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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어떤 인생> 리뷰 : 서툴러도 괜찮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1. 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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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어떤 인생>

서툴러도 괜찮아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삶, 그 굴레를 살아가는 윌리엄스(빌 나이)에게 느껴지는 생동감은 없다. 신사적인 태도와 사람에 대한 매너는 갖추고 있지만 그뿐, 일상에서 희로애락이라곤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그저 기계적으로 사무 일을 해치우기 바빴다. 영화는 윌리엄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며 시작한다.

 

 1950년대 런던의 공무원이었던 윌리엄스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위암 말기, 이 당시 기술로는 위암을 치료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공공사업과 책임자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던 윌리엄스에게 시한부 소식은 매우 가혹했다. 멀쩡하다고 느꼈던 삶이 최대 6개월 남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급작스럽게 다가온 엔딩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으나, 윌리엄스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을 제외하고 나면 본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윌리엄스는 해답을 찾기 위해 무작정 회사에서 벗어난다.

 

 만약 내가 곧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똑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 현대인들에게 제법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났을 때,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내가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윌리엄스는 출근하는 대신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극작가 서덜랜드(톰 버크)는 윌리엄스의 사정을 듣고 그 나름의 유흥을 알려준다. 술집에서 술도 마셔보고, 관능적인 공연을 보며 다른 사람들처럼 분위기를 즐겨 보지만 윌리엄스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윌리엄스에게 해리스 마거릿(에이미 루 우드)은 하루하루 빛나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함께 시청에서 일하며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활기찬 모습을 유지했던 해리스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윌리엄스는 그와 대화를 나눈다. 마침 윌리엄스에게 추천서를 받아야 했던 해리스에게 추천서를 써준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하루를 같이 보낸 그는 자신의 별명이 좀비였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은 상태에서도 움직이며 생각 없이 움직이는 좀비처럼 건조하게 의미 없이 일만 하던 그를 표현하는 것에 자조하던 그는 해리스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에게조차 차마 꺼내지 못했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일과 그전까지 스스로 변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해리스를 보면서 하루라도 저렇게 활기차게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당신처럼 되고 싶었다는 마음마저 모두 털어놓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충실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사는 법이란 것을.

 

 그동안 윌리엄스는 효율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타인과의 사이에 거리를 두고, 감정 소모를 줄이고, 비효율적인 일은 미뤄두고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먼저 수행했다. 가장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본인 안의 열정을 죽이고 사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윌리엄스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스스로 생각한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하기로 마음먹는다.

 

 <리빙:어떤 인생>은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사는 이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또한 일본의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2년 작 '살다'를 재해석한 영화이기도 한데, 원작과 서사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작품의 메시지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사회를 관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의미 있게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관료제의 폐해를 비판하는 이 영화는 개인적, 집단적 관점 모두를 아우르며 비판과 충고를 던진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영화의 몰입을 돕는 주요 키포인트다. 윌리엄스 역의 빌 나이는 이 영화로 제95회 아카데미, 80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해리스 역의 에이미 루 우드도 섬세한 감정표현과 발랄한 그의 캐릭터를 십분 매력적으로 표현하였다.

 

 윌리엄스가 삶의 마지막 시간을 던져 이룩해 낸 과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교훈을 얻었는가. 단순하지만 결코 얕지 않은 인생의 진리를 영화로 느껴보는 것은 어떠한가.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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