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흠(欠)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넘어 다다른 세상에는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게 치달아야만 했을까? 영화가 흘러간 자리에 남겨진 상흔이 상당히 깊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아이의 고백으로부터 발화된 사건은 진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어른들에 의해 마땅히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채 무참히도 뒤엉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매듭을 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사건의 중심에 선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폐해질 따름이다. 한 아이의 거짓말로부터 야기된 어긋남은 아이가 거짓으로 감춘 진실을 알아내었더라면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하였다면 영화가 담아낸 사건의 경과처럼 허물어지고 망가지는 모습만 보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앗아간 편협한 시선에 사로잡힌 이들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비극에 숨이 턱 막힌 듯한 갑갑함을 경험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거짓말로 자신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나날에는 처연함이 진하게 퍼져나간다. <괴물>은 한밤중의 방화 사건으로부터 이야기의 시작을 고한다. 화마(火魔)가 덮친 건물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고 일렁이는 화염 속에서 무수한 잔해들이 위태로이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화재 현장의 주변은 대피하는 사람들과 불길을 잡으려는 소방대원들 그리고 불구경에 심취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정신이 사납다. 어지러운 그날 밤의 화재처럼 일그러져 가는 세 사람의 전말을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시선으로 그려낸다.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들(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 뭉텅이, 흙탕물이 담긴 보온병, 한 짝이 사라진 운동화 등)로 인해 그녀의 삶에 불안이 엄습한다. 호리(나가야마 에이타)는 아이들이 퍼트린 소문(유흥업소에 드나든다, 담임 학급 학생을 괴롭히고 있다 등)으로 인해 그동안 성실하게 쌓아온 일상이 하루아침에 붕괴되어 버린다. 그리고 미나토는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와의 우정을 쌓으며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만 동급생들의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일삼는 폭력과 주변 어른들의 시선에 자신의 마음을 애써 부정한다. 세 사람에게 들이닥친 불행은 흠(欠)을 허용하지 않는 어른들로 인해 발생하였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 차별과 관습은 한 치의 벗어남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정해져 있던 사회의 규범은 그 안의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있지만 꽤나 빈번히 우리의 삶을 옥죄기도 한다. 사오리가 의류의 때를 제거하는 세탁소에서 일을 하고, 호리의 취미가 문고의 오탈자를 발견하는 것이며, 교장 후시미(다나카 유코)가 끌개로 학교 복도에 들러붙는 오물을 제거하는 장면은 팍팍한 사회의 질서를 상징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기에 사회는 이상함이라는 약간의 티끌이라도 감지하면 이를 배격하고 사회의 원 바깥으로 밀어내려고 온갖 애를 쓴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행복 비슷한 것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어디서부터 기인할 걸까? 세상의 시선에서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게 ‘비정상’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그 굴레를 쓴 자가 그것을 벗을 때까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요리를 두고 ‘돼지의 뇌를 이식한’ 아이라고 말하는 그의 아버지 호시카와(나카무라 시도) 얼토당토않은 궤변은 세상의 기준에 세뇌당한 이들의 서글픈 학습효과인지도 모른다. 당사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학교에서 마련한 사죄 회견장에 호리를 내세우며 ‘당신이 학교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후시미의 서늘한 자태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하는 듯 보인다. 결국,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영화는 비정해진 (한때는 세상 물정 따위는 모르던 아이였을) 어른들의 행각을 통해 강렬하게 전달한다. 흰 선에서 벗어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사오리와 미나토 모자가 나누던 장난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사회가 정해놓은 가냘픈 기준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는 인간의 일생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풍이 휘몰아치던 밤, 미나토와 요리는 굴다리 너머에 방치된 녹슨 기차 한 량으로 향한다. 두 소년이 함께 추억을 쌓아가던 그 공간은 소년들을 태우고 어디로 떠났으려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가 그치고 날이 갠 맑은 하늘 아래 초록이 넘실대는 들판을 내달리는 소년들이 부디 그들을 괴물로 만든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었길 염원한다. 쇠창살로 가로막혀 있던 철로 너머는 더 이상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너머의 세계를 향해 확 트여 있다.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들을 누구도 막을 수 없음에 한 줌의 안도감이 따스한 불씨를 키운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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