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하기에
청소년과 성인 사이, 열아홉이란 나이는 어중간한 나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열아홉이 보내는 고등학교 졸업은 익숙했던 울타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는 첫걸음이 된다. 각자 원하는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면서 그들은 같은 옷, 같은 공부를 하던 청소년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이 커다란 변화를 무던히 잘 맞이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시마다 고등학교의 소녀들 역시 졸업이란 큰 행사를 앞두고 생각이 많아진다.
조리부 부장 야마시로 마나미(카와이 유미)는 근처 전문대학 영양학과로 진학을 앞두고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진학이 결정된 마나미는 졸업식에서 답사를 맡게 되었다. 이틀 후 단상에 올라 친구와 후배, 선생님들 앞에서 유종의 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하지만 다들 마나미가 답사를 읽는다는 소식에 놀란다. 마나미는 글감을 찾기 위해 학교 곳곳을 누비는데, 학교의 모든 곳에서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아무도 없는 조리실에 두 명 몫의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마나미는 누군가를 잊지 못한 것 같다.
농구부였던 고토(오토 리나)는 같은 동아리원이자 소꿉친구였던 테라다와 진학하는 지역이 달라 다툼이 있었다. 대학에 가서도 함께할 줄 알았던 테라다는 도쿄로 가겠다는 고토의 결정에 마음이 상했고, 고토는 졸업하기 전 어떻게든 테라다와 화해하고 싶다.
경음악부 부장 쿄코(고미야나 리나)는 졸업식 당일 공연을 위해 동아리원들과 무대에 오를 순서를 동아리원들과 함께 정한다. 앞서 미리 설문조사를 한 결과 립싱크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 연주를 할 줄 아는 부원이 아무도 없는 헤븐스 도어가 피날레 무대를 장식해 달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부원들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쿄코는 소꿉친구이자 헤븐스 도어의 보컬 모리사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강행한다.
도서실 단골인 사쿠라(나카이 도모)는 소극적인 성격 탓에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매번 도서실에 들러 책을 읽었다. 도서실엔 사쿠라가 읽을 수 있는 책도 많고, 그와 말동무인 동시에 조언을 해주는 선생님이 있다. 사쿠라는 졸업을 목전에 둔 순간에도 어김없이 시끌벅적한 반을 벗어나 도서실로 향한다.
네 사람은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기에 학교라는 공간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유기적으로 스토리가 연계되지 않는다. 각자 맞아야 하는 이별도, 갖고 있는 고민도, 장래에 희망하는 꿈도 모두 다른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시마다 고등학교를 떠나는 졸업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일 것이다. 졸업하는 순간 자신의 주변에서 달라질 것들에 아직 인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특히 마나미는 교실에서 떨어져 죽은 남자 친구 슌을 잊지 못했다. 슌과 함께 직접 싼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던 마나미는 그날 이후 웃음을 잃었다. 밤이면 슌이 떨어져 죽던 날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둘의 관계를 알던 다른 친구들도 모두 마나미를 걱정한다.
<소녀들은 졸업하지 않는다>는 그 시절을 거쳐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 더욱 공감할 수 있다. 비록 이해하기 쉬운 사랑이란 감정을 주로 다루는 듯 하나 내밀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안하고 크게만 느껴지는 고민거리를 안고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학생의 고민이 보인다. 카메라 역시 그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연출하여 슌과 함께했던 조리실 안에서 마나미의 뒷모습을 담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 등 관객들이 직접 상상하고 유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졸업식 당일, 모두 친구와 화해하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졸업장을 받는다. 마나미 역시 답사를 읊기 위해 졸업식 단상 앞에 선다. 하지만 당일 아침까지 악몽을 꿀 정도로 그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슌의 사진을 들고 온 그의 어머니를 보며 차마 입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모두가 가고 난 뒤 텅 빈 체육관에서 그의 환영을 본 마나미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그가 써온 답사를 읊는다.
학교가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기에 졸업한 뒤에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나, 그 바람은 결코 이뤄질 수 없을 거란 것. 매일 함께 지내던 친구도, 항상 친절하게 지도해 주신 선생님도 없는 세계지만 가능성이 넘치고 새로운 만남과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 세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말이 담긴 답사를 듣고 나서야 슌의 환영이 거치고 유리창 너머로 밝게 빛나는 오후 햇살만이 남는다. 몸은 졸업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학교에 남겨둔 소녀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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