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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아침> 리뷰 : 삶, 그 자체의 사랑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0. 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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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아침>

삶, 그 자체의 사랑

 

 스크린 속 프랑스의 여름 아침은 평화롭다. 창문을 열며 햇살을 맞는 여인,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속에서 산드라(레아 세이두)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홀로 사는 그의 아버지를 보살피기 위해서다. 아버지 게오르그(파스칼 그레고리)는 괴테와 카프카를 각별히 여기는 장서가이자 철학 교수였다. 그러나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기 시작하면서 그의 삶은 물론 산드라와 가족들의 일상까지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게오르그는 딸조차 때때로 알아보지 못했고,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문을 열거나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이성과 총기를 뺏긴 그는 자신의 애인만을 찾는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산드라는 그런 아버지를 하루에 한 번씩 찾아가며 잘 계시는지 확인했다. 남편과는 사별하여 홀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남는 시간에는 번역 일을 하거나 통역사로서 일을 나가기도 한다. 그 시간 속에서 산드라 본인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가족을 살피고 경제활동을 하는 데 산드라의 온 하루가 소요됐고, 그는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움직였다.

 

 산드라의 1년이 담겨있는 <어느 멋진 날>은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산드라가 사랑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펼쳐진다. 점점 변해가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 산드라는 숨 쉴 수 있는 구멍을 원했다. 클레망(멜빌 푸포)은 그런 산드라에게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사랑을 주었다. 산드라 남편의 친구였던 그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즉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충동적인 키스를 시작으로 둘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시작된다. 클레망과 산드라는 만날 때마다 뜨겁게 숨을 나눴고, 클레망이 산드라의 딸과도 친해지면서 산드라는 자연스럽게 클레망과 함께할 미래를 꿈꾼다.

 

 미아 한센 감독은 산드라와 클레망의 사랑이 자기표현의 방법이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타인의 말을 전하는 일을 하며 아버지가 본인의 두려움과 고통에 말할 수 있도록 헌신적인 도움을 주지만,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감춰야 하는 산드라에게 클레망은 구원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강렬히 이끌리는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것이 산드라에게 자기표현의 방법이 되어준다는 감독의 말대로, 산드라는 클레망과 함께 있을 땐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여과 없이 꺼내 보인다. 노쇠하고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만약 같은 병에 걸리게 된다면 그땐 자신을 안락사시켜 달라는 말까지 꺼낼 정도로, 산드라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걱정까지 모두 클레망에게 공유한다.

 

 영화는 절대 어느 한 가지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물들이 실제로 저 파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늙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클레망과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그럼에도 클레망을 사랑하는 아이러니한 산드라의 감정에 구태여 이유를 덧붙이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의 사랑하는 방법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뿐, 그들의 감정에 대한 설명은 없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여름이었던 초반부와 달리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고, 봄에서 금세 여름으로 지나가는 시간 동안 산드라와 주변 환경도 함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산드라는 게오르그가 병을 앓기 전 좋아하던 책들이 더 지금의 게오르그보다 더 아버지 같다고 느끼고, 그렇게 좋아하던 슈베르트의 음악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게오르그를 보며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그의 일기장을 보며 예전의 아버지를 그리워해도 현실은 계속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주기 위해 산드라는 일기를 덮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기쁨을 나누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슬프게 하지만, 여전히 음악 속에서, 책 속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찾으려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난다. 한 해가 지나 다시 여름, 산드라는 끝내 자신을 선택한 클레망과 함께 딸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게오르그는 역시나 자신의 애인만을 찾았고, 산드라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애써 슬픔을 감추고 아버지를 모시고 요양원의 노래 수업을 함께 들으러 가지만, 정작 노래를 듣는 아버지는 아무런 감흥 없이 앉아만 있는다. 산드라는 노래를 듣다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데, 항상 홀로 아버지를 찾았던 날들과 달리 이젠 클레망이 곁을 지키며 그를 위로한다. 이후 딸과 클레망, 산드라는 셋이 함께 파리의 어느 공원을 찾아간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뒤로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산드라가 그토록 원하던 사랑과 함께하는 결말이었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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