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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의 세계> 리뷰 :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넓어진다는 것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2. 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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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의 세계>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넓어진다는 것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안락하던 자신의 보금자리, 즉 알을 깨고 나와 투쟁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작고 좁았으며 바깥으로 나왔을 때 세계는 너무나도 넓고 복잡하다는 진리. 이 영화 속 주인공 클레오도 그러하다. 내가 전부인 줄 알았던 세상을 깨고 나왔을 때 진짜 세상을 마주쳤을 때, 클레오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클레오(루이즈 모루아 팡자니)에게는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가 있었다. 글로리아는 보모지만 어머니의 부재를 채워줄 만큼 사랑을 주었고,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봤으며 그의 자장가, 손길 하나하나 모두 클레오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클레오는 그런 글로리아가 좋았고, 그렇기에 글로리아가 자신의 세상이며 자신이 그의 세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글로리아의 노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글로리아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클레오는 그동안 자신의 세상이라 믿었던 글로리아를 떠나보낸다.

 

 마리 아마슈켈리 감독의 신작 '클레오의 세계'는 아이의 시점을 중심으로 성장과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적재적소에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 장면들이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으로 연출되는 장면은 클레오의 생각과 꿈, 그가 바라보는 시선이나 기억인데 파스텔 톤 색감에 아이가 그린 듯 투박한 그림체가 어우러져 클레오란 아이의 감정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애니메이션 장면이 들어갈 때마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이 기법이 아니라면 아쉬움을 느낄 것 같을 정도로 극의 '와우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영화는 클레오가 글로리아와 이별하기 전과 이별 후 다시 글로리아를 찾아갔을 때, 그리고 글로리아의 손주가 태어났을 때 클레오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함께 영화도 분기점을 맞는다.

 

 글로리아의 섬에 찾아갔을 때도 클레오는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글로리아는 물론이고 난다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 주변 사람들은 클레오의 존재를 예뻐한다. 하지만 난다의 아이 산티아고가 태어난 이후로 그 관심은 아기에게 돌아간다. 클레오는 자신이 중심이던 세상에서 강제로 쫓겨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하는 글로리아 마저 온 신경을 다른 녀석한테 쏟고 있으니. 산티아고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듣고 그것은 내 것이라며 글로리아의 노래에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잠이 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려봐도 글로리아의 관심은 전과 같지 않다. 아직 눈을 감으면 글로리아와 함께 했던 추억들과 손길이 기억나는데, 따뜻하고 활기찬 클레오의 기억 속과 달리 현재 클레오는 전혀 즐겁지 않다.

 

 자칫 유치한 어린이의 질투라고 생각될 법한 이야기를 영화는 아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관객들이 클레오에게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경험했던 질투와 서운함,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박탈감과 보호자에게 계속 사랑을 갈망하고 목말라했던 감정을 일깨우고 클레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지나왔으니까.

 

 산티아고의 침대를 마구 흔들어 혼이 난 클레오는 그 길로 섬의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바닷가를 향해 달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절벽에서 다이빙하고, 또 수영하며 웃는 아이들 사이에서 망설이던 클레오는 곧 안경과 신발을 벗고 단숨에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바다에 빠진 후 애니메이션 화면으로 전환되는데, 새카맣다 느껴질 정도로 짙은 파란색의 색감 안에서 어둡고 차가운 화면이 물속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곧 빛이 나타나고 클레오가 그 빛을 잡자 고래가 나타나고, 얼마 안 가 클레오는 스스로 물 밖으로 나와 헤엄쳐서 바닷가로 돌아간다. 그동안 글로리아와 함께하던 수영을 이젠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앞으로 클레오는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까. 비로소 두 발로 세상에 서는 방법을 배운 어린이에게 펼쳐질 길은 무한하다. 그렇기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마치고 글로리아가 뒤돌아서 걸으며 울음을 터뜨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많이 사랑한 아이가 제 품을 떠나 이젠 본인이 모르는 모습으로 성장할 것이 섭섭하면서도 잘 자라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을 테니까.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는 과정과 그를 지켜보는 보호자의 마음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감독의 따뜻함이 느껴.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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