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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산> 리뷰 : 산속의 삶, 산을 바라보는 삶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0. 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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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산>

산속의 삶, 산을 바라보는 삶

 

  흔히 산에 오르는 일을 삶에 비유하곤 한다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일들이 사람 사는 일과 닮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마는 특히, 등산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정상에 서는 과정들이 있기에 더더욱 인생사와 닮아 있다고 여겨진다. 세상에 수많은 산만큼 다양한 사람의 삶이 있고, 하나의 산을 오르는 데도 여러 길이 있듯이 비슷한 환경 속에도 살아가는 방식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도 산은 푸근함과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다가도 때로는 광포하고 무자비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산에 기대어 그것만큼 다채로운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으로부터 위로를 받거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반대로 산 때문에 곤경에 처하거나 소중한 것을 잃기도 하는 장면들을 따라가며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삶을 투영하게 된다.

 

  산을 떠나 제대로 된 공부를 하려던 시도가 오히려 도시의 어린 벽돌공이 되게 만드는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경험한 후, 브루노(알레산드로 보르기)는 아버지의 폭압을 벗어나 스스로 산으로 되돌아온다. 벗어나려던 곳에 제 발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것이 실은 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그곳에 단단하게 뿌리내리려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모든 구성원들이 아무리 고되게 일을 해도 끝내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포기했던 삼촌의 목장을 재건하며 산에서의 삶에 천착한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닥쳐도 좀처럼 산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극 중 언급되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을 마치 알프스에서 찾은 듯이 보인다.

 

  그와는 달리 산과 그곳에 있는 친구 브루노를 좋아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산을 멀리하며 세상을 부유하듯 살던 피에트로(루카 마리넬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산에 발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그가 산을 사랑하는 방식은 브루노와는 달라서 여전히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수많은 산들을 여행하며 글을 쓰는 방법으로 산과 함께 한다. 그는 도시의 삶 속에서도 늘 산을 동경했던 듯 산속 한적한 별장을 꿈꿨던 아버지의 바람을 브루노와 함께 만들지만 그것을 소유하기보다는 친구와 공유하고 종종 찾는 휴식처로 삼는다. 아버지가 남긴 산 곳곳의 흔적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던 피에트로는 많은 산을 여행하며 히말라야에 다다른다.

 

  산에서 만난 두 친구의 삶은 이렇게 겹쳐질 듯 나뉘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산맥과도 같이 펼쳐지면서 서로를 향한 우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산에 정착한 브루노가 연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목장을 차근차근 건설해갈 때에 그의 앞날에는 푸른 숲이 펼쳐질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목장이 결국엔 냉정한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가족들 모두 생계를 위해 산을 떠나길 원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미 품 안에 들어왔던 산속에서의 행복한 삶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도 브루노는 산을 떠나지 못해 홀로 그곳에 남는 쪽을 택한다. 그리곤 그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오로지 피에트로에게 들어 보기만 했던 히말라야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브루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이제는 영원히 방랑자의 삶을 살 것만 같던, 그래서 자유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이던 피에트로가 히말라야에, 그리고 그곳의 여인에게 정착하려 한다. 산에 살며 도시의 여인을 받아들였던 그의 친구와는 정 반대로 도시인으로 살던 피에트로가 산속 어느 마을의 여인에게로 들어간다. 피에트로는 수미산에 들어간 자와 그것을 둘러싼 여덟 개의 산과 바다를 헤매는 자 중 누가 더 현자인지를 묻는 히말라야인들의 삶에서 과연 어떤 지혜를 얻었을까. 그리고 늘 여행자와 같이 산을 바라보기만 하던 그가 과연 산속에서 어떤 삶을 펼쳐 나가게 될까.

 

 엔딩 크레딧에 눈 덮인 산봉우리가 보인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아침 햇살이 비추며 봉우리 전체로 환하게 퍼져 나간다. 하나는 죽음으로 영원히 남아서 떠났고, 다른 하나는 그곳을 떠나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관객은 산과 두 친구,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를 마음에 담고서 영화관을 나선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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