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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의 무코리타> 리뷰 :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9. 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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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의 무코리타>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다

 

  과거를 숨기고 어쩌면 자신의 존재까지도 지우고 싶었는지 모를 야마다(마츠야마 켄이치)가 선택한 곳은 작고 한적한 어촌 마을이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 곳에서 그저 살아가는 일만 생각했을 그에게 오징어젓갈 공장 사장의 환대와 격려가 조금은 멋쩍게 느껴진다. 그 사장 덕에 오래되어 허름하지만 혼자 지내기엔 제법 넉넉한 무코리타 공동주택의 방을 구했지만, 처음에는 점심을 해결할 돈도 부족하다. 한 달을 채워 첫 월급을 받고 정식 작업복과 공장에서 만든 젓갈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며 쌀도 사서 손수 밥을 짓는다. 고작 장국과 젓갈 반찬만으로 맞이하는 옹색한 식사지만 오롯이 자신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정직한 밥상이라 갓 지은 밥 냄새가 더욱 구수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소박하고 고요한 야마다의 일상에 번거로운 사람이 끼어든다. 온수기가 고장 났지만 목욕탕 요금은 부담된다며 다짜고짜 야마다의 욕실 사용을 부탁하는 옆집 남자, 무위도식하는 자칭 미니멀니스트 시마다(무로 츠요시). 처음에 무례하고 골치 아픈 사람으로 여겨졌던 시마다는 배고픔과 더위에 지쳐 누운 야마다의 생사를 확인하러 오고 자신이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무심히 던져 놓고 간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야마다의 욕실 진입에 성공한 시마다는 한술 더 떠 스스럼없이 야마다의 밥상까지 침입하여 어느새 둘이 함께 하는 식사가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소박한 식탁은 별 차이가 없지만 대화가 오가는 밥상은 좀 더 풍성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반강제로 시작한 텃밭 채소 가꾸기는 어느덧 야마다의 마음과 밥상에 푸른빛을 더해 간다.

 

  두 사람의 사소한 관계는 주위로 점점 더 확장되고 풍요로워진다. 같은 공동주택에 살며 묘석 방문판매를 하는 미조구치(요시오카 히데타카) 부자가 몇 달 만에 고가의 묘석을 팔아 스키야키를 먹으려는 순간,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소리도 냄새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들의 식탁에 시마다를 시작으로 야마다와 주인집 미나미(미츠시마 히카리) 모녀까지 모여든다. 황당하고 무례하다는 생각도 잠시, 그들은 함께 고기의 맛을 음미하며 자연스레 지난 공동의 추억도 소환한다. 그리고 그 추억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그럼에도 그들에게 종종 모습을 드러내서 다른 이에게 세를 놓지 않고 비워 두는 방에 살던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다. 그야말로 식구(食口)라는 말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그들의 모습에, 죽음조차도 경계 짓지 않고 곁에 두기를 꺼리지 않는 이들에게서 따스한 온기가 피어오른다.

 

  특히 영화는 죽음으로 잊혀지는 어떤 존재가 아닌 죽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또렷해지고 영원히 곁에 있는 것에 대해 성찰한다.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유골 인수를 고민하던 야마다에게 시마다는 어떤 사람이었다 한들 없던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한다. 결국 야마다는 아버지의 유골을 인수해 집안에 보관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시청 직원이 전해주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그 유골의 주인이 야마다의 아버지였음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한없이 부유하기만 하던 야마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긍정하기에 이른다. 집주인 미나미 역시 죽은 남편을 기리고 추모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여전히 남편이 자신의 곁에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을 나눈다.

 

  너무나 사소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모아 야마다 아버지의 49재를 치른다. 사기죄를 저질렀던 야마다의 부끄러운 과거도, 사연 많은 시마다의 아픈 과거도,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나미의 그리움도, 그리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강변 노숙인의 사연도, 바람에 흩어지는 야마다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모두 바람에 날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추억한다. 사소한 것들로 사람의 관계가 이어지고 그 사소한 관계가 사소하지만 소중한 행복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새삼 깨닫게 한다.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밥상은 늘 그렇게 소박한 풍요를 만든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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