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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인생극장> 리뷰 : 삶이란 아름다운 것임을 바라는 마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6. 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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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인생극장>

삶이란 아름다운 것임을 바라는 마음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

 

 <줄리아의 인생극장>선택의 순간에 따라 네 갈래의 길로 퍼져나가는 한 여인의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운명이 지닌 본질이 변화무쌍(變化無雙) 한 것인지 영속불변(永續不變) 한 것인지에 대한 고찰할 기회를 부여한다. 지금의 나 자신은 과거의 내가 마주했을 수많은 선택들이 빚어낸 작품(혹은 유물)이라는 걸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선택이 본인 스스로 판단한 결과물이던 이미 예정된 미래의 준비물이든 간에 인간이란 생()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무수한 기회들을 획득하고 놓치며 자신만이 갈 수 있는 삶이라는 길을 닦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때로 만일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져보는 생각이라고 본다.) 적어도 필자의 경우, 인생을 지나는 길목에서 지나쳤던 몇 가지 또 다른 기회들을 종종 꺼내보곤 한다. 그것들이 가리키던 대로 따라간 길 위에 서 있을 자신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을지에 대해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그렇기에 또 다른 선택으로 인해 현재의 나라는 존재와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 아니면 뭘 하던 상관없이 지금의 나라는 현실로 회귀할 지에 대한 망상은 꽤나 즐거운 순간이다.

 

카메라가 선택과 우연을 다루는 방법

 

 영화가 그리는 줄리아(루 드 라주)의 삶에는 그녀의 인생을 뒤바꿀 만한 세 번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1.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순간을 직접 보기 위해 줄리아와 그녀의 친구 에밀리아(에스터 가렐)는 한밤중 기숙사 탈주를 시도한다.

 

2. 콩쿠르를 앞둔 줄리아, 연주는 마음처럼 되지 않고 답답한 마음에 바람을 쐬러 서점으로 향한다.

 

3. 파울(라파엘 페르소나즈)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만끽하는 줄리아. 그녀의 부모님 집에서 저녁식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파울과 줄리아 중 누가 오토바이를 운전할지 동전을 던진다.

 

 1의 경우, 줄리아가 침대 밑에 떨어뜨린 여권을 에밀리아가 알아차리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줄리의 인생에 갈림길이 발생한다. 영화는 줄리아와 에밀리아가 방문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타기까지의 장면을 두 번 반복하여 보여준다. 그 사이에 에밀리아가 여권을 발견하고 그것을 줄리아에게 건네는 장면을 비추어 줄리아의 인생에 경우의 수를 더한다.

 

 2의 경우, 방에 여권을 두고 온 바람에 베를린에 가지 못한 줄리아에게 다가온 삶의 갈림길이다. 1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는 서점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해프닝을 순차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따른 줄리아의 삶을 교차로 비춤(대표적으로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홀로 비를 피하여 뛰어가는 줄리아와 파울과 함께 근처 카페로 비를 피하러 들어가는 줄리아)으로써 서로 다른 줄리아의 삶을 더욱 극대화한다. 더불어 카메라가 자리를 고정하고 360도 회전하며 담아낸 장면 사이사이마다 동일한 하루(콩쿠르 대회)를 보내는 서로 다른 줄리아의 상황이 교대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달라진 운명으로 인한 결과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

 

 3의 경우, 앞선 12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운명이라는 이름 앞에 나약한 인간의 삶에 대해 통감하게 된다. 1(베를린을 갈 기회)2(파울에게 말을 걸어볼 기회)에서 줄리아가 놓친 기회는 냉정하게 보면 줄리아가 마음만 먹었다면 다시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물론, 마음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사감의 눈을 피해 다시 한번 베를린행 버스를 타러 갈 수 있었고, 조금은 어설프지만 파울에게 말을 걸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전을 던져 운전자를 정한다는 건 처음부터 운에 맡긴 행위였기에 미래를 보고 왔다면 모를까 결과를 번복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전의 양면으로부터 비롯된 줄리아의 삶의 변곡점(變曲點)은 살아가다 몇 번을 마주하게 되는 삶의 아이러니를 돌아보게 한다.

 

결정된 미래 그리고 그곳까지 다다르는 저마다의 인생

 

 사실, 영화는 애초부터 줄리아의 생을 결정하고 있었다. 여권을 잊어버려 베를린에 가지 못했고 서점에서 만난 파울과 운명 같은 사랑을 했지만, 오토바이 사고 후 파울과 이혼을 한 줄리아는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던 중 안나(이자벨 카레)의 주치의 가브리엘(세바스티엔 포데로)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 결국, 영화가 담아낸 서로 다른 줄리아의 삶이란, 2052년 파리에서 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80세의 줄리아가 떠올렸을 만약이라는 가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그래서일까. 모든 상황에서 줄리아는 폐암에 걸린 엄마(안나)와 이별을 맞이해야 했고, 서먹하던 아버지 피에르(그레고리 가데부아)와 화해를 하였으며, 파울과 결혼한 후에는 시기는 달랐지만 오른손을 다쳤다. 하나의 뿌리로부터 퍼져나간 가지들은 그 굵기와 방향이 각기 다르나, 그곳에서 맺히는 꽃과 열매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삶도 이와 같은 모양새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던 어떤 것을 빚어가던 인생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음을 줄리아의 생애를 보며 믿고 싶어졌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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