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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극장> 리뷰 : 보도블록 틈에서 어렵사리 핀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본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6. 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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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극장>

보도블록 틈에서 어렵사리 핀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본다

 

코로나 19로 지난 일상들을 되돌아보며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 요즘이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모두들 각자의 오늘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시선이 멈출 틈 없이 바빴더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흔하고 사소한 존재들을 시간을 들여 충분히 바라본다. 영화 속 주인공인 기태를 따라가다 보면 그런 작고 소중한 것을 만나고 가까워지고 닮아가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기태(이동휘)는 오랫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배고픈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고향 벌교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그를 기다려주는 건 늙고 아픈 어머니(신신애)뿐인데, 기태는 그런 자신을 걱정해주는 어머니도 달갑지 않다. 다시 서울로 선뜻 올라가기도 고향에서 주저앉기도 막막한 기태의 상태를 화면은 집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정물처럼 앉아 있는 모습으로 비춘다. 표정을 알 수 없는 그 순간은 단절 속 외로운 사람들의 말 없는 모습과 닮았다.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늙은 어머니의 모습으로도, 등 돌린 채 얼굴을 보이지 않는 오씨 아저씨(이한위)와도 유사한 형태로 표현되고 읽힌다.

 

귀향에 대한 변명거리를 잔뜩 들고 고향 사람들과 만나지만 기태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기태와 마주 보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날 선 비난을 남기지만 나란히 앉은 사람은 살짝 화면에 겹치며 곁을 지켜준다. 기태가 비난하며 떠나버린 가족들과의 자리, 기태만 두고 떠나버리는 친구와의 술자리. 그 떠난 자리에는 남겨진 마음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아쉬움이 남겨져 있다. 자신의 모습과 닮은 친구 영은(이상희)이 등장하면서 기태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상대가 떠날 때까지 진득이 앉아 곁을 지켜주는 배려와 여유를 간신히 배워간다.

 

영화는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그것은 몸으로 움직이다 보면 나중에야 알게 되는 시골 어르신들의 설명 없음과 엔딩까지 따라가고서야 짐작할 수 있는 감독의 말하기 방식과도 비슷하다. 영화 끝 무렵에 가서야 카메라는 홀로 극장 앞에서 앉아 있는 기태의 모습을 길게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이상하게도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아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 말 없는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옆에 쭈그려 앉던 오씨 아저씨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눈앞에 작은 꽃을 정성껏 찍어 메시지를 보내는 기태의 모습은 서울에서 그처럼 사진을 찍었을 영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닮은 모습만으로도 영화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의 말을 건네지 않았나 싶다.

 

극 중 기태가 일하는 국도극장의 내부는 실제 운영하는 단관극장인 광주극장이다. 국도극장의 자랑인 간판은 광주극장의 상징이기도 하며 멀티플렉스에는 없는 독립극장 특유의 개성과 존재감을 보여준다. 오래되고 작고 좀 불편한 각지의 독립극장들은 외지인의 눈에는 특이한 것일 뿐이지만 현지인에게는 매일매일 영위해가는 소중한 일터이다. “영화를 안 좋아한다는 오씨 아저씨를 연기한 이한위 배우의 대사는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낸다. 사소해 보이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비추는 영화의 시선은 현실 속에서 여전히 어려움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고 트는 영화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낯익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의 소소하고 진심이 묻어나는 연기는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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