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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린터> 리뷰 : 끝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6. 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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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린터> 

끝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10초 안에 뭘 할 수 있을까? 행동이 굼뜬 나로서는 초 단위로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라고 하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눈을 10번 정도나 깜빡일 수 있을까? 나의 이런 시간 감각과는 동떨어진 곳에 0.01초로도 희비가 갈리는 세계가 있다. 부단히 노력하며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보낸 것 같은데 변화는 쉽게 보이지 않아서 묵묵히 내일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세계가 있다. <스프린터>는 촌각을 다투는 단거리 육상 선수들의 세계를 다루면서 끝이 어떻게 될지 알지만 트랙에 서서 결승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인물들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신기록 보유자로 한때 경기장을 다 씹어 먹었지만 미련 때문에 은퇴하지 못한 채 어느덧 30대가 된 현수(박성일). 동기와 선배는 현역에서 물러나 코치를 하고 있지만 자신보다 훨씬 어린 선수들과 같은 트랙 위에서 달리고 있다. 전담 코치도 없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혼자 훈련을 하러 간다. 재능은 있지만 기록이 제자리에서 멈춘 준서(임지호). 육상부가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잘 하는 게 달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준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한다. 유망주 정호(송덕호)1등 자리를 잃을까 봐 중압감에 시달린다. 1등 자리를 유지하고 정체된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댄다.

 

 1차 선발전에서 현수는 60m 지점까지 1등으로 달리지만, 결국 순위권에 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묵묵히 2차 선발전을 준비한다. 하지만 육상 선수가 아닌 사람들도 다 같이 사용하는 트랙을 안전 문제와 훼손 등의 이유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현수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연습마저도 위기에 처한다. 현수가 달리기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 준 지현(공민정)이 현수의 곤란한 상황을 보고 도움을 주겠다고 먼저 말한다. 지현은 현수의 스트레칭을 도와주고 멀리서 현수가 달리는 모습을 촬영한다. 60m 지점 이후로 스피드가 떨어지는 이유는 자세와 호흡 때문이라고 코칭 해 준다.

 

 최승연 감독은 100m 육상 한국 신기록 보유자 김국영 선수, 한국체육대학교 이정호 교수 등에게 시나리오 감수를 받아 상황의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특히 현수의 장면에서 그런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현수를 통해 뭔가 열심히 시도는 하는데 잘되지 않는 상황을 담으면서도,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현수를 지지해 주는 지현을 통해서 운동선수로서 정점을 찍었지만 육상을 포기하기 싫은 현수의 심정을 전달한다. 상황의 리얼리티가 확보되면서 배우들의 피지컬이 운동선수 같지 않다는 생각이나 달리기하는 자세가 어색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나아가 비인기 종목인 단거리 선수들만의 이야기라기보다 누구에게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2차 선발전에서 트랙 위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대기하는 선수들. 1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가진 능력치를 모두 쏟아부어야만 결승점에서 웃을 수 있다. 트랙 위에 선 선수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라인만을 따라 전력 질주한다. <스프린터>를 보기 전까지는 단거리 육상은 혼자 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프린터>에 나오는 현수, 준서, 정호는 혼자 달리는 게 아니다. 트랙 밖에서 그들의 조력자가 트랙 밖에서 달리기를 지켜보고 있고, 함께 달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마음으로 애쓴다. 달리는 이유도 다르고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도 모두 다르지만, 10초라는 짧은 시간에 모든 인생을 건다.

 

 육상부 코치 지완(전신환)은 정규직 체육 교사로 전환될 기회를 얻는다. 조건은 육상부 코치직을 내려놓는 것. 준서는 잘할 수 있는 게 달리기 말고는 없어서 마지막으로 선발전에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지완은 준서를 외면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겪어봤고, 끝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기 때문에 대부분 울면서 끝나.” “어차피 그만두게 될 일이야.” “국가대표 해도 별 거 없잖아.”라고 준서에게 말한다. <스프린터>는 누가 1등을 할 것인지를 가리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트랙 위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경기에 끝난 뒤에도 트랙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경기에 오르는 선수들을 순위에 상관없이 응원하게 된다.

 

- 프로그램팀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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