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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만세> 리뷰 : 어차피 지옥살이라면 만세라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8. 2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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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만세>

어차피 지옥살이라면 만세라도!

 

 물론, 처음엔 어, 이거 영화 <밀양>에서 봤던 분위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섣부른 전개를 예상해 본다. 아…… 그런데 영화가 어째 좀 이상하다. <밀양>은 회개와 용서로 과연 폭력의 상처가 나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제기와, 피해자의 용서와 상관없이 가해자가 종교의 힘을 빌려 스스로 이미 용서받고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는 모습을 바라보는 피해자의 복잡한 심리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공감을 일으켰기에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에 반해 이 영화에서는 폭력의 가해자가 자신의 지옥 같은 현실 탈출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복수를 부추긴다. 피해자들의 복수가 가해자에게 평생 남을 흉터를 안기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구원하는 마지막 퍼즐이 되어줄 위기와 맞닥뜨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 쏭남(오우리)과 황구라(방효린) 두 아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면, 이들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한 시간이 없었을 것만 같다. 폭력으로 고통받는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가정 역시 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않는다. 그냥 지옥 그 자체에서 홀로 외로이 버티는 중이다. 결국 다른 아이들은 모두 수학여행을 가 있는 시간에 이들은 더 이상 나아질 것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기도한다. 그런데 쏭남이 먼저 목을 매려는 순간 그를 급발진하게 하는 건 지금 자신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든 원흉, 박채린(정이주)의 영화로운 현 상황을 SNS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 지옥을 선사한 그에게 적어도 영원히 간직할 흠집(영화는 기스라는 일본식 표현을 사용)이라도 남길 심산에 두 소심이들은 공공의 적 박채린을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난다.

 

 헌데, 학교와 가정 어디에서도 마음 둘 곳 없이 짓눌렸던 둘은 나고 자란 지방 소도시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생기가 돌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의기양양해진 쏭남과 황구라는 곧 복수의 대상인 박채린을 만나는데, 문제는 둘이 상상했던 살벌한 재회가 아닌 반갑다며 반색하는 박채린의 따뜻한 말과 미소에서 시작된다. 과거 자신의 만행을 감추고 부인하는 박채린을 제압하고 정의의 칼날로 얼굴이라도 그어줄 상상을 했을 쏭남과 황구라. 그러나 이들이 상상했던 통쾌한 복수가 난관에 봉착하는 것은 박채린의 견고하고 완강한 저항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들이 찾아내 작은 복수라도 하고자 했던 그 악인’, 응징을 받아 마땅한 그 사악한 박채린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피해자와 관객은 이제 혼란과 갈등에 휩싸인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것(물론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지만)으로도 모자라서 스스로 자신을 칼로 그으라는 그의 태도는, 악이 그 자체로써 초래하는 응분의 대가로서의 처벌을 행할 수 없도록 복수를 꿈꾸던 자의 마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 아닌가. 두 아이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지독한 상처를 입으며 지옥 같은 나날을 살고 있었는데 정작 그 모든 것을 만든 악마 같은 인간은 회개를 했다며 당장이라도 천국 입장이 가능할 것 같은 착함으로 무장하고 있다니. 그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당연히 모든 것을 잊어주고 어깨 두드리며 겨누었던 칼날을 거둬들여야 할까. 그러면 이 두 아이의 고통으로 망가진 삶이 치유되고 그 앞에는 밝고 희망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까.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영화가 표방하는 장르는 싸이키델릭 트위스티드 홀리 어드벤처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영화가 무척 또라이스럽고 뭔가 비틀어져 있지만 성스러운 모험이라는 점에는 완전 동의한다. 학교 폭력과 종교의 문제가 뒤섞이는데 꽤나 신선한 시각과 태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무심히, 그러나 무책임하지 않게 두 구역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알고 보니 만만치 않은 지옥에 살고 있었던 박채린에게 절대로 죽지 마!라고 외치는 두 아이의 대사는 스스로에게도, 관객에게도 일단은 꿋꿋하게 살아보자는 일종의 굳은 다짐으로 들린다. 그들은 결국 나아질 기대감이란 1도 없는 지옥 같은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둘 다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쏭남의 웰컴 백 투 헬이다라는 말에 여전히 변하지 않은 지옥 같은 현실이지만,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만세!를 외치겠다는 그들의 단단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예상치 않았던 긴장감과 뜻하지 않은 폭소를 뒤섞은 영화는 끝내 뭔가를 굳이 가르치려 들지 않고 유유히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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