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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내고 존재하기> : 작고 아름다운 이들의 노래를 만나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1. 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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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텨내고 존재하기>

작고 아름다운 이들의 노래를 만나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듯 집요한 투정을 부리던 여름이 느닷없이 꼬리를 자르며 달아나고 찾아온 가을은,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급한지 이미 겨울 한 자락을 깔고 도망칠 궁리부터 하고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게다가 이미 덧없이 날아가버린 2023년의 열 달과 겨우 남은 한 달 십여 일에 상실감과 조바심이 마음을 더욱 쓸쓸하고 쫓기게 만드는 이 시기에 보기 딱 좋은 영화다. 오랜 세월 갖은 풍파 속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광주극장의 낡았지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여러 풍모를 둘러보자. 그리고 그곳에 음악을 채우는마치 극장과도 닮은 모습으로 올곧게 자신의 음악을 지켜 나가는 음악가들의 노래와 연주를 들어 보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와 힘을 주는 영화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래도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조금 더 풍성하게 즐길 거리를 만들 것이라 기대하며 리뷰어의 사명감이 담긴 사족을 달아본다.

 

 코로나19가 세상을 휩쓸었을 때, 우리의 일상은 마치 모두 멈춰 선 듯했다. 어디서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잠식된 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문 밖을 나서는 일 자체가 두려움이 되어버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일시 정지 된 것과 같은 세상에서 모든 문화예술 행위도 일순간에 얼어붙어버렸다. 모든 영화관은 텅 빈 객석 위로 영사기만 공허하게 돌았고, 음악가들은 연주회가 없어 홀로 연습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바로 그 힘겨운 시기,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며 존재하는 것 자체가 크나 큰 도전인 극장에 그만큼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음악인들이 모였다. 1935년에 문을 연 광주극장의 지난 시간이 고풍스럽게 배어 있는 복도, 매표소, 계단, 상영관, 영사실 등에서 인디 뮤지션들이 버티고, 존재하는 자신들의 얘기와 음악을 들려준다. 극장이 음악을, 다시 음악이 극장을 위로하고 그 모든 것이 출연자와 관객을 위로한다.

 

 뮤지션 최고은이 2019년부터 진행한 커밍홈 프로젝트의 기록으로 광주극장에 안 와본 사람들도 마치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는 그의 말에 따라 감독 권철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았다. 영화관에 들어와서 표를 사고, 대기를 하고 극장에 들어선다. 이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순서대로 입장문, 매표소, 대기실 등의 흐름으로 연출하였다. 뮤지션의 장소나 순서는 음악의 분위기나 주제에 따라 배열하였다. 시작 주제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김일두, 김사월을 앞에 배치하고, 그다음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곽푸른하늘, 고상지의 음악, 마지막은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정우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노래로 이어진다. 영화는 1993년부터 광주극장의 간판을 그려온 박태규 화백이 최고은과 주소영의 연주와 노래 속에 작업을 하고 그 간판이 걸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감독의 의도 대로 관객은 카메라를 따라 영화관의 곳곳을 돌아보며 삶의 위로와 힘이 되는 노래와 음악을 듣고, 덤으로 평온한 마음을 얻게 된다.

 

 스마트기기의 확산과 더불어 각종 SNS를 통해 개인의 취향이나 문화가 점점 획일화되고, 그 획일화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것이 아닌 것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존재하기 어려워진 지금,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 극장, 그것도 옛날 방식 그대로 포스터를 그림으로 그려 올리는 그 멋들어진 방식을 지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신영극장 역시 올 초 강릉시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궁지에 몰렸다가 많은 시민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원주의 아카데미 극장은 철거의 아픔을 겪고 있다. 많은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이 버티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큰 숙제인 상황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돈 되고 팬이 몰리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도 생존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다. 하긴, 현대를 사는 어느 사람이든 생존을 위해 버둥거리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영화 한 편 보며 살아남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김일두의 말처럼 생각을 적게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나 나름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리라.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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