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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 리뷰 : 그럼에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0. 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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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

그럼에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로드리게즈는 진정한 시인이나 예술가만이 지닌 신비한 힘으로 주변에 널린 흔하고 평범한 것, 속되고 비루한 것들을 탈바꿈시켰다. 그 많던 고통과 고뇌, 혼란과 아픔을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켰다.” 노동 현장에서 같이 일을 했던 동료의 이 말은 그의 음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식스토 디아즈 로드리게즈(Sixto Diaz Rodriguez)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존재 자체가 잘 느껴지지 않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누추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시와 음악으로 빚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부조리한 세상을 버텨내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했다. 비록 그 당시에는 폭넓은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로드리게즈의 노래가 담고 있는 불의와 부당함에 대한 항거와 사회참여적 메시지는 실로 우연한 기회에 세상 반대쪽의 인종 차별과 지독한 사회 통제로 억압받던 남아공 사람들의 의식에 자극을 주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외침에 해방구가 되었다. 그의 노래는 남아공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일깨우는 일성이 되어 자유와 변화를 외치는 곳마다 흘러넘쳤다. 그것이 단기간의 인기에 머물지 않고 오랜 시간 그들의 일상과 함께 하며 세대를 막론하고 가장 친숙한 노래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남아공 사회를 뒤흔들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여느 가수 보다도 더 유명했던 로드리게즈에 대한 궁금증은 그를 찾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숱한 어려움 속에도 결국 그의 현존과 마주하게 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할 듯했던 로드리게즈가 갑자기 현실로 걸어 나왔을 때, 그의 팬들은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이 감동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그가 노래를 통해 세상에 전했던 메시지와 온전히 부합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 저항적이고 부조리에 맞서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도 그는 결코 비관적이거나 증오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자신의 진심이 담긴 노래가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흥행 실패를 겪었다고 공연 중에 분신을 하거나 권총 자살을 했다는 충격적인 전설은 그저 허구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는 현실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그곳에 단단히 발을 딛고 고된 노동으로 꿋꿋이 생계를 이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향유 등을 통한 가족들의 정서적 풍요로움이 계급이라는 편견에 갇히지 않게 행동했다. 그에 더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실행에 옮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눈 쌓인 길을 홀로 걷는 영화 속 그 모습처럼 그는 할 수 없는 것,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하고 아쉬워하지 않으며 지금 내디딜 수 있는 한 걸음의 발자국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앨범이 실패해도, 디트로이트 시장 선거에 낙선을 해도 절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언제나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노래에 담은 가사와 같은 삶의 태도를 견지해 왔기에 스스로도 미처 몰랐던 낯선 곳에서 벌어진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갑자기 목도한 순간에도, 그는 들뜨거나 흥분하지 않고 그들과의 만남과 공연을 즐기는데 충실했다. 그리고 관객과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처럼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평온한 삶을 이어 나갔다. 노래의 가사가, 그리고 그의 실제 삶이 평범한 이웃으로 곁에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현자다운 풍모를 지닌 모습을 보자면 왠지 모를 위안과 안도의 마음이 함께 찾아온다.

 

 로드리게즈를 실제로 마주하는 남아공 관객들과 로드리게즈 본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동적이다. 수십 년을 가장 사랑해 온 노래의 주인공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고 그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기대감에 달뜬 관객들의 모습과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알아주는 관객을 마주 보고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보이는 로드리게즈. 양쪽 모두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일생 최대의 행복을 맛보는 순간이지만 묘한 긴장감도 흐르던 순간실제로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폭발하듯 열광한다. 로드리게즈의 실존 자체를 의심했을 관객, 그리고 그가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수십 년의 세월로 과연 노래를 제대로 불러낼 수 있을까 우려의 마음도 있었을 그들에게, 로드리게즈는 완벽한 실력으로 노래를 불러준다. 그 (남아공을 제외하면) ‘잊혀진’ 시간에도 로드리게즈는 늘 기타를 놓지 않고 꾸준히 노래를 불러왔다는 증거이고 그것이 그토록 사랑했던 노래가 공허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에 더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임에도 마치 미스터리와 같은 진행으로 흥미진진함을 놓지 않으며 적절히 삽입된 노래들로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런 수작을 만들고도 감독 말릭 벤젠룰은 우울증 끝에 자살을 했다고 한다. 주인공 로드리게즈는 영화 제작 이후에도 남아공을 비롯한 여러 무대에 오르면서도 역시 기존의 삶의 태도를 유지했고 올해 8월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한다. 인생이란 여전히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을 걷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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