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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스 라운지> 리뷰 : 품을 내어 주는 곳이 학교라면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1. 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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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스 라운지>

품을 내어 주는 곳이 학교라면

 

 인간이 동물과 달리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를 넘어 문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고안해 냈을 교육 시스템은 인간 사회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인 진화는 있을지언정 일정 부분은 반드시 공공의 영역에 존재해 왔을 것이다.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기대하는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적 요구와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개인의 요구가 합의점을 찾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게다가 단순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사회적 도덕과 규범을 가르치는 일은 공동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학교가 할 수 있는 주요한 공적 기능 중 하나였다. 그에 더해, 소위 좋은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는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인간이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이런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현재 우리의 교육 현실은 공교육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중학교까지 전 국민 의무교육이 적용되고 대부분은 고등학교까지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명쾌한 답을 하기 어렵다. 절대다수의 아이들이 사설 학원에서 정규 교과 과정보다 빠른 속도의 선행수업을 하고 있고, 입시 위주의 학습 행태는 오로지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두기에 학원이 교육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점점 심화되는 공교육의 공동화 현상을 방치하며 더 이상 배우고 가르칠 것이 없어진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학교에서 하다못해 인성 교육이라도 하겠다는 것은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

 

 카를라(레오니 베네슈)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원칙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좀 더 따뜻하고 민주적으로 가르치려 노력한다. 그의 이러한 교육 철학은 수업시간에 잘 드러나는데,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토론하며 차근차근 정답을 향해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답이 추측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도록 한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섣불리 확증 편향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바로 그의 교육과 삶을 대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신념과 열의는 바람직한 교사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굳은 신념이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면 독선으로 빠질 위험 또한 있다. 우려대로 카를라의 신념과 원칙이 그가 반감을 갖던 교장의 엄격한 원칙에 따른 업무 처리의 폐단을 답습하는 아이러니한 일로 이어지자, 이것은 학교 구성원들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사실, 사건의 발단은 카를라가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깨뜨리고 교내 절도범을 잡으려 벌인 일에 있다.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섣부른 판단과 즉흥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사건이 촉발되었고 그 대응에 있어서도 그답지 않은 판단을 연속적으로 함으로써, 애초의 선의는 간데없고 그저 학교 구성원 전체를 거친 폭풍 속으로 몰고 가는 트러블 메이커로 전락하고 만다. 급기야 서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자신을 지키는 것에만 급급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 사이에는 원심력만이 작용하며 점점 더 분열하고 멀어져 가기만 한다. 상대를 믿고 사랑하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져 버린 자리에는 불신과 증오만이 번지고,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쯤에서 영화는 갈등 해결의 실마리 하나를 제시한다. 카를라가 아이들에게 내놓은 문제에 오스카(레오나르도 슈테트니쉬)가 제안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작은 상자 위에 여러 사람이 함께 올라서기 위해서는 마주 보는 사람끼리 손을 마주 잡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 된다. 그러나 그 맞잡은 손은 어느 한쪽만 마음이 변해도 쉽게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마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졌던 카를라와 오스카의 관계가 한순간에 어긋난 것처럼, 한번 놓아버린 손은 다시 잡는 일조차 어려워지기도 한다.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관계와 학교, 그리고 사회적 배경까지 다양한 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교육과 학교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영화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현재 학교가 놓인 다층적인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보여준다. 심각한 물리적 충돌이 없음에도 관객은 그 팽팽한 긴장감에 압도된다. 좀처럼 답을 구할 수 없는 그 난해함에그리고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학교의 서글픈 현실의 답답함에 신음하게도 된다. 게다가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은 독일의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학교에도, 더 나아가 어떤 사회에도 적용 가능한 많은 고민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최근 학교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들을 목도한 우리로서는 더욱 간과할 수 없는 내용들로 마음을 들끓게 한다. 배움의 장소인 학교에서 누군가 목숨을 잃는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사면초가에 놓인 카를라는 상담선생님에게 자신을 안아 달라고 요청한다. 그저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꼭 동의나 위로가 아니라도 힘들 땐 그저 말없이 안길 품을 내어 주는 곳,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까지 학교 구성원 모두 배움 이전에 서로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학교가 된다면 어떨까. 그곳에서 구성원들은 그 어떤 지식과 기술 보다도 든든한 뒷배를 얻고 그 아름다운 공간에서 값진 지혜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지금은 공허한 소리로만 들릴지라도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하며 차근차근 길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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