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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취미생활>│하명미 감독, 김혜나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9. 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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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취미생활> 씨네토크

23.09.10


초청 : 하명미 감독, 김혜나 배우

진행 :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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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 안녕하세요. 저는 경향신문의 최은지 기자라고 하고요. 문화부에서 영화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릉이 제 고향이에요. 어렸을 때 신영극장에 많이 왔던 기억이 있는데, 추억의 장소에서 이렇게 뜻깊은 행사 진행을 맡게 되어서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의 취미생활> 연출을 맡으신 하명미 감독님과 김혜나 배우님 모시고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사 말씀 부탁드릴게요.

 

김혜나 : 안녕하세요. <그녀의 취미생활>에서 혜정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나입니다. 반갑습니다.

 

하명미 : 안녕하세요. <그녀의 취미생활> 연출한 하명미라고 합니다. 신영극장에 처음 왔는데, 로비에 필름 영사기가 있으니까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느낄 수 있어서 너무 감동받았고, 저희 작품을 신영극장에서 상영하고 GV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최민지 : 영화 재밌게 잘 보셨죠? 저도 영화 보고 나서 궁금한 점이 되게 많았었거든요. 아마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그녀의 취미 생활>은 서미애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잖아요. 저는 원작도 읽어봤는데 되게 재밌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원작을 보고 나서 어떤 매력에 이끌려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하셨는지 좀 궁금해요.

하명미 : 우선은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서늘한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주인공 정인이가 가지고 있는 정서나 내면 같은 게 독백처럼 다가오는 지점들도 매력적이었고요. 그리고 제가 2013년도에 제주도로 이주한 경험이 있어요.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나 강원도나 지리산 같은 곳으로 이주한 경험이 있는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듣기도 하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의 핵심이 되는 게 폐쇄적인 공동체 마을의 집단 이기주의라는 부분이었고, 그런 게 작품 속에 함축적으로 되게 잘 담겨 있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경험과 이해를 토대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영화에서는 전 남편 광재가 등장을 하지만 소설에서는 전혀 없는 이야기거든요.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영화적으로 채워갈 수 있는 소설의 빈 공간이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영화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민지 : 마을의 폐쇄적인 분위기나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이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쉽지 않을 만큼 굉장히 살아있는 말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감독님이 실제로 경험한 것들을 기초로 해서 만드셨네요.

 

하명미 : , 그렇습니다.

 

김혜나 : 감독님도 이주를 하셨지만, 저도 주문진으로 이주한 지 5년 정도 되거든요. 근데 저나 감독님은 이주해서 살면서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이 더 많은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이 이주한 제주에서 찍는 것보다는 어딘지 모를 어떤 공간을 정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셨대요.

 

하명미 : 여기에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제가 제주에 있으니까 서미애 작가님도 제주를 배경으로 찍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근데 제주의 색이 너무 강하기도 하고, 제주에 국한된 얘기로 보이기보다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폐쇄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시면 아셨겠지만 사람들의 억양이 다 다르거든요. 어떤 사람은 서울말을 쓰고, 어떤 사람은 전라도나 경상도 말을 쓰고. 각 지역에서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박하마을이라는 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이라는 설정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주에서 되게 좋은 기억이 많았어도 사실 사는 게 어디나 똑같잖아요. 맨날 햇살 같은 일만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빛과 그림자 중에서도 제가 경험했거나 목도했던 그림자들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최민지 : 김혜나 배우님께서 이주해서 살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영화를 보니까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었는데요. 이주 5년 차인 배우님 입장에서 혜정 역할 제의가 들어왔을 때 비슷한 조건 때문에 좀 더 재미있으셨을 것 같거든요. 어떠셨어요?


김혜나 : 일단 GV를 다닐 때마다 항상 하는 얘기가 혜정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처음 만났다는 거예요. 항상 불쌍하고, 억울하고, 누군가에게 당하는 캐릭터만 20년간 연기를 했었는데, 혜정이라는 캐릭터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역할이었어요.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캐릭터를 만났다는 것 때문에 위로가 됐어요. 사실 시골로 가는 설정이 저한테는 큰 일은 아니었어요. 그것보다는 캐릭터가 진짜 매력적이어서 무섭기도 하면서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최민지 : 캐릭터 얘기가 나와서 여쭤보는데, 혜정의 전사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잖아요. 정황상 추측할 뿐인데, 배우 입장에서는 혜정의 전사를 상상하셨을 것 같거든요. 배우님은 혜정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고 구체적으로 상상하셨어요?

 

김혜나 : 언젠가는 공개하겠지만 아직까지는 비밀이에요. (웃음) 영화 속에서 제가 남편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 혜정이에 대한 유일한 정보가 들어 있어요. 그때 감독님한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연기를 할지 여쭤봤더니 뭔가 슬픈 건 아닌데, 그때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맺히는 정도까지도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아닐까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감독님 말씀과 제가 상상하는 걸 덧붙여서 연기를 했어요. 과거의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사진처럼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몇 장의 남편 표정이 담긴 사진을 제 머릿속에 띄우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별로인 장면들, 진짜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어떤 장면이 담긴 사진을 떠올렸어요.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글로라도 써서 언젠가 공개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명미 : 제가 시나리오를 작업을 하면서 전사 같은 걸 써놓은 게 있어요. 구체적으로 써놓은 혜정의 전사를 입으로 말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전사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관객분들이 영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떠올렸으면 좋겠거든요. 진짜 영화가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저희 영화에서는 범죄의 직접적인 장면이나 폭력적인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만들어 낸 장면들이 많아요. 혜정의 전사도 어떻게 보면 혜정에게는 되게 견디기 힘든 어떤 아픔과 폭력을 시인하는 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원작에서도 혜정의 전사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설에서는 혜정이 무도덕한 사람으로 나와요. 도덕의 개념이 없고, 약간 사이코패스 같죠. 우리가 장르 소설을 읽었을 때 빌런이라고 느껴지는 캐릭터인데, 저는 영화를 만들 때 혜정에게 좀 더 인간성을 부여하고 싶었어요. 무도덕한 사람이 아니고, 부도덕한 사람. 그러니까 자기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걸 알아요. 이게 범죄인 것도 알고, 잘못됐다는 것도 아는데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 점이 원작의 혜정 캐릭터와는 차이가 있어요.


최민지 : 사실 혜정에게 전사라고 하면 대부분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일 거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전사를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관객 입장에서도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거든요. 여러모로 배려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폭력을 전시하지 않는 것. 요즘 폭력을 위한 폭력 영화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런 가운데 눈에 띄는 미덕을 갖춘 영화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혜나 : 진짜로 요즘에 친구들이랑 이런 얘기하잖아요.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볼 때 힘든 영화를 꼭 봐야 되냐고. 감독님과 처음 미팅했을 때도 보기 힘들거나 어두운 장면은 절대 안 찍고, 정말 아름답게 찍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상상이 안 됐어요. 나중에 감독님 설명을 듣고 나니까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픔을 겪었지만 그걸 극복해 나가는 여자들에 초점이 맞춰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었어요.

 

하명미 : 제가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온전히 나의 상상으로만 떠올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것이 되게 크게 느껴지는데, 원작 소설을 영상화할 때 어떤 장면들을 아무리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만들려고 해도 그걸 읽었을 때 고유하고 주관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제가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구체적으로 폭력적인 장면을 전시하거나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정인이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이나 재순이를 통해서 혜정이 겪었을 법한 일들, 저수지에서의 밤의 일들. 이런 장면들이 끝남과 동시에 관객들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계속 생각하기를 바랐고, 제가 장면을 구체화는 하는 것보다 훨씬 밀도가 높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최민지 : 그럼에도 관객한테 카타르시스를 줘야 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폭력이 재현되는 유일한 장면이자 라스트 씬인 광재와의 촬영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쾌감을 줘야겠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하명미 : 그 장면은 원작에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창작자로서는 되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었고, 그 장면 안에서는 정인이가 느낄 쾌감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사실 쾌감이라는 표현을 잘 쓰고 싶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사적 복수를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주기보다는 정인이가 늘 두려워하고 자기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존재를 죽임으로써 결국 죽이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거든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죽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광재가 죽어서 너무 기쁘고 쾌감을 느끼고 어딘가를 떠나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복잡미묘하고 불행한 것 같지만 그래도 나아가려고 하는 그런 애매모호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장르적인 쾌감을 줘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시원한 느낌을 받아야 되는데 저희 영화가 그런 지점을 긁어주지 않아서 흥행 측면에서 그랬나? (웃음) 싶지만. 그래도 어쨌든 작은 영화이고 다른 큰 영화들이 갖고 있는 산수 같은 쾌감은 나오지 않지만, 복합적인 정서를 줄 수 있는 장면을 통해 조금 다른 질감의 쾌감을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최민지 : 저는 인상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혜정과 정인의 집의 대치였어요. 혜정의 집은 약간 높은 곳에 있고 정인의 집과 가깝지만 높낮이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혜정은 시선을 내려다보게 되고 정인은 혜정을 올려다보게 되잖아요. 공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하명미 : 처음에 영화를 만들 때부터 혜정과 정인의 집은 지금처럼 디자인을 했었어요. 두 집 사이에 샛길이 있고, 그 샛길을 통해 둘의 관계성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콘셉트였어요. 세트로 집을 짓고 싶었지만, 예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요. 정인의 집은 파주에서 찍었고, 혜정의 집은 양평에서 찍었어요. 전혀 다른 지역에서 찍다 보니, 두 집을 연결해 주는 샛길의 수종들은 CG로 그려서 완성했어요. 정인에게 혜정은 동경의 대상이면서, 마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어떤 인물이고, 혜정은 정인을 보면 자신의 과거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집의 높낮이에 차이를 뒀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두 인물의 시선이 수평을 이루고 같이 손을 맞잡게 되기까지 그런 관계의 변화가 느껴질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뒷마당의 샛길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온전히 두 여성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공간이어서 너무 잘 찍고 싶었어요. 파주 집 근처에 동그란 숲 같은 느낌을 만들었어요. 사실은 그 공간에 길이 따로 없었어요. 근데 혜나 배우님이 실제로 길이 있는 것처럼 내려오는 연기를 너무 잘해주셨어요. 다른 지역에서 찍은 걸 합성했다고 말하면 놀라시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해낸 것 같아서 너무 뿌듯해요. 혜나 배우님이 발목도 꺾이고 되게 어려운 위치인데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주셔서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아요.

 

최민지 : 인터뷰에서 정이서 배우가 선배인 혜나 배우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극 중 혜정과 정인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이서 배우님과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김혜나 : 이서 배우는 실제로 보시면 깜짝 놀랄 만큼 되게 아담해요. 보호 본능을 일으키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도 보호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역할 자체도 혜정이가 정인이를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건 아니지만 보호해주고 싶고 여기서 끌어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실제로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만약에 부녀회장님이나 다른 역할들이었으면 그런 마음이 안 들었을 것 같아요.

 

하명미 : 김혜나 배우는 역사가 되게 오래된 배우고 저는 큰 배우라고 보고 있어요. 현장에서 보면 혜나 배우는 어떤 변수에도 현장의 상황에 맞춰서 유기적으로 연기를 하고, 엄청 노련해요. 그런 모습 때문에 이서 배우도 혜나 배우를 더 따랐던 것 같아요. 연출자 입장에서 봤을 때. 그리고 웬만하면 영화 순서대로 촬영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이서 배우한테 혜나 배우보고 언니라고 불러보라고 해도 어색해하고 촬영 끝나면 다시 선배님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엔딩 찍을 때는 손을 완전히 맞잡으면서 둘의 관계가 점점 짙어지듯이 현장에서도 실제로 두 배우가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최민지 : 영화를 보면 두 배우가 시간이 갈수록 되게 끈끈해지는데요. 실제 관계가 반영이 돼서 더 그렇게 느껴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다 사랑하는 장면들이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두 분 각각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혜나 : 저는 매번 바뀌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 안 바뀌는 장면 하나는 있어요. 맨 첫 장면에서 제가 집에 2층에 올라가서 밖을 보고 정인을 처음 만나서 숨는 장면 있잖아요. 제가 너무 예쁘게 나와가지고. 저도 보면서 깜짝 놀라요. (웃음) 그래서 그 장면은 무조건 좋아하고요. 매번 바뀌는데 오늘 좋아하는 장면은 혜정이가 호수에서 살인을 한 다음 날 아침에 가운 입고 발코니에 나가서 정인이한테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는 장면이에요. 전날에 엄청난 사건이 있었지만 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안부를 묻는데 그때 정인이 표정은 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걱정해 주는 그런 표정이거든요. 하지만 혜정이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하는 그 장면이 좋더라고요.

 

하명미 : 저는 좋아하는 장면이 되게 많아요. 제가 연출자라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GV때마다 좋아하는 장면을 다르게 얘기하고 있어요. 혜정이가 재순을 살해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 얘기를 나누고 정인이가 집으로 가려고 샛길 밑으로 내려와서 혜정이를 돌아보거든요. 혜정이도 정인이를 내려다보고 있고 정인이가 손을 흔들면 혜정이도 손을 흔들 때 음악이 나와요. 음악 작업을 저희가 6개월 정도 했는데, 멜로디를 만드는 것에 심혈을 많이 기울였어요. 손을 흔들 때 멜로디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 장면 볼 때마다 좋아요. 원작에서도 혜정이가 정인이를 보면서 나랑 좀 비슷한 부류구나라고 알아채고 침묵의 눈빛으로 보는 순간이 있고, 정인이도 혜정이를 보면서 언니도 역시 그런 건가? 하면서 보거든요. 우리가 앞으로 계약을 맺어서 서로 손을 맞잡게 될 거라는 암묵적인 약속을 눈빛으로 교환하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영화로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그 장면 볼 때마다 정인이가 손을 흔들기 전까지 되게 설레면서 기다려져요. 그러다가 손을 흔들고 음악이 나오면 그때부터 되게 즐기면서 영화를 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그 장면이 되게 마음에 든다고 이 자리에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최민지 : 저는 좀 이상한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꼽자면 하얀 속옷 같은 드레스를 입고 총을 쏘는 그 장면이 저는 제일 재밌고 좋더라고요. 흰 원피스를 입히신 것도 분명히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많은 관객분들은 그 장면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미드소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잖아요. 흰 드레스를 입히고 총을 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하명미 : 두 여성이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한 어떤 정당성 같은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캐릭터들을 대변하는 색인 거예요. 우리는 되게 순수한 사람들이고, 잘못이 없고,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쁜 사람을 벌하는 거야. 약간 제사장이나 성스러운 의식 같은 느낌을 혜정이가 제시한 거죠.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정인이가 나쁜 일을 겪기 이전과 혜정의 어린 시절의 소녀들이 지금은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 같은 것들이 떠올랐으면 했어요. 그리고 영화적으로 그런 이미지가 되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었어요. 그 장면 찍을 때 둘 다 총을 멋있게 안 들었으면 좋겠더라고요. 되게 무거워 보였으면 좋겠고, 감당이 안 됐으면 좋겠고, 어설프게 쐈는데 빗맞고, 빗나가고 빗나가도 보니까 우연히 맞은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장면을 연출하게 됐습니다.


최민지 : 혜정이 최소한 3명의 남자를 죽였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요. 그런 역할이 들어올 때 배우 입장에서는 어떠셨어요?

김혜나 : 제가 예전에 어떤 수사관 분들이었나 무슨 인터뷰 같은 걸 읽었어요. 연쇄살인범들은 길 가다가 만나더라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대요. 그 사람들은 선한 얼굴이 박제가 되어있는 거죠.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도 길 가다가 혹시 무서운 사람을 만나도 모르고 지나간 거잖아요. 마을 사람들이 혜정이에 대해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짐작으로 미루어 보거나 소문만 무성하잖아요. 사람들이 혜정이에 대해서 잘 몰랐으면 좋겠더라고요. 소문만 무성한 여자로 보여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최민지 :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것 같은데요. 이제 관객분들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1 : 실제로 혜나 배우님이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시는 걸로 아는데, 엔딩크레딧에 보니까 수중촬영팀에 배우님 이름이 있더라고요. 영화의 수중촬영이 호수씬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 장면을 직접 촬영하신 건지 아니면 호수씬 외에 다른 장면에서 수중 촬영을 했는데 편집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혜나 : 감독님이 재순이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걸 찍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근데 그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서 포기하려고 했었어요. 마침 저희 동네에 수중 촬영 감독님이 현장에 놀러 오셔서 제가 부탁을 드렸어요. 흔쾌히 촬영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수중 촬영 감독 섭외는 됐는데 이후에 감독님이 엄청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물속에서 찍으려면 여러 장치들도 필요하고, 저수지에서 찍으면 얼굴이 잘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강원도 바닷가까지 내려가서 찍기로 했어요. 가서 촬영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현장에 가니까 정남 배우님이 물을 무서워한다는 정보를 들어서 제가 대역을 맡아서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게 도와드렸어요.

 

하명미 : 강원도 바닷가에서 촬영을 마치고, 스킨스쿠버 연습하는 수영장을 빌려서 촬영을 했어요. 그 한 장면을 꼭 찍어야 된다고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수영장으로 다 모이신 거예요. 저희 팀은 정리를 하고 수영장에 가니까 혜나 배우가 옷을 벌써 갈아입고 물 안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이미 현장세팅이 다 돼서 저는 찍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그날 현장이 저한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정남 배우 프로필에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어서 당연히 수중촬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현장에 가니까 정남 배우가 물을 무서워한다는 정보를 들었고, 저한테 잘못된 페이퍼가 왔던 거였죠. 리허설 할 때 혜나 배우가 물속에 들어가 죽어 있는 연기를 계속했고, 여러모로 많이 도와줘서 크레딧에 안 넣을 수 없었어요. 크레딧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혜나 배우가 원치 않으면 뺄게요라고 물었더니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김혜나 : 밥도 못 먹고 세팅하고 막 이랬거든요. 그래서 꼭 크레딧에 들어가야 된다고 했어요. (웃음)

 

하명미 : 지금도 그 장면은 정말 저한테 너무 귀한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관객 2 : 일단 영화 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이 여러 개 있는데요. 첫 번째는 총 두 자루 보여주실 때 둘 중에 하나는 진짜라고 하는데 그 장면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두 번째는 혜정이 도둑질을 하잖아요. 가락지도 훔치고 복숭아도 훔치는 데 그 장면에 대한 의미도 궁금했고요. 세 번째는 정인이가 집에서 25천이 발견되기 전까지 굉장히 가난한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집안을 보면 굉장히 너무 안락하고 예쁜 거예요. 정인의 집의 공간 디자인을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건지도 궁금했고요. 또 영화를 보면서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영화의 흐름으로 봤을 때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영화에 비해서 정인이가 너무 청순하고 예쁜 거예요. 입는 옷도 그렇고. 김복남에 비해서 비루하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런 것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조금 아름답게 비치고 소녀 같은 이미지를 계속 염두에 두시고 연출하고 캐스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궁금한 것은 폭력으로 결국은 복수를 하는 거잖아요.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 인물이 폭력으로 복수하는 것에 대해 옹호한다는 시각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하명미 : 우선 총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혜정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진짜 존재할까? 가짜일까? 아니면 이게 정인이가 마을 사람들을 살인한 게 진짜일까? 가짜일까? 꿈일까? 현실일까? 이런 식의 의문을 갖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총도 진짜일까? 가짜일까? 둘 중에 하나는 진짜라고 했을 때 정인이처럼 정말 진짜라고 생각할까? 근데 정인이는 그 당시부터는 아닐 거야. 가짜일 거야. 그런 식으로 헷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총이어서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그럼 뭐야 이게 다 진짜인 거였어? 이런 식으로 어떤 경계에 놓인 것들을 모호하려고 만들려고 하는 설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혜정이 물건을 훔치는 설정을 줬을 때 혜나 배우도 현장에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몇 번을 물어보곤 했어요. 그냥 혜정이는 자기가 갖고 싶은 거를 가져야 되는 사람인 거예요. 왜냐면 어렸을 때 너무 가난했고, 자기가 갖고 싶은 걸 제대로 가지지 못했던 사람인 거죠. 근데 혜정이 갖고 싶은 물건이 금은보화나 명품 이런 게 아니라 남들한테는 쓰레기 같은 물건이어도 손에 넣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결핍 같은 게 해소되는 거죠.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혜정 안에 가득 차 있는 어떤 분노 같은 것들이 해소되는 거예요. 할머니 가락지도 사실 금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냥 껴보고 훔치고. 복숭아? 향기롭다 하면서 집어넣고. 그 장면에서의 빌드업은 혜정이 좀 위험해 보이고 부도덕한 사람인데, 그렇다면 정인이에게도 위험한 사람일까?라는 어떤 긴장감 같은 걸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정인이 집이 사실 혜정이 집에 비하면 굉장히 좀 남루한 집인데 거기에 아기자기함을 주려고 했던 거는 사실 정인이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랑 있던 공간이잖아요. 저희가 다른 GV에서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광재가 왜 정인이 집에서 안 죽고 혜정의 집에서 죽는 거냐? 저는 그 공간은 온전히 할머니와 정인이의 공간이었으면 했고, 그래서 또 첫 장면에서 보면 막 심신이 부서져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내가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나한테 돌아갈 유일한 어떤 작은 온기를 주는 안식처인 거예요. 그래서 외부의 창밖의 세계는 되게 끔찍하지만 집 안만큼은 정인이가 되게 좀 안온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뭐라도 붙잡고 살아야 되잖아요. 그런 느낌들을 주려고 좀 예쁘게 인테리어를 한 게 있었어요. 근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저희 영화에서 대비되는 이미지 중에 하나인 거예요. 창밖에서는 창문을 두드리는 외부의 두려운 존재들이 있고,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지키려고 할머니가 쓰시던 큰 가위를 쥐고 잘 수밖에 없는 거죠.

 네 번째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얘기인가요? 사실 저는 상상을 못 했어요. 서미애 작가님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거였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저희가 처음에 이 작품을 공개를 했을 때 해외에서 리뷰가 많이 올라왔었어요. 해외에서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에게 굉장히 큰 작품으로 기억을 하고 있고, 그 작품과 설정이 비슷하나 톤 앤 매너가 달라서 그 작품을 본 사람들은 <그녀의 취미생활>을 흥미롭게 볼 것이다라는 해외 리뷰 기사가 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영어 제목을 몰라서 무슨 영화야?라고 하면서 검색해 봤거든요. 김복남의 순한 맛 버전이라는 얘기들을 들었어요. 폐쇄된 공동체 안에 여성이 나오는 설정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그녀의 취미생활>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엮어서 비교해 주면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명작이잖아요. 누군가 비교해서 봐주면 환영하는 마음으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적복수는 정당화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요즘 트렌드처럼 <더 글로리>도 그렇고 사적복수 서사가 TV에 많이 나오잖아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사적 복수에 열광하는가?를 보면은 실제로 현실세계에서는 제도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정말로 만족할 만한 어떤 결과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하고 열패감 같은 것에 쌓여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픽션으로나마 사적 복수를 행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시원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피해자에 입장에 대입해서 위로받고 공감받고, 또 분노를 어느 정도 긁어주는 식의 재미 정도로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희 영화 보면 사실 슬픈 복수예요. 왜냐면 이게 꿈같잖아요. 현실을 바탕으로 복수가 이루어지는 것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복수라는 반증거든요. 저는 뭐 사적 복수를 옹호한다는 것보다는 두 인물이 연대하고 공감하면서 허구의 세계를 통해 작은 복수를 이룬 것에 대한 쾌감을 느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민지 : 벌써 시간이 거의 다 되었어요.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는데요. 아쉽지만 마지막 말씀 들으면서 오늘 이 자리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하명미 : 저희 영화가 극장에서 계속 절찬 상영 중인데요. 워낙 작은 영화이기도 하고 홍보비가 거의 없어서 노출이 많이 안되고 있지만 GV를 열심히 다니면서 관객분들에게 기억이 남을 만한 작품으로 저희 영화의 매력을 계속 어필하고 있거든요. 14일부터는 VOD서비스를 통해서 시청하실 수도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남도영화제 런던 동아시아 영화제를 비롯해서 다른 영화제에서 저희 영화가 경쟁 섹션에 참여하거나 초청된 상태예요. 극장 상영은 이제 곧 마무리가 되겠지만 VOD 서비스를 통해서 관객분들이 많이 보시고 좋은 리뷰 써주시면 다시 극장에서 상영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혜나 : 제가 강원도로 이주한 지 5년째인데요. 신영극장에서 GV를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근데 5년이 다 돼서 신영에서 주연을 한 작품으로 이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 만나니까 너무 행복하고 감동적이에요. 저는 이 장면을 사진처럼 기억 속에 담아놓고 언젠가 꺼내서 들춰보겠습니다. 너무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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