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쿠와 세계>
오물 속에서 피어나는 청춘
영화의 시작, 흑백으로 표현된 수면 위로 자잘하게 일렁이는 파동이 한적한 기운을 내뿜는다. 에도의 고요한 정취를 담아내려는 카메라는 관객의 예상에 코웃음 치듯 오물로 가득한 나무통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과 에피소드마다 빠짐없이 분뇨가 등장한다. 똥거름장수인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와 츄지(칸이치로)가 에도 곳곳의 인분을 수거하여 강 건너 마을에 거름으로 되파는 과정, 몰락한 무사 가문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가 사는 공동주택에서 한밤중 폭우로 변소의 오물이 역류한 사건 등등. 흑백 화면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영화를 보는 내내 생생한 색감으로 표현된 배설물 더미를 마주하였다면 (필자와 같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극장에서의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감독 사카모토 준지가 어떠한 의도로 흑백 시대극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그려낸 에도의 삶은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살아내고 버텨내고자 하는 청춘들에게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은 보이지도 않는 귀천을 핑계 삼아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멸시와 조롱을 퍼붓는다. 심지어 어느 무사의 집 문지기는 자신들은 저잣거리에 뒹구는 서민들과 먹는 것이 다르다며 야스케에게 더 많은 ‘똥’ 값을 요구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시대에도 만연한 소위 ‘있는’ 자들의 온갖 만행(주로 ‘급’을 나누는 몰상식한 행위)들이 겹쳐 보인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을 쥔 자들이 마구잡이로 휘두른 칼날에 상처를 입어도 보상받기는커녕 홀로 감내해야 한다. 이들은 국가를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들의 생각에는 결단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깊은 자상을 입은 겐베(사토 코이치)의 등허리에서 (최근 뉴스에서 오르내린) 입을 틀어 막힌 채 강제로 끌려 나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돌고 돌면 음식이나 똥이나 똑같은 거야.” 인분의 악취와 고객들의 진상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야스케가 내뱉는 이 대사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내비치는 가치관을 관통한다. 분뇨를 거름 삼아 키운 작물들은 사람들이 섭취한다. 그리고 작물들은 소화작용을 걸쳐 사람들의 분뇨로 배출된다. 결국 인간을 둘러싼 음식과 똥은 ‘순환(循環)’되는 것이다. 원활한 ‘순환’을 위해 에도에 쌓인 똥이 농작지로 이동시켜 주는 똥거름장수는 당시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세상은 사람들이 뒤집어쓴 표피(表皮)로 고귀한 자와 미천한 자를 구분 지어 차별을 일삼는다. 미천한 자들로 규정된 이들은 서글프게도 관습처럼 온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 채 빈곤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수레가 파손되어 힘겹게 지게로 똥을 옮겨온 야스케와 츄지를 보고 마을의 촌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수고했다는 말 대신 똥을 반이나 흘렸다며 두 사람에게 똥을 뿌리며 분풀이를 해댄다. 똥을 뒤집어쓴 서로를 바라보며 야스케와 츄지는 배를 잡고 웃어버린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견디며 귀중한 거름을 가져온 이들에게 돌아온 보상이 괄시뿐이라니, 정말이지 여러모로 오물에 둘러싸인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먹고살기 힘들고 치사한 에도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움트고 성장이 일어난다. 영화가 (서장과 종장을 포함하여) 9개의 장으로 엮어낸 이야기에는 1858년 늦여름에서 시작해 1861년 늦봄까지 오키쿠와 츄지, 야스케의 청춘이 담겨 있다. 오키쿠는 아버지의 죽음과 목소리의 상실이라는 불행을 딛고 다시 삶의 생기를 회복한다. 한밤중 츄지의 이름을 쓰고는 부끄러움에 발을 동동거리는 오키쿠, 이 여파로 쓰러진 겐배의 위패가 그녀의 극복을 대변하듯 보인다. 온갖 핍박을 감내하던 야스케가 자신을 쫓아내는 문지기를 향해 똥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참지만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는 츄지의 순정이 인상적이다. 눈이 내리는 순간부터 그 눈이 소복이 쌓일 때까지 츄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고, 손바닥으로 땅을 치고,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는 것을 반복한다. 투박하고 무모한 사랑의 표현이지만, 츄지의 마음은 고스란히 오키쿠에게 전달되어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어루만지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아, 청춘이로구나.
영화의 마지막, 수목이 울창한 길을 걷는 오키쿠와 츄지 그리고 야스케. 야스케의 선창을 시작으로 세 사람은 ‘아, 청춘이로구나.’라는 문구를 되풀이한다. 웃음을 가득 머금은 세 청춘이 지나가는 자취는 특이한 화각 탓에 구체의 이미지로 보인다. 교습소에서 승려가 ‘세카이(세계(世界))’라는 단어를 두고 저쪽으로 가다 보면 이쪽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세 사람의 걸음은 순환하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순환하는 세상’이라는 이치 속에서 세 사람이 처음의 자리로 돌아올 때, 부디 이전보다 나은 세계를 마주하길 기원하는 바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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