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퍼>
서툴러도 괜찮아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유명한 격언이지만 조지(롤라 캠펠)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하나뿐인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가 되어도 조지는 혼자서도 잘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조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어린이는 혼자 잘 클 수 없다.
<스크래퍼>는 조지가 친구 알리와 함께 자전거를 도둑질하면서 시작한다. 자전거를 훔치려다 걸려 그럴듯한 언변술로 상황을 모면하고, 힘들게 훔친 자전거를 자전거 가게에 되팔아 돈을 벌며 엄마와 함께 살았던 집의 월세를 내는 것이다. 시설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친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윈스턴 처칠’이란 삼촌 행세를 부탁하며 복지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부탁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집 안의 모든 건 엄마가 생전 해놓았던 그대로, 소파의 쿠션 하나까지 칼 각을 맞추며 매일 청소하고, 닦고, 조지는 저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장을 넘어 들어오는 금발의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갑자기 나타난 그 남자는 자신이 조지의 아버지라며 지금부터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할지 예상해 보겠다. 혼자 사는 아이가 너무 가엾다, 혹은 아버지라고 나타난 사람이 수상하다. 그리 유쾌해 보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절대 가볍지 않은 일련의 사건을 무겁게 표현하지 않는다. 조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오히려 밝고 쨍한 파스텔 톤으로 색칠되어 있다.
샬롯 리건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스크래퍼>는 뮤직비디오 제작자 출신답게 감각적인 화면 전환과 일러스트와 실사의 오묘한 경계선에 놓인 연출이 돋보인다. 조지가 제이슨(해리슨 딕킨슨)을 훑는 장면에서는 스냅숏을 찍는 것처럼 그의 머리, 얼굴 등을 한 컷 한 컷 프레임에 담아 보이도록 만들었고, 조지와 알리가 제이슨이 뱀파이어인지, 갱단 소속 마피아인지 상상하는 장면도 교차편집으로 센스 있게 표현했다.
조지와 제이슨이 친해지는 과정 역시 허투루 표현하지 않았다. 조지는 엄마랑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란 존재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제이슨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조지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려고 노력한다. 세탁기를 돌린다던가, 아침을 챙겨주기도 하고 조지의 이가 빠지자, 이빨 요정 대신 베개 밑에 동전을 넣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살림은 조지가 더 한 수위였고 조지는 더 이상 이빨 요정 따위를 믿지 않는 사춘기의 소녀가 되어버린 후였다. 거기에 조지의 의심과 감정의 골이 더해지면서 제이슨은 조지에게 아버지로 인정받기 힘들어 보였다. 조지가 힘들 때 그를 위로해 주는 것 역시 제이슨이 아닌 죽은 엄마의 흔적이었다.
조지는 힘들 때면 어머니와의 영상이 담겨있는 휴대폰을 쳐다보고는 했는데, 엄마가 죽기 전 둘이 행복해하는 짧은 동영상이었다. 조지는 어두운 골목길에 홀로 앉아 눈물을 떨구며 영상을 계속 되돌려 보고는 했다. 어두운 골목길과 대비되는 화면 속 행복해 보이는 엄마와 집은 조지에게 가장 집다운 곳이었음을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조지가 제이슨과 함께 있으며 웃고, 춤을 추는 장면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린 주인공 조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 갑작스러운 제이슨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제이슨에게 천천히 마음을 열고 그에게 의지하게 되는 일련의 일들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영화는 약간의 유머와 따뜻하고, 통통 튀면서도 먹먹한 배경음악을 덮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조지가 결정적으로 제이슨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제이슨이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어서라고 생각한다. 조지가 하지 말라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됐든 일단 하지 않았다. 복지사의 전화를 받지 말아 달라는 사소한 부탁부터 라일라 어머니에게 대신 사과를 하러 가는 것까지, 제이슨의 모든 행동은 조지에게 맞춰져 있었다. 깜짝 선물을 전하고 집에 가는 길에 조지와 라일라 사이의 일을 알게 된 제이슨은 조지가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방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조지가 만들어 놓은 탑의 존재를 인지한다. 엄마가 있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탑, 언젠가 천장을 뚫을 계획으로 표시해 놓은 자국을 확인한 제이슨은 아내가 죽기 전 남긴 음성 메시지를 조지에게 들려준다. 용기가 나지 않았던 탓에 메시지가 담긴 휴대폰을 두고 자리를 비웠지만 말이다.
제이슨의 진심을 알게 된 조지는 진정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자신이 필요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제이슨의 말에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닌 걸 알았다고 솔직히 인정도 한다. 사회 복지사도, 학교 선생님, 친구들도 이젠 조지가 안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엄마와 함께했던 집은 아빠와 함께 노란색으로 물든다. 이제야 비로소 둘은 가족이 되었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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