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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권하정‧김아현 감독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0. 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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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씨네토크

23.09.26

 

초청: 권하정, 김아현 감독

진행: 오승희 대표(영화전문서점 '이스트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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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희 :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궂어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실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자리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모더레이터를 맡은 정동진 영화 서점 이스트씨네를 운영하고 있는 오승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감독님들 인사 말씀 해주시겠어요.


권하정 : 안녕하세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에서 듣보인간 1’ 역할을 맡은 권하정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아현 : 안녕하세요. ‘듣보인간 2’ 김아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오승희 : 사실 이 작품은 강릉하고 인연이 굉장히 많잖아요. 21년 연말 특별상영회 때 12월 마지막 날에 신영극장에서 상영을 했었고, 작년에는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또 올해 개봉을 해서 다시 강릉에 방문하신 소감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권하정 : 그때 딱 11일 되기 전에 1231일에 강릉에 와서 상영회를 했는데요. 강릉 기운을 받으면서 우리 더 잘 될 거라고 했는데, 개봉하고 또 이렇게 올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요. 올 때마다 항상 강릉은 좀 따뜻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아요. 근데 올 때마다 항상 대목이더라고요. (웃음) 오늘도 순위 6번째 있는 맛집에서 장칼국수 먹고 왔습니다.


김아현 : 저도 여기가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의 고향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박광수 정동진독립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을 저희 작품의 아버지라고 칭하고 있는데요. (웃음) 진짜 여기서부터가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의 뿌리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항상 떨리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 한편이 편한 곳인 것 같아요. 신영극장이.

 

오승희 :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작년에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보고 극장에서 꼭 다시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지난주에 보고 다시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분들하고 같이 일하고 싶더라고요. 일을 어떻게 이렇게 잘하시지? 어떻게 이렇게 협업할 수 있지? 너무 멋진 분들이구나라는 게 가장 첫 번째 든 생각이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생존 신고를 진짜 제대로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완전 입덕하게 됐어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동시에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게 이 영화의 목표잖아요. 영화 전체적으로 그 두 가지를 이끌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권하정 : 일단 저희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저희가 영화 보고 관객분들이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근데 인터뷰할 때 어떤 기자님이 저한테 정말 일하기 싫은 스타일이라고 하셨거든요. (웃음) 어루만져주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게 되게 컸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건 저희가 뮤직비디오의 예산이 없다 보니까 예산을 받아 볼까 해서 지원사업을 알아봤어요. 그중에 숏폼이라고 짧게 15분짜리를 내면 구백구십만 원 정도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게 있었어요.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을 브이로그식으로 넣으면서, 뮤직비디오 예산을 충당하자고 얘기가 돼서 그렇게 기획하게 됐습니다.

 

오승희 : 세 분이 일을 진행하기에 있어서 제작 일정을 맞출 수 있는 것도 되게 타이밍이 되게 잘 맞았던 것 같은데요. 아현 감독님이나 은하 감독님의 경우 어떻게 그때 당시에 타이밍이 맞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김아현 : 저는 이제 서울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프로젝트 들어가게 되면서 하정 언니랑 은하도 배려를 해줬고, 저희 팀에서도 배려를 해줘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오승희 :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각자의 역할들이 명확하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좀 초반에 정하고 이렇게 진행이 됐는지 아니면은 내가 이걸 잘하니까, 내가 이런 걸 해볼게라고 해서 진행됐는지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런 과정들이 굉장히 궁금했던 것 같아요.

 

권하정 : 너희가 이거 하고, 내가 이거 할게라는 식으로 정해두고 진행하지는 않았어요. 일단 저는 미술 쪽을 좋아하고, 꾸미는 걸 좋아해요. 아현이는 저와 반대로 미술을 제일 싫어하는 친구거든요. 그래서 뮤직비디오에서 디테일한 걸 아현이한테 제안하면 친구들이 거기에 의견을 덧붙여주는 식으로 해서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네가 이래 할래, 말래? 가 아니고 그냥 뭔가 일이 있으면 누구도 서로 미루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하다 보니까 파트 분배가 좀 자연스럽게 됐던 것 같아요.

 

오승희 : 이승윤 뮤지션에게 처음 연락할 때 손편지도 쓰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USB에 담아서 직접 전달하는 모습이 진짜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DM이라든지, SNS를 활용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직접적인 결과물로 연락을 취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권하정 :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이승윤 씨한테 아무도 공개되지 않은 비공개 인스타 아이디로 DM을 먼저 보내긴 했었거든요. 그냥 언젠가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라는 식의 DM을 보냈어요. 그 뒤에 이분한테 정말 다가가야 하는데, 저희가 이력서에 쓸 내용이 없는 거예요. 이력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뮤직비디오 제작을 저희한테 맡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를 생각했어요. 이력을 가짜로 만들어낼 수는 없잖아요. 아현이한테 뭔가 우리의 열정을 보여주면 어떨까 해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볼래?라고 했더니 다들 좋다고 해가지고 보내게 됐습니다.

 

오승희 : 아현 감독님은 옆에서 엄청난 응원을 해주시는 동료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처음에 다큐멘터리 시작할 때도 하정 언니를 소개하면서 시작이 되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셨는지 궁금해요.

 

김아현 : 뮤직비디오를 같이 일하자고 제안해 줬을 때, 수락하는 저의 마음보다는 제안하는 언니의 마음이 더 크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언니는 긴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와서 그런 용기가 생길 때까지의 시간들을 옆에서 봤으니까요. 저런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을 거고, 혹여나 제안을 제가 거절할 경우의 마음까지도 생각하고 제안을 해줬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냥 바로 좋다고 얘기했고. 또 저도 한편으로는 학교를 졸업하고 창작을 하고 싶은데 현실의 벽 같은 것도 있어서 어떻게 하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언니가 제안해 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전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한 번에 수락을 했어요.

 

오승희 : 그런 지점들이 되게 제일 부럽고 너무 울컥울컥 했던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시기에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너무 좋아해서 이주할 마음을 먹었고, 영화 서점까지 오픈하게 됐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저걸 해냈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개인적으로 엄청 울컥하면서 봤어요.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 되게 일이 척척 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어요. 근데 일을 진행하다 보면 분명히 쉽지 않은 고비의 시간들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혹시 그런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권하정 : 진짜 뮤직비디오 만들 때 생각하면 단 한 가지라도 쉽게 됐던 적이 정말 없던 것 같아요. 저희가 촬영감독님을 만났는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세트장에 9명 제한이라는 걸 받고, 그때 뭔가 다 안 되는 날이었거든요. 그때 저희끼리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이유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아현이 빼고 저랑 은하랑 울었어요. 그렇게 울고 나서 이제 의상을 찾으러 갔는데 의상도 못 구하게 된 거예요. 그때 저희 세 명이 걸어오면서 한 마디도 안 했거든요. 근데 거기다가 비까지 막 쏟아지는 거예요. 비가 쏟아지는데 갑자기 의상 들고 있던 끈까지 떨어지는 거예요. 그게 꼭 저희 프로젝트 같은 거예요. 여태껏 쌓아왔던 모든 게 사라진 날이었고, 고비의 연속이라서 그날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오승희 : 분명히 힘든 과정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가 진행이 잘 된다고 느껴졌던 건 웃음과 서로에 대한 응원과 칭찬이 끊이지 않았던 감독님들 간의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평소의 모습인 것 같거든요.

 

권하정 : 저희는 만나면 헛소리를 진짜 많이 해요. (웃음) 어떻게 보면 비하인드 스토리인데요. 저희가 다큐를 만들 수 있게 된 게 저희끼리 평소에 놀 때도 항상 카메라를 켜놓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놀이처럼. 그리고 찍은 걸 보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데. 카메라를 켜놓을 때마다 웃긴 이야기를 좀 더 하게 된다고 해야 되나. 억지로 하는 건 아닌데 좀 더 재밌는 상황이 연출된 것 같아요. 다큐에 나온 장면들도 저희의 평소 모습이거든요. 매일 애들이 저 놀리고 반격하고 그런 게 늘 일어나는 일이라서, 저희의 진짜 모습으로 즐겁게 힘든 상황들을 잘 넘겼던 것 같아요.

 

김아현 : 극한으로 치달으면 사람이 미쳐버리잖아요. 힘든 상황에서도 저희끼리 장난치는 게 그런 극한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해준 것 같아요. 다큐에서 하정 언니가 자려고 하는데 저희가 불 끄고 장난치잖아요. 언니가 타격감이 너무 좋아서 저희가 맨날 그런 식으로 놀려요. 언니가 무기력하게 하지 말라고만 하지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그런 힘없는 언니를 보면 너무 웃기고, 그런 식의 장난으로 힘든 하루의 마지막을 마무리하지 않았나 싶어요.

 

오승희 : 저는 근데 그 장면이 진짜 좋았던 것 같아요. 도대체 뭘 하기 위해서 밤새 맨날 석고 모형을 만드실까라는 궁금증이 들면서 보고 있었는데, 하정 감독님이 평생 이렇게 살래라는 말을 하시잖아요. 그 말에서 너희들하고 이렇게 같이 일하면서 평생 살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다 같이 의식을 치르듯이 손을 잡는 것도 너무 인상 깊었어요.

 

권하정 : 근데 평생 살래라고 말한 게 진짜 진심이었어요. 그때 진짜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었거든요. 잠을 하루에 3시간도 못 잤거든요. 못 잔 상태인데도 석고 모형을 만드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 힘들지만 재밌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단순하게. 손 잡는 것도 아현이가 저한테 장난친 거였어요. 저것 좀 달라고 했더니 손을 잡자고? 하면서 손을 잡더라고요. 은하는 또 저런다 하면서도 손을 잡아준단 말이에요. 저희가 항상 그렇거든요. 이상하게 굴러가도 서로 3명이 손을 맞잡고 있어요.


오승희 : 이 영화가 시작된 게 최애 가수 이승윤 뮤지션의 음악이었잖아요. 최애와의 작업은 어떠셨어요?

 

권하정 : 덕질이랑 저희 영화랑 엮어서 질문들을 많이 하세요. 이승윤 씨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런 질문받으면 사실 살짝 동공지진이 와요. (웃음) 제가 처음에는 승윤 님의 영상을 엄청 찾아봤어요. 원래 덕질할 때 그렇게 하잖아요. 그러다가 작업을 하니까 친구가 됐다고 해야 되나? 이제 친구가 돼버리니까 덕질을 한다는 게 뭔가 좀 부끄러운 거예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요새도 노래는 계속해서 덕질하고 있는데, 영상으로는 승윤 님을 좀 못 보겠더라고요. 작업을 할 때도 좋아하는 연예인보다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줘야 되는 뮤지션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김아현 : 제가 항상 어디 가서 얘기를 하는 거지만, 저는 이승윤 씨한테 입덕을 안 해가지고. 이승윤이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노래는 좋아했지만 입덕은 아니어서요. 어떻게 말해야 되나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봤는데요. 일단은 저희와 함께 해주겠다고 동의해 주셔서 너무 고맙고, 다음은 저희를 똑같은 창작의 동지로 생각해 주시고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줘서 고맙고, 지금도 여전히 늘 고마운 마음인 것 같아요.

 

오승희 :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굉장히 크셨던 것 같고, 정말로 일을 사랑하는 창작자의 이야기라고 느껴졌습니다. 관객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한데요. 영화 보시고 궁금하신 점이나 느낀 감정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관객 1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이승윤 팬클럽 총대 한 분의 지령을 받고 왔습니다. (웃음) 날씨도 궂은데 반드시 가서 객석을 채워야 한다고 해서 오늘 왔는데, 영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뮤직비디오가 거의 끝났을 때쯤이 이승윤 씨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랑 맞물리는 것 같아요. 그 해가 마지막이다 이런 얘기를 했었잖아요. 뮤직비디오 제작을 계기로 또 어떤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먼저 보셨던 분들이 이 영화가 여성 창작자의 연대기라고 말씀해 주셔서 기대하고 왔었는데 보고 나니까 기분이 엄청 좋아졌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감독님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요.

 

권하정 : 그때는 영화도 안 하고, 영상도 안 할 땐데. 뮤직비디오를 두 개 만들고 다큐멘터리도 만들면서 관객분들과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들이 저한테 되게 소중하더라고요. 그런 게 에너지가 돼서 영화를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영화를 이렇게 좋아했구나라는 생각을 좀 깨달아서 요즘 열심히 공모전에 문을 두드리고 있고요. 근데 이번에 떨어졌어요. 떨어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또 제 마음이 닿을 때까지 영화를 좀 더 해볼 것 같습니다.

 

김아현 : 저는 뮤직비디오 찍을 때부터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쭉 계속하고 있고요. 뮤직비디오를 찍고 나서는 다큐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어요. 다큐를 완성시키고 나서 정말 감사하게 영화제에 당선이 되고, 너무 감사하게 개봉까지 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렇게 관객분들까지 만날 수 있어서 진짜 되게 감사한 마음을 많이 갖고 있는데요. 일단 이 감사한 마음들을 어떻게 다 보답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가장 크게 들고요. 두 번째는 지금도 일을 하면서 관객분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를 좀 더 많이 생각하고 있거든요. 꿈을 꾸려면 현실이 필요하고, 현실만 살아가기에는 꿈이 목마를 것 같아요. 뭔가 창작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지금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지금 드는 고민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어떤 형태로든 그냥 좀 써보고 싶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마음입니다.

관객 2 : 영화를 보면 곳곳에 시련들이 엄청 많이 있잖아요. 자그마한 것부터 하나하나 전부 제대로 되는 게 없을 정도로.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반항심이라고 할지, 그냥 일단 해볼 수는 있잖아라는 마음이 어떻게 생기는지가 궁금해요. 불확실한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계속 반복하면서도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평생 이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저와는 너무 다른 거예요. 그럴 때 저 같았으면 진작에 포기해 버릴 것 같거든요. 무언가를 하는 것에 있어서 감히 평생이라는 말은 영영 꺼내지도 못할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권하정 : 저도 개인적인 일에 관해서는 거의 다 지는 선택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힘이 있으세요?라고 관객분들이 물어보면 선뜻 대답을 못 했어요. 그런 힘이 있는지 관객분들이 말해 주셔서 알게 된 것 같거든요. 항상 제가 너무 자조적이고 염세주의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안 살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친구들이 함께 했고, 제가 뱉어놓은 말들도 있었고, 어떻게 보면 과거에 제가 뱉은 말들을 수습하면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운 좋게도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이승윤 씨에게 결과물을 보여줘야 된다는 책임감, 그런 제 진심이 저를 움직이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아현 : 만약에 협업이 아니고 나 혼자 일한다고 생각해 봤을 때, 그때는 내가 주체가 돼서 엄청난 자의식 과잉이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상투적이고 쉬운 말이긴 한데 나 자신을 믿어야 된다는 말이 계속 떠오르네요. 뮤직비디오를 찍었을 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았고, 저희가 일상을 살아갈 때도 늘 항상 변수가 되게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나만의 방법을 알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심화 문제 같거든요. 갑자기 문득 떠오른 게 제가 <아이유 콘서트 : 더 골든 아워>를 봤거든요.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이 있어요. 거기에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라는 가사가 나오거든요. 그거 한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승희 : 삶에서 지는 순간들이 굉장히 많고, 사실 진다는 것도 제 기준이잖아요. 이걸 좀 이겨내고 계속 끌어올리는 어떤 에너지들을 일상에서 채워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응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서로서로 이끌어주는 동료나 친구들의 만남과 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또 질문 있으실까요?

 

관객 3 : 안녕하세요. 저는 독립영화를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로 처음 접하게 됐어요. 저는 자막이 있는 한국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는데, 이 영화에는 자막이 있더라고요. 혹시 의도가 있으신 건지 궁금하고요. 영화 마지막에 승윤님이 처음에 받았던 USB를 하정 감독님한테 다시 건넬 때 최초의 시작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하정님이 떨리는 마음으로 USB를 처음 승윤님한테 드렸을 때 그걸 다시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소중한 마음이거든요. 사실 모든 사람은 거의 듣보예요. 어떤 계기로 듣보를 탈출하고 자기의 일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서 저한테는 그게 조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어요.

 

권하정 : 자막의 의도는 아름다운 이유면 좋겠지만 사실은 좀 웃픈 이야기여서. (웃음) 저희가 뮤직비디오랑 에피소드랑 묶어서 30분 정도의 영화로 작은 시사회를 했거든요. 이승윤 씨도 불러서 같이 봤어요. 잘 봤다고 웃고 즐기고 진짜 수고했다고 했는데 사실 저희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부산말이 너무 심해 가지고. 이런 비하인드를 최근에도 상영회 끝나고 GV자리에서 했거든요. 그때 관객이 제 선배였는데, 서울 사람이거든요. 근데 그 선배도 자막이 있어야 본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자막을 넣게 됐습니다. USB는 이승윤 씨한테 돌려받을 거라고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왜냐하면 이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거든요. 영화를 다시 보니까 정말 말씀해 주신 것처럼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저 조그마한 USB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승희 : 이승윤 뮤지션이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했잖아요. 영화의 첫 장면을 그 우승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진짜 영화가 되려니까 우승까지 하는구나. 너무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싱어게인 일정이나 우승 소식이 영화 촬영 시기와 우연히 맞물리신 건지 아니면 그런 일정을 알고 계셨던 걸까요?

 

김아현 : 그때 하정 언니랑 집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어요. 당연히 1등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1등을 한 거예요. 그때 감정이 되게 복잡해서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 잘 모르겠어요. 축하하는 마음이 가장 첫 번째로 들었고, 두 번째는 얼굴도 알려지고 이름도 알려지니까 우리가 예전만큼은 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좀 되게 복합적이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언니랑 새벽에 한강에 나가서 달리기 하고 바람을 쐤어요. 아직까지 어떻게 이걸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고, 근데 그래도 잘 됐으니까 너무 축하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진행할 당시에는 승윤 씨가 싱어게인이라는 얘기를 안 했어요. 그냥 오디션에 참석한다고만 말하고 구체적으로 얘기를 안 해줬어요. 이승윤 씨 미담을 얘기하자면, 저희가 뮤직비디오를 찍는 날이 이틀 밖에 없었거든요. 이승윤 씨한테 사정을 얘기하고 그날 시간이 되냐고 물어봤는데 그날 녹화가 있는데 너희가 선약이었으니까 너희 걸 먼저 갈게 이러는 거예요.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니까 미뤄도 되나 보다 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날이 싱어게인 30호 가수를 뽑는 날이었던 거예요. 다행히도 방송 작가님들도 이해해주셔 가지고 이승윤 씨는 뮤직비디오 찍고 바로 올라가셨거든요.


오승희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무기력하고 그런 힘든 시기를 겪다가 이승윤이라는 뮤지션을 만나면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잖아요. 요즘에 영화와 별개로 마음에 끌리는 게 있으신지 궁금해요. 감독님들에게 영화는 일에 가깝잖아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활력이나 에너지를 다른 곳에서 채워야 되니까. 혹시 영화 외에 마음에 가는 게 있으실까요?


권하정 : 저는 요즘 하고 싶은 게 가을에 등산하는 거예요. 제가 가을을 너무 좋아해서. 10월 달에는 북한산을 가려고요. 많이 추워지기 전에.

 

김아현 : 저는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요. 저희 집에 진돗개가 있는데, 날씨가 선선해져서 같이 놀러 가려고 근교에 펜션을 잡아놨거든요.

 

오승희 : 사실 저도 어떻게 보면 정동진에 살고 있는 듣보인간 중에 하나인데, 이 영화를 통해서 신영극장에서 모더레이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돼서 덕업일치를 이룬 것 같아요. 저한테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하고 함께 시간 보내면서 어떠셨는지 소감이나 앞으로의 계획 들으면서 오늘 시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권하정 : 매번 이렇게 관객분들 만날 때마다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마음 덕에 제가 조금 더 영화를 계속할 수 있게 하고,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끝까지 자리 지켜주시고, 이야기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아현 : 추석 전에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의 고향인 강릉에 와서 너무 반갑고 기뻤고요. (웃음) 매번 감사한 마음인데, 말로만 계속 감사하다고 하면 전달이 안 되니까 어떻게든 보답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거의 마지막 GV인데요. 오늘을 공유하고 추억하고 싶어서 이승윤 씨 노래를 한 곡을 추천하고 싶어요. ‘꿈의 거처라는 곡인데요. 거기 가사 중에 아무래도 너여야만 해라는 게 있거든요. 아무래도 오늘 고향이자 친정이고, 신영에 방문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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