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삶이라는 공포, 스릴러
삶이 감옥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조금도 고개 돌릴 생각이 없다는 듯 독하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일어나는데 그 감정의 실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참이나 그 알 수 없는 감정에 짓눌리다 번뜩 떠오른 생각의 실마리는, 선의를 가졌지만 힘이 없는 자들이 마치 그 ‘힘없음’에 대한 형벌처럼 스스로 삶의 끈을 자르거나 범죄자가 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가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보통을 넘어서는 수준의 선한 성정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이 그 선한 마음만으로는 살아지지 않아서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는 법적, 도덕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서글픈 운명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게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 언제까지 이런 암담한 상황을 모른척할 것인지, 당신도 종국엔 공포와 스릴러로 참담한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 묻는다.
영화에서 비극적인 삶은 재산의 많고 적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 가진 돈이 없어 비닐하우스에 기거하는 문정(김서형)은 사랑하는 가족과 한집에서 사는 그 평범한 삶 자체가 어렵고, 돈은 있지만 노화와 질병에 봉착한 태강(양재성) 부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삶을 이어 가기 어렵다. 문정과 태강 부부 모두 삶을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희망하지만 현실은 스스로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는 것 자체가 힘겹다. 단지 아들과 함께 평범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문정의 소박한 꿈이,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살고 싶은 태강 부부의 생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지긴커녕 오히려 점점 더 곤궁한 처지로 몰리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슬픔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는 서로에게 삶의 버팀목이 돼 주던 그들이 의도치 않게 살인을 주고받으며 결국은 자신의 삶까지 파괴하기에 이른다.
문정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그냥 돈을 받고 일하는’ 돌봄이 아닌 정말 영혼을 담은 듯한 태도로 태강 부부를 돌본다. 자식이라도 저렇게 못한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지극한 정성으로 태강 부부를 먹이고 씻기고 심지어 그들의 마음까지 돌본다. 돈 받은 만큼 일하면 그만인 세상에 육체적 노동을 뛰어넘는 정서적 노동까지 감수하는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마음과 전혀 다른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상황과 그저 아들과 함께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문정의 모습에, 보는 이로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은연중에 그를 응원하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저 잔혹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인가. 빈곤이 정말 개인의 게으름 탓인가 아니면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것인가.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감독이 영화로 묻는 물음이 마음에 공명을 일으킨다.
태강 부부의 상황은 사회적 돌봄 없이 오롯이 개인의 부담에 몰린 건강하지 않은 노년 역시 개인의 존엄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미 치매로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아내를 대하는 태강의 태도나 문정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역시 요즘 보기 어려운 선함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시력을 잃은 후에도 책을 찾고 음악을 듣는 그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는 지적 호기심은 그가 살아온 생의 궤적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그의 대사를 통해 아내 역시 매우 지적인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삶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었는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인생 말년에 찾아온 시련은 너무도 가혹하게 삶을 모조리 할퀴었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평범한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무력함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만들고 있다. 누구든 두려울 노년의 모습에서 공포감마저 드는 것이 당연하다.
영화는 그 흔한 연대나 새로운 가족의 출현에 대해서도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비슷한 결핍이나 염원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연대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사회적 시스템 구축과 지원 없이 그것은 결코 쉬 이뤄질 수 없는 일임을 상기시킨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 대신에 가까이 있고 서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의 출현에 대한 영화나 소설 등이 등장하고 있지만 감독은 이 역시도 사회적 지원이 없다면 작은 일에도 쉽게 붕괴될 수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따뜻함이나 희망적 메시지 하나 없이 충격적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에서 야박함이 느껴지지만 성장 만능주의 사회에서 이제는 개개인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하자는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그 서늘한 시선이 돋보인다.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 역시 영화적 몰입감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이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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