영화에 가져다 놔서 너무 창피하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진짜 어쩔 수 없나 봐요.

 

오승희 : 오늘 레인 역할 맡으신 하윤경 배우님이 참석을 못하셔서 너무 아쉬운데 영화 속에서 레인이란 캐릭터가 정말 멋진 사람이잖아요. 현장에서 같이 연기하시면서 어떠셨는지.

 

임세미 : 윤경 배우는 정말 너무 밝은 사람이에요. 정말 어떤 상황이든 제가 복이 많아서요.”“제가 운이 좋아서요.” 이런 얘기를 항상 하거든요. 어쩜 저렇게 멀끔하고 단단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예요. 오늘 같이 못 와서 너무 아쉬워하고 있을 거예요.


오민애 : 저는 윤경 배우가 그렇게 쾌활하고 발랄한 친구인 줄 몰랐어요. 현장에서도 영화처럼 저는 저대로 윤경 배우는 레인이의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잘 몰랐어요. 그러다 나중에 촬영이 다 끝날 때쯤 선배님 저 원래 성격이 이렇지 않아요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뒤로 GV를 다니면서 그제야 서로를 알게 되는 거예요. 현장에서는 각자의 캐릭터 모습만 갖고 있으니까. 같이 다니면서 더 매력을 느끼게 되고 더 자랑스럽고 그렇더라고요. GV 있으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래요.

 

관객 4 : 저는 용산의 동네 주민이고요. 서울에서 강릉으로 넘어와서 오늘 GV 참석하게 돼서 너무 좋았고요. 오늘 두 번째 관람인데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에서 공동체가 되게 중요한 지점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보면서 그린이나 레인이든, 재희나 주희든 자기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점점 없어지는 게 불안해서 어떻게든 자기랑 같이 있을 사람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침대에 누워 계신 재희한테 주희가 내가 누구인지 물어볼 때 이름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고 하는 장면이 좀 기억에 남았어요. 제가 감독님과 배우님께 드리고 싶은 질문은 마지막에 상상 장면이 누구의 상상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세미 : 그때도 잠깐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모두가 원하는 상황이지 않을까?라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이미랑 : 유일하게 그 장면에서 감독의 시선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선물하고 싶었던 꿈인데요. 이 장면을 넣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왜냐면 인물 간의 정서가 잘 흐르다가 갑자기 그 장면에서 두드러지잖아요. 이게 뭔가 영화적이다라는 게 바깥에서부터 확 느껴지잖아요. 근데 저는 그 장면을 넣고 싶었어요. 몰입을 해치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이 있었고 제작진들과 회의를 할 때마다 계속 고민이었어요. 그 이유는 제가 개입을 했기 때문이죠.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이 영화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승희 :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희가 돌보는 분하고 신호등을 건너잖아요. 그때 주희가 웃으면서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저는 보면서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전에는 없었던 존재들이 그린과 레인을 통해서 엄마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거잖아요. 그 친구들이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존재로 느끼면서 그 친구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서 따뜻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들었어요. 주희가 웃는 시점을 언제로 할지에 대한 것이나 마지막 장면의 연출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민애 : 저는 그 장면 관련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재희가 죽었는데 주희가 편안해졌잖아요. 물리적인 재희를 정신적인 차원으로 본다면 주희가 만들어낸 자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 외로움이나 두려움, 공포에 떨고 늙은 모습도 추해 보이고. 그건 주희가 봤을 때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 모습은 빨리 죽어야 된다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고, 늙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을 소멸시켜 버리는 어쩌면 괴물이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여의어야만 주희가 편안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옛날에 제가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때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동화를 읽었어요. 자기의 성을 가진 할머니가 나오는 동화인데, 그 성의 정원에 어린이들이 와서 놀아요. 그때는 새도 지저귀고 동물들도 같이 정원에서 노는 거죠. 어느 날 이 할머니가 아이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개구멍을 막아버렸어요.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니까 그 정원이 겨울이 돼버린 거예요. 그 동화가 왜 이렇게 제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을까 생각했는데 아마 소통과 관련된 부분인 것 같아요. 내 마음에 성이 있고, 외부에 어떤 존재와 같이 함께 소통을 해야만 봄이 찾아오는데, 그런 것들을 차단시켜 버리고 막아버린다면 내 마음은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롭게 혼자 늙어가는 노인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까 말씀했던 공동체적인 부분에 대한 것하고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또 다른 길로 제가 얘기하고 있는 걸까요? (웃음)

 

이미랑 : 아니요. 되게 주제 의식을 건드리는 은유였는데요. 제가 GV 때마다 매번 해야지 하면서 놓친 말이 김혜진 작가의 말이었어요.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는 그 마음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셨다고 작가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저는 이 영화도 그랬으면 좋겠는 거예요. 딸도 이해 못 하겠고, 누구도 이해 못 하겠고, 엄마도 이해받지 못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거죠. 그것의 결과가 마지막 횡단보도 씬과 연결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한 거죠. 엄마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인다는 건 어쩌면 그린과 레인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둘을 향해 마음의 방향을 돌리는 웃는 엄마의 모습. 저희 제작진이 하고 싶었던 얘기였거든요. 그래서 그 비유가 되게 적합한 말씀이신 거죠.

 

오승희 : 돌아가는 길부터 연말, 새해까지도 계속 이 영화가 마음에 많이 머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올 것 같은 영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미랑 : 오늘 오신 관객분들의 얘기를 더 많이 듣고 가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계속 남아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민애 : 괜히 저도 좀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그렇지만 늘 GV에 오면 여러분들의 미소와 따뜻한 눈빛 때문에 되게 많은 힘을 받거든요. 오늘도 큰 힘을 받고 갑니다. 이렇게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임세미 : 한 해가 일주일 남은 오늘 귀한 시간 극장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어떤 부분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마주치게 되더라도 내년에는 영화의 마지막 미소처럼 미소 짓는 한 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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