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아도 괜찮은
정말이지 마지막 장면 하나를 위해 달려온 영화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대다수 영화가 그러하겠지만, 영화 <마에스트로>는 뒤마르 부자(父子)의 공동 지휘 장면을 관객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앞선 서사를 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제인 Maestro(s)와 영화 포스터(뒤마르 부자가 지휘대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서 영화가 두 사람 사이의 어떠한 화합을 그려내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협연이 도드라질 수 있도록 영화 <마에스트로>는 초반부터 뒤마르 부자의 갈등을 전면에 부각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프랑스의 권위 있는 음악상 ‘빅투아르 드 라 뮤지크’를 수상하는 드니 뒤마르(이반 아탈)를 조명한다. 트로피를 받아 들고 단상 위에 선 드니는 오케스트라 단원이자 연인인 비르지니(캐롤라인 앤글라데), 매니저이나 전처인 잔느(파스칼 아르비요), 아들 마티유(닐스 오테닌-지라르)와 어머니 헬렌(미우 미우)을 차례차례 호명하며 감사를 전한다. 뒤이어 시상식에 불참한 아버지 프랑수아 뒤마르(피에르 아르디티)의 이름을 덧붙인다. 아버지를 향한 존경을 전하는 드니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어둡다.
이어진 장면은 아들의 수상을 TV로 시청하는 프랑수아를 비춘다. 드니가 들고 있는 트로피가 TV 화면에 잡히자, 프랑수아의 시선은 장식대로 향한다. 그곳에는 드니의 것과 같은 트로피가 우두커니 놓여있다. 이윽고 무심하게 TV 전원을 끄는 프랑수아의 뒷모습에서 씁쓸한 기운이 풍겨온다. 아들을 질투하는 아버지라니. 모름지기 부모란 자식의 성공이라면 어떠한 것보다 기뻐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순간이다. 그런데 드니를 향한 프랑수아의 견제만큼이나 드니 또한 프랑수아가 남기는 발자취를 의식하고 있다. 프랑수아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 ‘라 칼라스’의 차기 지휘자 자리를 제안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드니의 표정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TV 앞에 앉아 있는 프랑수아의 표정과 닮아있다. 프랑수아와 드니 사이에서 불꽃 튀는 첨예한 경쟁의식은 두 사람이 지닌 꿈에 대한 인식이 매우 유사한 탓에 벌어진다. 뒤마르 부자에게 있어 꿈이란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목표지점만을 바라보며 전진한다.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또 다른 누군가는 그들에게 있어 선두를 내어주지 말아야 할 경쟁자일 뿐이다.
결승선을 목전에 두고 벌어진 (담당 비서의 착각으로 드니에게 가야 할 ‘라 칼라스’의 차기 지휘자 제안이 프랑수아에게 전달되었다는) 해프닝은 뒤마르 부자의 꿈을 향한 열망에 제동을 건다. 드니는 아버지에게 제안이 잘못 전달되었음을 어떻게 고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르지니와의 견해차를 마주한다. 잘못된 전달이 없었더라면 성공을 최우선으로 두고 향후 거취를 결정하는 드니와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는 비르지니의 갈등은 예전처럼 비르지니의 감내로 흐지부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찰나였지만) 자신의 성취에 만족을 느낀 프랑수아는 50여 년을 미뤄둔 청혼을 헬렌에게 건네었다. 수락하는 헬렌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는 것만 빼면 프랑수아에게는 완벽한 저녁이었으리라. 이후 인생을 굴곡을 함께 한 연인과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을 프랑수아가 마주한 현실(같은 성씨로 인해 붉어진 전달 사고)은 너무도 잔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잠시간 방황의 시간을 보낸 프랑수아는 가장 먼저 드니를 찾아간다. 서로를 마주 보고 그동안 묵혀둔 속내를 꺼내는 프랑수아와 드니는 그제야 앞만 보고 달리는 인생이 너무도 외롭고 허망하다는 걸 알아차린다.
지휘대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이 서로의 손짓과 박자를 느끼며 완주하는 교향곡의 선율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프랑수아와 드니가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상에서 내려와 무대 뒤로 사라지는 프랑수아의 뒷모습이 전혀 초라해 보이지 않았던 건 그의 뒤를 지켜보는 드니와 가족들의 사랑이 담긴 시선 덕분이지 않았을까?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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