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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드 오크> 리뷰 : 차별과 혐오를 넘어 희망으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2. 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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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드 오크>

차별과 혐오를 넘어 희망으로

 

 영화의 시작부터 긴장감이 넘친다. 야라(에블라 마리)가 찍는 것으로 보이는 흑백 사진 컷들이 분절된 장면을 보여주듯 이어지며, 그 위로 격한 대화가 오간다. 거친 욕설과 혐오의 말들이 이방인을 향한 냉정한 표정이나 격정적인 동작을 하는 인물 사진들 위로 쏟아지며, 전쟁을 피해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시리아난민들이 겪게 될 폭력적인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야라의 카메라는 가장 극렬하게 난동을 부리던 자의 손에 의해 무참히 부서지고 만다. 난민들을 향한 이러한 원주민들의 불평과 혐오는 TJ(데이브 터너)와 같이 난민들을 도우려는 사람들까지도 무차별적인 비난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몰인정하게만 보이던 이 원주민들 또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궁지에 내몰린 처지라는 것이 오래지 않아 밝혀진다. TJ가 난민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건네는 모습을 바라보던 동네 아이들이 왜 쟤들만 주나요” 묻는 장면에서 보듯이 폐광으로 생계의 수단이 송두리째 뽑힌 이 마을에 남은 사람들 또한 옹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텅 빈 냉장고에 감자칩 한 봉지로 하루를 연명하는 아이들, 집을 처분하고 타지로 나가야 할 절박한 상황에도 집값 폭락으로 꼼짝 못 하는 사연 등이들이 처한 현실 역시도 자력만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왜 런던 부촌에는 난민을 수용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불평하면 인종차별을 한다고 욕한다는 그들의 말에도 딱히 부정할 논리가 없어 보인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가진 게 없어 나눌 것이 없고 함께 공유할 것도 없을 것만 같은 이들 전쟁난민과 노동자, 두 집단이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질문한다. 그리고 그 공존의 방법으로 어느 한쪽은 베풀고 다른 쪽은 받는 자선사업이 아닌 연대라는 방식을 제의한다. 그것은 말 대신 음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며 예전 광부 노조가 파업으로 단결했을 때 함께 했던 방식으로 시작한다. 잔혹한 전쟁의 참상을 겪고 아무것도 없이 제 나라에서 몸만 겨우 빠져나온 난민들과 암울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로 열패감에 빠져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아이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시간과 문화의 간극을 뛰어넘으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념이 바로 지금도 필요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음식과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싹트고, 상호 존중과 신뢰가 광부 노조의 전통에 난민들의 진심을 담은 깃발로 형상화되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용기, 연대, 저항이라는 광부 노조의 정신을 두 집단이 함께 계승하자는 의도를 담은 이 깃발은, 감독 켄 로치가 그의 영화들을 통해 줄곧 말해온 강자를 이기기 위한 약자들의 연대와 끝까지 저항하는 용기를 환기시킨다. 이것은 그가 칸 영화제 공식 상영 직후 무대인사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면 더욱 분명해진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계속 싸우다 보면 결국은 승리하게 될 겁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힘든 시대에 희망이란 어디에 있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관한 답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돌리거나 비유적인 방법 대신 특유의 방식대로 그것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한다. TJ는 오랜 친구지만 난민을 혐오하고 그들과의 연대를 방해하는 찰리(트레버 폭스)에게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라고 일갈한다. 나 보다 약자 위에 군림하는 강자가 되려는 부질없는 폭력은 그만두고 약자들의 연대와 저항에 나서는 것이, 차별과 혐오로 가득 찬 이 힘겨운 시대에 미래의 희망을 싹 틔우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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