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추락의 해부> 리뷰 : 사실과 진실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2. 15. 11:21

본문

 

<추락의 해부>

사실과 진실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

 

 제목부터 아주 직관적인 영화가 아닐 수가 없다.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 산장, 하얀 설원 위로 흩뿌려진 피와 시신, 그 앞에 서있는 아이와 여성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 역시 영화가 이 추락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밝히는 법정 스릴러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영화 내용 역시 제목과 포스터가 시사하는 그대로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마주한 관객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추락의 해부>에서 파헤치는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닌 진실과 허구의 관계다.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성공한 작가다. 그가 펴낸 책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영화 초입에도 그런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위층에서 작업하는 남편 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학생 조에는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그들의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는 반려견 스눕(메시)과 함께 산책하러 나가고, 다니엘이 돌아오니 집 앞 마당에 아버지가 머리에 피를 잔뜩 흘린 채 죽어 있었다. 다니엘이 놀라 산드라를 부르고, 그가 뛰쳐나와 경찰에 신고하는 이 오프닝 내내 들리는 50 centP.I.M.P가 오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152분이란 적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사뮈엘의 죽음을 두고 산드라의 무죄를 입증하는 법정 공방을 다룬다. 2023년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던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시각과 청각을 넘나드는 연출로 관객은 눈으로 보는 것을 다 믿을 수 없고, 사실들이 나열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피고인 산드라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을 것이다.

 

 사뮈엘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은 사실상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두고 벌이는 해석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뮈엘의 추락사의 원인을 찾는 과정보다는 산드라의 삶에서 발견된 사실의 조각들을 바탕으로 산드라 측과 검사 측 간의 대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말이다. 검사는 사건 발생 하루 전날 녹음되니 산드라와 사뮈엘 사이의 격렬한 부부싸움 녹취록을 법정에서 틀면서 산드라를 몰아붙인다. 그가 양성애자이기에 사건 당일 조에가 온 일도 사뮈엘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나 그의 소설 속 내용이 지금 사건과 매우 유사한 부분을 띈다며 진실을 가리는 재판장에서 본인의 생각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발언하고, 증인대로 선 조에에게 질문을 유도한다. 언뜻 보기엔 검사의 태도가 매우 개인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는 관객을 흔들고 나열된 사실들을 산드라가 사뮈엘을 죽인 것으로 몰고 간다.

 

 한번 의심이 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심지어 녹음 파일 속 사뮈엘은 산드라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낸 소설을 내어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번엔 자신이 글을 쓸 시간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다니엘의 홈스쿨링은 본인의 죄책감이 어느 정도 섞인 일이었고, 집을 공사하는 것은 본인의 의사로 이사를 감행했으나 생각보다 집이 수리할 곳이 많았으며 공사비가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녹음파일 속 산드라 역시 이를 지적하며 자신은 이미 집안일을 분담하고 있으며 남 탓을 하지 말라며 사뮈엘을 몰아붙인다.

 

 이를 두고 몇몇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사뮈엘의 말에 더 힘이 실린다고 느낄 것이다. 이미 그가 의문사로 인해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그리고 조각나 부분 부분 드러난 사실들이 그의 말과 섞이면 산드라가 범인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드라는 이렇게 말한다.

 

"사무엘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우리 부부가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안다고 했는데 당신이 아는 건 전체 중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녹취 내용도 사실이고, 그 내용이 부부가 다툰 것이며 다툼 바로 다음 날 사뮈엘이 죽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이십 년 가까이 이어진 이들 부부 인생을 대표할 만한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과 진실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영화는 끊임없이 은유하여 말하고 주장한다.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고, 또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조각난 사실에 휘둘리지 않고 저마다 진실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관객리뷰단 서수민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