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
평범한데 이상한, 궁금하면서 아슬아슬한
정말 불쾌한 영화다. 인물들은 마치 당연하듯이 상대에게 무례를 베풀고, 그 행동에 남의 불쾌함이 묻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인가.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조금도 어긋남을 느끼지 못하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구심은 이상하게 이 불쾌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들고, 종래에는 비범하다고까지 느껴진다.
주인공 기홍(박기홍)은 인테리어 업자다. 나이 든 현장 직원에게 쌍욕을 하고, 동료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싼 자재로 대충 공사를 마감해도 아무도 모른다며 되레 큰소리를 치는 그는 무서운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아영(이소정)에게 무례한 부탁을 하면서도 그에게 답장받기 위해 어떻게든 어필을 하고자 계속 고민한다. 집주인이라는 이유로 수시로 제 집을 들락거리는 정환(안주민)에게 한마디도 못 하는 모습도 보인다. 영화는 기홍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다른 영화와 비교했을 때 <괴인>의 에피소드는 평범한 축에 선다. 유명하지 않은 인테리어 업자 기홍에게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라면 자신의 차 지붕이 찌그러진 것이다. 공사 중인 학원 앞에 세워둔 차 위로 누군가 뛰어내린 사실을 알게 된 기홍은 범인을 찾자는 정환의 부추김에 사건을 파고든다.
그러나 영화는 한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그 안에서 인물들과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려내는 데 힘을 쏟는다. 인물들의 성격도 면면이 다 달라 이런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다가도 곧바로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큰 사건 없이 관객들을 132분이란 긴 러닝타임 동안 붙잡을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홍이란 캐릭터는 출근해서는 괴팍한 성격의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퇴근 후 모습에는 마트 계산대 순서를 임산부에게 선뜻 양보하고, 자신의 차를 찌그러트린 하나(이기쁨)의 사정을 알고는 수리비를 받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이정홍 감독은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이런 인물상을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영화가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제시하지 않을까 한다며 아무도 괴인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영화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영화가 전개될수록 앞서 언급한 대로 불쾌함에서 의구심을 느끼게 된다.
<괴인>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데 배우들도 큰 파이를 차지한다. 감독은 주인공 기홍 역을 본인의 친구에게 맡겼으며 정환 역의 배우는 요리사인 등 주요 인물들이 모두 비전문 배우들이다. 그럼에도 영화에 방해가 되긴커녕 정말 우리 곁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인 것만 같은 사실적인 요소가 더 살아난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고 큰 위기나 갈등이 없는 전형적인 영화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느낌을 내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인 듯 영화 아닌 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괴인>의 연출도 범상치 않다. 골목에 인물을 가두거나 직접적으로 틈새를 비추는 카메라는 세로로 확장된 구도에 그치지 않고 움직임을 통해 동요를 만든다. 한정적인 촬영현장에서 긴장감 있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골목과 건물 사이를 오묘하게 지나가며 건물이 컷 선처럼 이들의 움직임을 부분 부분 가리기도 한다. 때문에 관객들은 이들의 동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눈으로 좇게 만든다. 그 외에도 세를 든 작은 기홍의 방에서 바라보는 정환의 화려한 집의 구도라던가, 계속 인물의 시점에 카메라를 맞추다 보니 관객 역시 각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쉽다.
영화의 종래엔 기홍이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한다. 성인이 되어 센터에서 나오게 된 하나가 밤에 문을 닫은 피아노 학원에서 잠을 자다 급하게 도망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란 걸 알고 기홍은 그에게 수리비를 청구하지 않는다. 대신 밥이나 한 끼 사달라 말하고 정환의 권유로 정환의 집에서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는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것도 잠시, 밥을 먹고 떠난 하나가 새벽에 돌아와 죄송하지만 며칠만 재워줄 수는 없냐며 정환을 찾아오고, 그 바람에 잠에서 깬 정환은 아내 현정(전길)과 기홍이 함께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아침이 되고서야 돌아온 현정은 서서 기다리고 있던 정환에게 아무런 말 없이 못 본 척 지나치고, 제 침대에 누운 기홍은 비둘기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과연 둘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괴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궁금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야기가 끝맺어지지 않아서, 더욱 일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괴상하고도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가.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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