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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리뷰 : 고마워, 내 삶에 와 줘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1. 1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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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고마워, 내 삶에 와 줘서

 

 몽환적(夢幻的).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극장에 들어간 순간부터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영화 <너와 나>가 만든 실재와 가상의 세계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환각에 빠진 느낌이다. 관객을 현혹시키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포스터에 새겨진 글씨체와 비슷하다. (필자만의 경험일 수 있으나) 포스터를 언뜻 보면 일순 너와 나인지 나와 너인지 헷갈린다. 이러한 착각은 영화 안에 감도는 내가 너에게향하는 마음과 네가 나에게향하는 마음 사이에 교차하는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의 작용과 닮아있다.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마음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과정에서 쌓여가는 오해와 상처들에 답답하고 안타까움이 피어난다. 어느새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세미와 하은의 진심이 부디 서로에게 오롯이 전달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이윽고 현실일까 아닐까에 대한 호기심은 어느덧 꿈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라난다. 돌아오지 않을 그날, 그 순간을 되돌리고 싶은 어떤 이의 염원인지 돌아올 수 없는 누군가를 추억하는 또 다른 이의 상념인지 감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짙게 드리워진 그리움의 향취에 마음이 어지럽다.

 

 영화는 세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세미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하은이라는 존재가 있다. 친구라는 테두리가 포장하기에는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지만 연인이라 칭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그런 특별한 사람 말이다. 그렇기에 세미는 하은과 많은 시간을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 채우고 싶은지도 모른다. 세미는 다리를 다친 하은이 현실적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수학여행 하루 전 날에) 하은에게 함께 수학여행을 가자고 졸라댄다. 세미의 칭얼거림은 충분히 철없는 소녀의 이기심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미의 질척거리는 애원이 간절한 바람으로만 느껴지기만 한다. 필자는 거울에 비친세미의 모습으로부터 위와 같은 감각의 이유를 찾으려 한다. 영화의 도입부, 꿈에서 깨어난 눈물 젖은 세미의 얼굴을 비춘 카메라는 뒤이어 교실 뒤편에 걸린 거울에 비친 앉아있는 세미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숲 속 공원 정자에서의 장면에서도 하은의 캠코더로 하은과 하은의 주변을 촬영하는 세미를 비추던 카메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는 세미의 얼굴에 초점을 옮겨간다. 거울 앞에 반사된 세미의 형상은 마치 거울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미가 현존하는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예감은 세미가 보여주는 자기중심적인 행동과 사고를 받아들이려는 아량의 둘레를 넓혀준다.

 

 영화에서 하은을 찾아 나서는 세미의 걸음은 주로 화면을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한다. 일반적으로 장면을 통해 인식하는 시간과 서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것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설정한 의도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역행(逆行)하는 세미의 움직임은 그녀가 시간을 거슬러 하은을 찾아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노래방에서 열창하던 빅마마(이영현)<체념>의 가사처럼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세미의 서러움과 회한을 타파하기 위한 나아감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숱한 오해와 상처를 딛고 마주하게 된 세미와 하은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은이 입원한 병원 앞에서 나눈 짧은 입맞춤, 수학여행 잘 다녀오라는 인사, 헤어짐이 아쉬워 몇 번을 뒤돌아보는 두 사람. 하은의 마음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역행하던 세미의 걸음은 하은과 나란히 걸으며 순행(順行)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을. 영화를 보기 전부터 세미와 하은이 함께 보낸 마지막 하루가 9년 전 416일의 참사 전날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아스라이 사라지는 두 소녀의 시간에 너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세미와 하은의 하루에는 웃음과 벅찬 기쁨이 가득하다. 죽음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실이 아무리 무겁고 어두워도 두 소녀가 보낸 이 날의 싱그러움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은, 고마워. 내 삶에 와 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뮤지컬 <이프덴(IF THEN)>의 가사 중 한 구절이 계속 맴돌았다. 내 삶에 찾아와 준 누군가를 향한 감사의 마음. 이런 마음을 품게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삶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 기적의 순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면서도 진심을 전하는 데 서툴기만 하다. 어쩌면 영화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애도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누군가의 아쉬움을 대신하여 두 소녀의 하루를 상상한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이곳에 없는 존재들에게 가닿길 염원하는 마음을 정성을 담아 영화로 빚어낸 듯하여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진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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