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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리뷰 : 듣보인간들의 나답게 살기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9. 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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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듣보인간들의 나답게 살기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 그들은 모두 소위 듣보인간이었다. 영화를 공부했지만 학교 졸업 후 길을 잃은 듯 어둠을 향해 있었던 권하정(이 영화의 감독), 그리고 김아현(공동 감독), 구은하와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지만 들어주는 이가 적어 역시 변두리에 속한 무명 가수 이승윤. 존재조차 희미한 그들이 우연히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보게 되면서 절실히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난다. 처음엔 가수를 향한 팬심의 일방적인 덕질 영화인가 싶었지만 그보다는 가수 이승윤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의 도화선에 제대로 불을 붙인 영화인의 얘기라는 편이 맞다.

 

  세상과 단절하고 땅굴을 파듯 바닥 그 밑으로만 향하던 권하정이 순전히 우정 때문에 집 밖의 속세로 잠시 외출했을 때 우연히 이승윤의 노래를 들었다. 그의 노래 하나하나가 그의 마음에 박히고 그것으로부터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앞에 언급한 세 명의 가내 수공업과 몸빵으로 이승윤의 노래 무명성 지구인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그에게 전달하며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자는 제안을 했고, 그것을 받은 이승윤은 내내 울다가 이제야 답장을 한다며 무조건 함께 하자고 화답한다. 듣보인간끼리 놀라운 혜안을 발휘하고 그 선구안을 따라 협업에 나서기로 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듯 존재감 없던 이들의 만남과 뮤직비디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백하게 기록한다. 후줄근한 실내복 패션으로 제작회의를 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감독들의 모습과 생활 소음이 여과 없이 담긴 제작 과정은,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패기와 열정만으로도 눈부신 젊음 그 날것의 매력을 물씬 풍긴다. 그들이 서로 의견을 조율해가는 것도 인상적이다. 일단 서로 각자의 의견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밝힌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정의한다. 그래서 그걸 피하는 것에서 시작한 의견 조율은 서로를 존중하며 과정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무작정 시작했던 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예상치 않았던 난관에 봉착하고, 결국에는 딱 포기해야 할 것 같은 현실의 높은 벽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만 해봤던 그들에게 뮤직비디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고 많은 문제들이 기어코 좌절을 맛보게 하려는 듯 도사린다. 계속해야 할 이유는 점점 쪼그라들고 포기해야 할 정황은 차고 넘칠 듯 늘어난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절망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안 해보고 안 된다는 말에 주눅 들지 말고 일단 한번 해보자고 으쌰 으쌰 한다.

 

 제작비가 모자라서 안 될 일은 역시나 가내 수공업과 몸빵으로 때우고,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촬영감독은 결국 인맥을 통해서라도 해결한다. 영화가 그들의 뜨거운 분투의 결과물로 완성된 뮤직비디오보다 제작 과정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일단 나아가는 일, 그것이 제일 나다운 일이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모습은 이 세상 모든 젊음과 듣보인간들에게 한 줄 희망의 빛을 비춘다. 장애물과 시련이 끝도 없이 덮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 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싱그럽다.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향해 계속 나아가자는 그들의 목소리는 더 없이 힘차다.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승윤은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최종 우승을 했고, 그와 무작정 뮤직비디오를 함께 제작한 세 명의 영화인은 결국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뮤직비디오를 완성했다. 게다가 그 과정을 기록했던 이 다큐멘터리도 2021년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고 영화관에 거는 데까지 성공했으니 그들 모두 이제는 더 이상 듣보인간이 아닌 유명 인사가 되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이 이뤄낸 성취를 보고 있자니 왠지 관객의 젊음까지 보상받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이승윤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이승윤은 안중에도 없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그 모습에 자기의 노래와 자기가 참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영화 엔딩에 흐르는 이승윤의 자필 편지는 그들이 어떤 자세로 임하고 얼마나 건강한 협업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시혜적 행위를 하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소신대로 하되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끝까지 나아간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값진 성취를 이뤄낸 그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도 젊음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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