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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리뷰 : 돌아갈 수 없는 여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6. 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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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돌아갈 수 없는 여름 

 

 누구나 영원을 꿈꾼다. 나와 상대의 관계가, 지금 우리의 모습이, 내가 느끼는 사랑이 영원하길 바란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며 나와 상대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 이경과 수이 역시 같은 것을 바랐다.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이경과 수이가 처음 만난 곳은 고등학교였다. 축구부였던 수이가 실수로 축구공을 잘못 차 이경이 맞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머리칼을 가진 수이와 갈색 머리칼에 하얀 피부를 가진 이경은 서로 다름에 이끌렸다. 수이는 공에 맞은 이경이 신경 쓰여 비가 오던 해가 내리쬐던 항상 매점에서 딸기우유를 사 그에게 전해주었다. 이경 역시 딸기우유를 소중히 받아 빈 우유갑에는 꽃을 꽂아 보관했다. 그들은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만났고 그럴수록 이경은 수이에 대한 마음이 커졌지만 기대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여기서 나오는 이경과 수이는 둘 다 여성이다. 영화는 둘의 이야기를 때로는 여성의 이야기로, 때로는 그냥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단순히 서로 나누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 묘사하는 게 주된 내용이지만 어쩔 땐 둘이 같은 성별이란 이유로 겪게 되는 일들을 묘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경과 수이는 서로를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었고, 둘의 사랑은 통하게 되지만 수이의 의견대로 다른 이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비밀 연애를 시작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상하게 볼 주위의 시선 탓이었다. 이경과 수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마치 잘못된 사람들처럼 비쳤고, 비웃음을 사며 무시당했다. 수이는 이경이 이런 일들을 겪지 않길 바라지만 이경은 이해하는 한편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수이의 사고로 분기점이 생긴다. 대학 축구팀에 진학해 훗날 실업팀에서 축구 선수로서 활약하고, 은퇴한 후에는 스포츠 용품 가게를 차릴 계획이었던 수이가 고의적인 태클로 인한 무릎 부상으로 축구 생활의 막을 내린 것이다. 이경은 수이가 포기하지 않길 바랐지만 수이는 결국 자동차 정비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이경은 서울 소재의 대학 경제학과에 붙어 나란히 서울로 올라간다.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성격 차이에 따른 다툼도 잦아진다. 이경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삭히는 수이를 답답하게 생각했고, 종국엔 자신마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친다. 수이와 같이 레즈비언 바에도 가고 싶고 자신들과 같은사람들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지만 수이는 이경과 달리 그들에게조차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걸 꺼린다. 둘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 이경은 자연스럽게 저의 일상에 녹아든 은지에게 마음이 간다.

 

 영화의 화자는 이경이므로 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관객은 수이의 진심을 알 수 없다. 그저 이경의 눈으로 비춰진 수이의 모습으로 그의 모습을 짐작할 뿐이다. 이경은 수이의 마음을 알기 힘들다고 자주 언급하며 수이의 흔적을 쫓았다. 수이가 앉아있었던 다리, 함께 시간을 보내던 냇가,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이경은 수이에게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수이에게 이경은 정말로 필요 없었던 존재였나.

 

 수이는 극이 진행되는 이경에게 자주 함께 떠나자는 말을 한다. 자신의 짐을 이경에게 지워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고, 힘든 생활을 계속했음에도 본인보다 눈앞의 이경을 걱정했다. 이별 직전 이경이 크게 아팠을 때도 자신 때문에 아픈 점이 있었다면 용서해달라며 눈물을 흘린다. 둘의 마음이 서로에게 온전히 닿지 못해 아픈 첫사랑이었고, 서투른 사랑이었다.

 

 <그 여름>은 새로운 여름을 맞이하며 끝이 난다. 이경의 곁에는 수이가 없고, 이경은 그 여름보다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이경은 여전히 수이를 잊지 못했고, 함께 여름을 보내던 장소를 다니며 기억 속 수이를 떠올린다. 영화가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주인공 이경의 시간이 아직 그 여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더 그리운 여름에.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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