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노 베어스> 리뷰 : 불가시(不可視)적 감옥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1. 22. 12:47

본문

 

<노 베어스>

불가시(不可視)적 감옥

 

 공포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 강한 수단 중 하나이다. 하여 권력을 틀어잡은 집단이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이들을 억압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포심 조장을 참으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피지배 집단에게 공포를 주입하는 과정에는 윤리와 인정 따위는 기능하지 않는다. 단지, 얼마만큼 오래도록 광범위하게 그 효력이 발휘되는지에만 혈안이 되어 공포가 퍼지는 동안 벌어지는 온갖 갈등과 소요사태에는 안중에도 없다.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 권력의 비정한 속성이니 무슨 이유를 더 말할 수 있으랴. 영화 <노 베어스>는 공포를 무기 삼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권력 집단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영화는 정부의 출국 금지 조치로 인해 이란을 벗어날 수 없는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국경 인근 마을에 잠시간 머물며 터키에서 촬영하는 작품을 원격으로 연출하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일상과 그가 연출하는 영화 속 사건을 교차로 비추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형성되어 있다. 감독이 소유하고 있는 카메라는 구조의 테두리가 되어 카메라 앵글 안팎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유의미하게 연결 짓는다. 자파르 파나히가 연출하고 있는 작품은 자라(미나 카바니)와 박티아르(박티아르 판제이)가 터키에서 프랑스로 도피하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자라와 박티아르는 10년 동안 시도한 망명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심신이 지쳐 있다. 영화의 현시점에서 자라가 먼저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을 구했지만, 박티아르와 함께하지 않으면 떠나지 않겠다는 자라의 고집으로 두 사람의 탈주 계획은 난항을 겪고 있다. 한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머물고 있는 마을에서는 세 남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고잘(다르야 알레이)은 마을의 전통(여자 아이가 태어날 때 미래 남편이 될 사내의 이름으로 탯줄을 끊는다는)에 따라 야곱(자바드 시야히)과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이다. 하지만 고잘은 같은 마을의 솔두즈(아미르 다바리)와 사랑에 빠져 버린다.

 자라와 박티아르, 고잘과 솔두즈 두 쌍의 남녀가 겪고 있는 고난은 상황의 전개나 갈등의 인과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전개를 펼치고 있지만, 이들을 둘러싼 제약의 근원은 매우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이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의 존재에 둘러싸여 있다. 자라와 박티아르는 이념과 사상의 차이로 고잘과 솔두즈는 관습의 무게로 그들이 속한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다.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존재한다는 맹신으로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의 자유를 무시하고 탄압할 수 있는 권력집단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카메라는 이러한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해 기민하게 영화의 세계 안팎에서 상황을 포착하고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고잘과 솔두즈의 밀회 증거(카메라로 찍은 사진)를 내놓으라는 마을 사내들의 겁박에 자파르 파나히는 그런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마을의 전통에 따라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는 고백의 방 의식에서 감독은 코란에 대한 맹세 대신 카메라로 자신의 증언을 기록할 것을 요청한다. 지금은 권력 앞에 무력하지만 카메라로 포착한 기록들이 추후에 이 부정한 사회를 폭로할 역사로 기억될 수 있다는 믿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존재들은 여전히 잔혹하리만큼 그들의 위력을 과시한다. 자라는 박티아르와 함께 떠날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하여 끝내 바다에 몸을 던진다. 하늘색 담요에 머리끝까지 덮여 실려 나오는 자라를 부둥켜안고 박티아르는 무너져 내린다. 고잘과 솔두즈는 간밤에 국경을 넘어가려다 수비대의 총탄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파르 파나히는 경찰들의 기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야 한다. 잠시 차를 멈춰 세우고 숨을 고르는 감독의 옆얼굴을 보면서 실재의 여부를 떠나 '있다'는 믿음 아래 자행되는 폭력을 우리는 언제까지 감내하고 용인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밀려온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