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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만세>│임오정 감독, 정이주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9.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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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만세> 씨네토크

23.09.03.

 

초청 : 임오정 감독, 정이주 배우

진행 :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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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현 :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진명현이고요. <지옥만세>를 연출하신 임오정 감독님과 정이주 배우님 인사 말씀 먼저 듣겠습니다.

 

정이주 : 안녕하세요. 저는 채린 역할 연기한 정이주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임오정 :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지옥만세>를 연출한 임오정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진명현 : 영화 재밌게 보셨나요? <지옥만세>가 개봉 3주 차에 독립영화 흥행의 고지선이라고 할 수 있는 1만 관객을 진작에 돌파했고, 14천 명 관객을 향해서 감독님과 배우님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두 분 다 신영극장에 처음 오신 거죠? 어떠세요?

 

임오정 : 저는 강원도 영화인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독립영화들이 한 번씩 꼭 방문하는 메카이자 코스가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신영극장이잖아요. 근데 여태껏 인연이 안 만들어졌고, 제가 영화를 자주 찍는 편은 아니기도 하고요, 항상 언제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근데 오늘 신영극장에서 관객분들과 만나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좋고요. 강원도의 힘을 많이 느끼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이주 : 저는 이 영화가 첫 장편 영화인데요. 열심히 홍보도 하고 GV도 다니고 있는데, GV가 주로 서울에만 있어서, 지역 관객들 입장에서 뭔가 속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이 아닌 지역의 극장에서 GV를 진행하면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감독님이 추천을 해주셔가지고 오늘 신영극장에 오게 됐습니다.

 

진명현 : <지옥만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에, 서울독립영화제에도 소개되면서 많은 분들이 개봉을 기다려온 작품이기도 한데요. 관객분들이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님의 연출 솜씨를 보면서 무척 즐거우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이면서, 오늘 귀한 자리에 함께해 주신 정이주 배우님을 비롯해 오우리 배우님과 방효린 배우님 같은 걸출한 신인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만나는 것도 독립영화로서는 되게 드문 일인 것 같아요. 감독님 이렇게 개봉하고 나니까 사실 장편 데뷔를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으셨을 것 같고, 정말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관객들의 환대 받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임오정 : 이런 경험을 선배들이 겪으셨다고 생각하니 정말 놀랍고 존경스러울 뿐인데요.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는 하나의 추구해야 될 목표가 개봉이었고, 개봉만을 위해서 일단 달리는 데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개봉 전후로는 관객분들의 반응을 제가 SNS로 접할 수 있다 보니,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그런 반응을 듣게 되는 거예요. 정말 좋아해 주시는 분도 있고, 많이 실망했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반응이 천차만별이라 그런 온도 차 안에서 어떻게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을지가 처음에는 혼란스럽더라고요. 지금은 그래도 관객분들을 직접 만나면서 중심이 잘 잡힌 상태고요. 제가 이전에 단편 영화 작업으로 관객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응원받은 힘으로 장편영화를 찍은 것처럼, 요즘에는 다음 작품도 해볼 수 있겠다는 에너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단편영화를 상영할 때는 애초에 모수도 적어서 좋아하는 분들만 글을 올려주시거나 주변의 칭찬이나 응원을 더 많이 듣게 되는데, 그때보다 훨씬 더 객관적으로 앞으로 준비해야 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는 상황이라 여러모로 매일매일 뜨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진명현 : 모든 sns를 다 보시는 건가요?

 

임오정 : 제가 페이스북을 놓쳤다는 걸 오늘 알게 됐어요. (웃음) 그 외에는 다 보고 있어요. 트위터, 왓챠피디아, 키노라이츠부터 시작해서 영화를 검색하면 나오는 웹사이트들을 들어가서 봐요. ‘더쿠에서는 반응이 좋고 오갤에서는 반응이 안 좋고 에펨에서는 중간 정도고. 이런 반응치들을 체감하고 있고, 커뮤니티라는 것도 배워가고 있어요. 댓글을 달까? 하다가 IP 추적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댓글을 쓰지는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웃음)


진명현 : 요새 IP 추적 무섭습니다. 제가 아주 즐겨 보는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옥순님도 IP 추적 때문에 곤란을 겪으셨다고 하니까요 조심하시면 좋을 것 같고요. 아주 예전 선배들은 이렇게까지 힘든 경험 안 하셔도 됐을 거예요. 아마 동시대 감독님들이 겪는 그런 고난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어떤 반응이 제일 인상 깊으셨어요?

 

임오정 : 좋은 평은 아니었는데 CGV 앱에서 본 평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다양한 반응들을 접하면서 재미있다, 사람들이 나를 속된 말로 갈구는 게 좀 재밌네’ (웃음) 이렇게 약간 초월하게 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봤던 평 중에 ‘MZ가 되고 싶은 영포티그게 좀 웃겨서 계속 생각나요.


진명현 : 저격글 같은 느낌인데요.


임오정 : , 맞아요. 저격글이예요. (웃음) 별로라는 평이었어요. 근데 저는 그런 게 좀 재밌더라고요. 제가 약간 조소하는 농담을 좋아해서 그런지 저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었고. 정말 감사했던 글들도 너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뜻깊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떻게 제 메일 주소를 알아내신 관객분이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좋아서 제 단편을 보고 싶은데 알려줄 수 있냐고 해서 단편을 보내드린 적이 있어요. 근데 이후에 개봉하기 한 달 전쯤에 그분이 다시 메일을 주셨어요. 친구가 극단적 시도를 감행했는데 그 친구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다가 제 영화가 많이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지옥만세> 개봉을 아직 안 한 건 알지만 혹시 스크리너라도 볼 수 있는지 문의를 주셔서 너무 죄송스럽게도 스크리너를 보내드리는 건 어렵고, 제가 영화를 준비할 때 봤던 만화책, 소설에서 글귀들을 모아서 그분한테 보내드렸어요. 나중에 두 분이 그걸 같이 나누면서 힘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를 통한 인연이고, 제가 어떻게든 무언가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을 위로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또 다행히도 메일을 보내주신 관객분이라는 친구가 옆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진명현 : 영화의 세계관이 현실까지도 이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영화를 찍을 때랑 이렇게 개봉하고 관객 만날 때랑은 너무 다른 감정들이 느끼실 것 같아요. 특히 이주 배우님은 첫 장편이다 보니까 영화가 어떻게 나올까 고민도 기대도 걱정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영화가 완성돼서 영화제에 소개되고 완성본을 또 직접 보시고 관객들을 대면해서 만나시는 요즘의 경험들을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정이주 : 사실 촬영하는 시기에는 관객에 대한 생각이나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어떻게 미칠까 이런 생각까지는 전혀 못했어요. 연기하기 바쁘고, 내일 또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너무 정신없고 어렵다는 생각들 뿐이었는데, 직접 관객분들 만나니까 그제서야 영화가 이런 것인가라는 느낌이 좀 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어떤 분들을 영화로 만나게 되고, 그 영화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느낀다는 것 자체가 되게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온라인상에도 영화 관람 후기들이 많지만, GV를 하면 실제로 관객분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게 더 신기한 것 같아요. 작은 연이 생긴다는 기분도 들고요. 또 편지 같은 것도 주시고 그러는데 읽어보면 너무 진짜 감동스러워요.

 

진명현 : 세 배우분의 연기가 다 고르고 훌륭하고 매력도 다 다른데, 처음에는 세 인물이 구분이 좀 안 가는 관객분들도 중반이 지나면서부터는 누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제가 감독님과 배우분들께 전해 들었던 얘기로는 역할이 픽스되지 않은 상태로 세 역할의 캐스팅을 고민하셨다고 해요. 흥미로운 캐스팅 비화도 좀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임오정 : 저희가 18살짜리 여고생 3명이 나오는 영화다 보니까, 비슷한 또래의 여배우를 모집하는 공고를 내서 오디션을 진행했습니다. 대략 200명 정도의 분들이 지원을 해주셨어요. 소속사가 있는 배우도 있었고, 개인으로 활동하시는 신인 배우분들도 계셨어요. 다 열어놓고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그때가 코로나가 굉장히 심했던 2021년 가을이었기 때문에 직접 다 뵙지는 못하고, 오디션 내용의 대본을 드리고 비디오를 받았어요. 그때 지원해 주신 분 중에 오우리 배우님이랑 방효린 배우님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건 오늘 처음 얘기하는 건데요. 오디션에 지원하지 않은 배우 중에서도 혹시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혼자 배우를 찾다가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에 들어가니까 이주 배우님이 있더라고요. 이주 배우님은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됐어요.

 

진명현 : 그러면 이주 배우님은 특채 같은 거예요? (웃음)

 

임오정 : 특채라기보다는요. (웃음) 일단은 궁금해서 만나보고 싶었어요. 우리 배우님, 효린 배우님, 이주 배우님 3명의 배우를 처음에 선우 역할로 생각했어요. 배우님들이 서로 원하는 역할이 각자 있더라고요. 오우리 배우님이 오디션 영상을 보내주셨는데, 거기에 채린이를 만나러 가자고 하는 230초 정도 되는 독백 장면이 있거든요. 영화에서는 더 짧게 편집됐지만 시나리오에는 더 길었어요. 그 장면을 연기하시는 거 보면서 이 사람의 허세랄까요? 작은 치와와같이 겁은 먹었는데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과장되게 몸을 부풀리고 있는 모습도 있고, 나름의 비극적인 생각에 도취되기도 하는 모습도 있고.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의 널뜀을 잘 표현해 주시더라고요. 230초짜리 독백 연기를 보내준 다른 배우분들에 비해 압도적일 정도로 그 시간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배우님은 다른 역할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항상 송나미역할로 우리 배우를 상정했던 것 같고, 또 그 나이가 가지고 있는 급발진의 본질을 굉장히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 안에도 그게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요. 선우 역할을 하신 방효린 배우님은 채린 역이나 선우 역 둘 다 연기를 너무 기가 막히게 해주셨어요.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고, 마음이 자꾸 가게 만드는 그런 매력을 가진 배우인데 동시에 연기까지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오디션 면접을 같이 보던 친구들이 효린 배우님이 선우 연기할 때는 선우 때문에 울고, 채린을 연기할 때는 채린 생각하면서 울게 될 정도로 어떤 캐릭터든 자기한테 흡수시키는 게 굉장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정적으로 오키오키를 너무 잘해주셨어요. (웃음) 굉장히 중요한 대사였는데 실제로 해보면 되게 어렵다는 걸 느끼실 수 있거든요. 그리고 오키오키라는 대사가 초반에는 무덤덤하고 약간 의문스러운 대사였다가 마지막에 진심의 오키오키가 되는 순간 있는데 그 격차도 되게 잘 이해하고 표현해 주셨어요. 선우가 가지고 있는 단단한 내면과 용기 그런 씩씩함이 연약해 보이는 이 사람 안에 있는 것 같아서 효린 배우를 선우 역으로 캐스팅하게 됐어요. 채린 역할에 정이주 배우님은 저희끼리 마마라고 부르는데요. 보자마자 중전마마 같다고 생각했어요. 장희빈은 절대 아니고, 인현 왕후 같이 우하하고 고상하고 단정하면서 나름대로 신념도 있고 정도만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눈동자가 약간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뭐랄까 설명할 수 없는 어두운 느낌도 같이 있거든요. 채린이의 양면성을 정이주 배우님이 해주시면 굉장히 입체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주 배우가 가진 우아함과 단단한 고상함을 잔뜩 이용해서 예상도 안되고, 듣도 보도 못한 빌런 채린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면, 채린이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연민 같은 걸 느끼게 되잖아요.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어떤 아이의 천진함 같은 것도 있는 캐릭터라서 잘 표현해 주실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진명현 : 사실 채린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공기가 좀 바뀌잖아요. 마치 시대극의 가면무도회 장면에서 계단을 주인공이 내려올 때처럼 주변을 압도하면서 시선을 휘어잡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저는 그 장면을 정말 좋아하고, 그때의 정이주 배우님의 얼굴이 너무 매력적인 것 같아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끈적거리고 축축한 걸 채린이가 없으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거든요. 분량에 비해서 보여줄 게 많은 역할이라 배우님이 연기하면서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채린 역을 맡기로 결정하시고 어떤 생각들과 준비를 하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이주 : 우선 촬영하고 준비할 당시에는 솔직히 그렇게 즐기지 못했어요. 영화제 다니고 같이 영화 얘기를 많이 하면서 즐거움이 더해진 것 같은데, 촬영할 때는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제가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때는 더 부족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우선 악역이라는 부담감이 있었고, 영화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이 되게 분명한 캐릭터잖아요. 내가 정확히 해줘야 선우랑 나미가 뒤로 갈 수 있을 텐데, 그래야 영화가 진행이 될 텐데 내가 이걸 못해주면 어쩌지 그런 고민이나 걱정이 되게 많아서 부담감을 잔뜩 안고 매 순간 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채린의 전사에 대해서도 정말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무궁무진해서 혼자 써보고 상상하고, 감독님이랑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채린이는 이런 가정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상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진명현 : 그만큼 이 영화 속에서 채린이라는 인물은 동력이 되는 인물이에요. 감독님이 세 인물을 고르게 애정을 두고 글을 쓰셨겠지만, 채린이를 쓸 때는 장르적인 재미가 있으셨을 것 같거든요. 감독님이 채린이라는 인물을 글로써는 어떻게 만들어 가셨는지도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오정 : 나미와 선우가 죽음이 너무 겁나서 자살 시도를 하지만 겁을 먹잖아요. 목이 졸렸을 때의 공포감 같은 걸로. 겁을 먹고 있을 때 채린의 소식을 듣고 옳다구나 이걸로 죽음은 미룰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서울로 가는데 영화 전체를 통과하면서 채린이라는 목표가 마지막 어딘가쯤에는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채린이에 대한 복수는 맥거핀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제가 생각할 때 현실적으로 나미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복수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물리적인 복수를 하는 게 또 이 어린아이들한테 상처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본인들이 그렇게 괴로워했던 폭력을 누군가한테 또다시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게 채린이라고 생각했어요. 채린이는 문제적 인물이면서 양면적인 인물이고 사실은 텅 비어 있는 인물이에요. 계속 자기 자신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모습을 계속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해요. 채린을 쓸 때 처음에는 되게 단순한 악역이었다면 나중에 점점 가면서 복잡한 인물로 살이 더해진 것 같아요. 어른들이나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헛된 가치관들을 믿고 따라가느라고 무너진 아이라서, 그 아이에게도 다른 무언가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가장 극적인 인물이었고, 나미와 선우를 추동할 수 있게 만드는 인물이었어요. 동시에 채린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고, 악역이기 때문에 채린이 캐릭터에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에 대해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관객분의 반응 중에 제가 꽂혔던 게 학교 폭력의 가해자를 용서해 주는 얘기냐는 거였어요.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채린이의 얘기에 대해서 나쁜 얘기만 더 강조한 것 같은데, 저는 채린이 역시 폭력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드라마틱한 인생 때문이라도 앞으로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진명현 : 18살이 겪기엔 너무 많은 감정의 변화들로 인해서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고, 어쨌든 이 땅을 탈출해야겠다는 욕망으로 가득찬 친구이기도 하고, 채린이는 나미에 비해서 친구 관계만 문제가 아닌 사람인 거잖아요. 아직 20살도 안 된 친구가 겪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시도들을 하는 인물이기도 해서 가장 대담하면서 또 가장 처참하기도 한 인물이 채린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채린이가 잘한 건 아니지만, 채린이만큼 혹은 더 못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채린이만 못된 것은 또 아니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네요. 관객분들도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얘기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 1 : 저는 오늘 신영극장이 처음인데 굉장히 좋은 영화를 보고, GV까지 들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채린 역할을 어떻게 디렉팅을 줬을지 궁금합니다. 특히 채린이 나미와 선우와 헤어져서 혼자만의 길을 가잖아요. 그때 어떤 디렉션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이주 배우님은 채린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는 감독님께서 이야기를 구성하시면서 레퍼런스를 많이 보셨다고 했는데 어떤 만화책을 보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아까 ‘MZ가 되고 싶은 영포티가 인상에 남는 평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지옥만세>가 굉장히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캐릭터를 왜 여고생으로 잡았는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 이주 배우랑 계속 저희끼리도 의심하고 궁금했던 것이 채린이가 정말 회개했나? 였어요. 두 개의 양가감정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이걸 믿어야 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고, 자기가 용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용서를 받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채린의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인 것이죠. 용서나 회개의 입장에서 본다면, 학교의 정점에 있었던 삶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채린이도 바닥을 친 거잖아요. 적어도 예전보다는 자기가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 것 같고, 그래서 미안함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진정한 사과나 반성을 했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선우에게 먼저 사과를 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생각하고 다짐하고 믿고 있는 자기 모습과는 달리 되게 비겁한 행동을 계속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계속 모순 덩어리인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이걸 어떻게 연기를 부탁드렸었죠?

 

정이주 : 아주 구체적인 디렉션이 정말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웃음) 감독님, 혹시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임오정 : 진짜 이 사회를 믿어요. 진짜 사죄하는 건가요? 뭐 이런 것들을 진짜로 해달라고 했어요.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서. 그게 저의 디렉션이었어요.

 

정이주 : 그래서 온 힘으로 했습니다. (웃음) 물론 분석 과정이나 테이블 작업을 할 때에는 저도 되게 다방면으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를테면 관객분들이 채린이를 보면서 신앙을 믿는 건지, 낙원을 믿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명호를 좋아하는 건지에 대해서 많은 혼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여러 개를 생각한다고 해서 다 표현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순간에 내가 잡고 가야 할 중심이 필요한데, 채린이가 정말 분명하게 원하는 건 죄를 용서받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걸 중요한 포인트로 잡고 연기를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채린이가 하는 사과를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3년 정도 지나고 다시 보니까 채린이가 뒤돌아갈 때의 뒷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더라고요. 뭔가 불안해 보였어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관객으로서 들었어요.


진명현 : 그럼 채린이가 어떻게 살았을 것 같아요? 혹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이주 : 편집되었지만 뒤에 찍은 장면이 더 있거든요. 돌아선 채린이가 교회 앞으로 가요. 왜냐면 갈 데가 없기 때문에. 교회 앞에 늘 계시던 할머님이 계세요. 그분이 저한테 교회로 들어가지 말라는 어떤 신호를 주시거든요. 말은 하진 않는데, 저를 잡아주시거든요. 그래서 교회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아무 데나 앉아서 유서를 읽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임오정 : 이 장면의 포인트는 채린이가 유서를 다 읽고, 되게 더러워진 거울 같은 것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어요.

 

진명현 : 그게 그러면 채린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거예요? 근데 만약에 그 장면이 들어갔으면 너무 압도적으로 채린이가 주인공이 됐겠네요.

 

정이주 : 서사를 너무 많이 알려주고, 채린이를 이해할 여지도 너무 많이 준다는 생각을 감독님도 하셨고, 저도 동의를 했어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히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분들이 채린이를 이해할 여지가 많으면 그렇게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장면이 영화에서 편집됐습니다.

 

진명현 : 그러면 이주 배우님은 개인적으로 채린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이주 : 좀 어렵네요. 사실 이런 질문이 처음은 아닌데 늘 애매하게 대답했거든요.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약간 이런 식으로 애매하게 넘어갔던 것 같아요. 채린이가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뭔가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남들의 시선에서 좀 벗어나서 내가 어떻게 성장했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또 타인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런 것들을 돌아볼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진명현 : 관객분이 <지옥만세>의 레퍼런스도 궁금해하셨어요,


임오정 : 제가 한국영화아카데미라는 곳에 들어가서 영화를 찍었어요. 3개월 동안 합숙을 해야 돼요. 거기에서 같이 방을 썼던 친구 중에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듣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알고 봤더니 웹툰 작가인 거예요. 여기 입소하기 전에 바로 직전에 끝낸 웹툰이 우울증 친구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는 웹툰이라고 해서 그 만화를 좀 봤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서사적으로 참고를 하려고 영화를 보거나 만화를 찾아봤는데 정말 없더라고요. 그리고 왜 영포티로서 소녀들을 다루게 됐냐면 영화를 출발하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고립감이나 불안감, 어떤 정상선에서 빗겨나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집단이나 세상을 바라볼 때 삐딱함 이런 게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비슷한 상황과 시선을 가진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 게 아웃사이더인 여고생이었어요. 이들이 부딪혀서 싸워야 되는 게 집단의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게 있고, 결국 이 영화가 채린을 향한 복수, 사적인 복수로 출발하는 영화긴 하지만 계속 제가 풀고 있는 세계관이 헬조선스러운 세계관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학교라는 곳에서 불분명한 미래라는 가치를 어른들이 주입하고, 경쟁으로 아이를 몰아넣는 상황에서 허상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집단을 만들고 또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잖아요. 종교 집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잘 알지 못하는 신이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신을 쫓고 그 집단의 논리에 벗어난 행위를 하면 바로 낙인찍어버리고 배제시켜버리잖아요. 그런 모습들에 대해 삐딱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집단에서 살아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고, 그리고 삶을 다시 택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죽음을 꿈꾸는 소녀들이 저한테 가장 아이러니한 존재로 다가왔어요. 저는 소녀들의 생기가 내가 사는 게 너무 행복해라고 해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죽고 싶다고 하면서 바로 잽을 날리고 빨빨거리고 다니고, 어떤 감정의 널뜀이나 빛과 어둠 사이에서 헤매고 돌아다닐 때 가장 생기 있다고 느껴졌어요. 가장 생명답고, 생생하다는 느낌이 있어서 아이들을 택한 것 같아요. 주인공이 어른들이었으면 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주인공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꼭 살리고 싶었던 게 있었습니다.


진명현 : 주인공이 어른들이었으면 정말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을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드네요. 이야기 나눠주실 분 또 다른 관객분 계실까요?

 

관객 2 : 영화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아까 헬조선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생각하는 헬조선의 모습 중에 하나는 가해자의 서사가 담긴 헤드라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채린이가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할 수가 없고, 채린이가 몰락을 했건 아니건 간에 결코 가해자라는 타이틀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채린이가 사실 하나도 불쌍하지도 않았고 더 몰락하고, 더 망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 저는 채린이가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몰락했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만약에 나미와 선우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때려주거나 기스를 내거나 폭력으로 대갚았다면 채린이는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겠죠. 만약에 채린이가 죽었다면 죽었다는 이유 때문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근데 채린이는 되게 혹독하게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에 잘 살라는 선우의 말을 듣는 순간 채린이의 마음은 서늘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채린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건 간에 그녀가 믿고 있던 모든 가치관과 마지막 가능성이 고려되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인 교회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거잖아요. 낙원을 꿈꾸긴 하지만 채린 자신도 낙원이 진짜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생각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채린이가 교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건 그곳이 허상의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가면 학교도 갈 수 있고 대학도 갈 수 있고, 집도 주고, 현실에서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되게 세속적인 가치 때문이에요. 근데 그것도 무너진 거잖아요. 계속 A가 안되면 B를 추구하고, B가 안되면 C를 추구하면서 계속 여기까지 몰려왔을 텐데, 그것마저도 이제 안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채린이는 진짜 텅 비었을 것 같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무너진 사람을 같은 생명체로서의 연민 같은 감정을 특히나 나미와 선우는 느꼈을 것 같아요. 채린이는 싫죠. 당연히. 나를 괴롭혔던 앤데. 그런 애한테 공감해 버린다는 게 너무 싫지만 그런 게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 건지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거기에서 데리고 나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채린이를 통해서 저는 오히려 나미와 선우가 얼마나 꿋꿋하고 얼마나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말 미워했던 사람을 데리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얼마나 선량한 내면이 있는 사람인지. 그게 채린이와 다른 점이죠. 나미와 선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반대급부로서의 장치라고 생각하거든요. <지옥만세>에 등장하는 가해자의 서사에 온전히 온기가 없다고는 못하겠어요. 제 생각에는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는 어른들과 거기에 있는 아이들도 다 같이 살아가야 되는 이웃이고 동료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내몰고 방치한 결과인 거잖아요. 채린이의 인성이 아무리 못돼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와 같이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건 이런 괴물을 계속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린이에게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건, 아직 어리고 그리고 너무 완벽하게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채린이가 뒤돌아 걸어갈 때 어떤 삶을 선택했을지는 모르겠어요. 걱정도 돼요. 저도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채린의 삶에 대해서 제가 아무런 선택을 내릴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텅 빈 상태에서 진짜 자기를 채워나가는 시간을 갖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고, 다시 낙원을 추구할 수도 있고 모든 게 다 이 사람한테 달려 있는데 그때서야 채린이가 정말 악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명현 : , 감독님의 긴 이야기가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것 같고요. 또 다른 관객분 계실까요?


관객 3 :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를 굉장히 좀 흥미롭게 봤고요. 영화의 소재를 사이비 종교로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불이 꺼졌을 때 남자와 여자의 그림자가 나오는데 그 장면의 의미와 명호와 채린의 관계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임오정 : 헬조선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이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나 믿음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좋은 가치인지에 대해서나, 혹은 좋은 가치였다고 하더라도 그걸 행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어요. 그런 집단적인 움직임들 때문에 특수성을 가진 어떤 인물들의 목소리가 무시되고 누군가의 고통이 외면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현상을 학교 폭력이랑 사이비 종교라는 소재로 풀어낸 거죠. 사람들이 불안한 어떤 심리적인 상태 때문에 헛된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고 믿는 편이에요. 누구나 그렇고 저도 그런 면이 있죠.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도 있고, 나에게 너무나도 선한 사람 중에서도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걸 보면 우리 바로 옆에 있지만 사회가 보살피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찾아서 헤맨다고 생각해요. 가족에게 포근함을 원하는데 결핍이 느껴지게 되면, 포근함을 주는 세계를 찾아갈 것이고, 어떤 공동체에서 결핍을 느끼게 된다면 공동체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찾아가려고 할 거예요. 근데 지금은 사회가 파편화되어서 그게 되게 어렵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을 원하고 있고. 그래서 불안감 때문에 죽고 싶거나, 불안이 깔려있는 세상에서 엉뚱한 걸 바라고 믿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채린이랑 명호가 낙원에 가려고 공모하는 것이 생각보다 나미와 선우가 자살하려고 공모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끈끈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채린이는 바깥의 삶에서 어른들한테, 부모한테 보호받지도 못했고 기댈 데가 없었는데, 교회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믿어주고 의지할 만한 어른이 생긴 거잖아요. 게다가 교회 밖의 옛날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연민이 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핍이 서로를 끈끈하게 엮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사이비 종교로 떠밀려 왔고, 그렇게 몰려온 사람들 속에서도 서로의 구멍을 메꿔주는 두 사람을 연결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결고리가 있어야 나중에 채린이가 그걸 놓치게 되는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진명현 : 그 장면 연출이 좀 재밌잖아요. 저는 볼 때 연극 같기도 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 안에서 자기들이 주인공인 줄 알고 있는 거잖아요. 쟤네 진짜 뭐 하는 애들인가 싶어서 헛웃음이 나왔거든요. 감독님이 조소적인 유머 쓰는 걸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되게 재미있게 봤던 것 같아요. 저희가 시간이 꽤 많이 지나서 한 분 정도 더 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관객 4 : 안녕하세요. 정이주 배우님이 연기한 채린 역할을 정말 몰입감 있게 잘 봤고요. 그럼에도 이주 배우님께서 아까 선우 역할을 정말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이주 : 사실 채린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리고 오디션장에서 채린이가 사과하는 장면을 연기하기 전에 제가 감독님한테 여쭤봤어요. 이렇게 폭력적인 사과가 있을 수 있나요?라고. 너무 무서운 사과다. 너무 무섭다. 채린이 사과를 간절히 하는 게 진짜 폭력적이지 않냐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연기를 했죠. 대부분의 관객분들이 느끼셨겠지만, 선우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미는 갈팡질팡하는 마음이라도 있는데 선우는 나미랑은 차원이 다르게 지하 깊숙한 곳에 머물러 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근데 그마저도 너무 익숙해져서 다 상관이 없는 거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 알겠어. 그런 식의 괜찮다는 지점 때문에 자꾸 마음이 가게 되니까 선우한테 몰입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선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오정 : 일단 정이주라는 사람 자체가 절대로 채린을 이해할 수가 없는 캐릭터였죠. 그런 사람을 너무 싫어하고 혐오하기까지 하는데 그런 인물을 본인이 연기해야 된다고 하니까.

 

정이주 : 그래서 감독님이 저한테 오히려 채린 역할을 맡기셨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인물은 어떻게 보면 레퍼런스도 되게 많고, 이런 서사에 흔히들 등장하는 역할이잖아요. 근데 저는 단순하게 생각이 잘 안 되더라고요. 생각이 엄청 많아져서 이렇고 저렇고 얘기를 자꾸 하니까 감독님은 오히려 저의 그런 생각이 많은 면모를 보고 채린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진명현 : 말씀을 듣다 보니 이주 배우님이 납득할 수도 애정할 수도 없는 인물을 맡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채린이라는 캐릭터를 풍성하게 살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나미랑 채린이는 오히려 되게 투명한 캐릭터들이잖아요. 채린이는 뻔뻔스럽게 연기를 하는 친구고, 나미는 뭔가 하나만 밝혀져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캐릭터인데, 선우는 정말 의뭉스럽고 알 수 없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혹시 주변에 <지옥만세> 어떤 영화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재미있으니까 보고 난 뒤에 같이 얘기하자라고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저희가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끝까지 자리 지켜주신 관객분들 너무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먼 길 달려와주신 우리 임오정 감독님과 정이주 배우님의 마지막 인사 말씀 전해 듣겠습니다.


임오정 : 오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하고 강릉 흠뻑 즐기다 가는 것 같고요. (웃음) 나중에 또 오겠습니다.

 

정이주 : 같이 이야기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질문도 많이 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조심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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